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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여우의 신 포도’가 필요하다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05호] 2019년 01월 01일 (화)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부편집장
 
   
▲ 이솝 우화책 <여우와 포도> 표지. 아마존닷컴 화면 갈무리
타인과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고속도로다. 너무 잘 알지만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인간이니 인생은 비극이 되기 쉽다. 사고력이 발달하지 않은 동물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사람은 다른 이의 부와 지위, 권력을 자주 자신을 평가하는 거울로 삼는다.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세상에서 피하기 힘든 부작용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위를 쳐다본다. 아래쪽으로 눈길을 돌릴 때도 있지만 잠깐이다. 자신은 아래와 무관한 듯 비교 잣대를 늘 위쪽에 들이댄다. 게다가 남의 떡은 으레 커 보이게 마련이다.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다른 이는 참 편하게 잘 사는 듯하다. 그들이 가진 부나 차지한 지위에서 자신이 소외된 게 억울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쉽지 않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은 많이 배우고 누려온 사람일수록 더 심한 경향이 있다. 돌이켜보면 자신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훨씬 괴로운 것이다. 
 
비교의 자기장
중견기업 고참 부장 P씨는 ‘억!’ 소리 나는 집값 폭등 뉴스를 들을 때마다 ‘그때 강남에 집을 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여진이 채 가시지 않고 집값 격차가 지금처럼 크지 않던 2000년 즈음 서울 서초동에서 전세살이를 하면서 주택 구입을 고민한 적이 있다. 치솟는 집값이 무주택자나 젊은층의 몫을 빼앗는 불로소득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따금 ‘부자로 가는 특급열차’를 놓친 회한에 휩싸인다. 내 집 마련을 끝내 주거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감사의 마음이나 주거 안정을 위해선 강력한 부동산 정책과 집값 하락이 필요하다는 평소 소신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요즘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에 목매는 걸 개탄하는 그는, 공무원인 친구의 긴 정년에 두툼한 연금 얘기를 들을 때면 ‘왜 공무원이 될 생각을 못했지’ 하며 애석해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열패감의 자기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도 젊을 때는 뭔가 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나 자신은 다르게 살겠다는 기개가 있었다. 하지만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할 즈음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적어도 큰돈을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앞으로의 살림살이 걱정에 더 많이 흔들린다. 
 
알다시피 행복의 기본방정식은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비율이다. 가진 것이나 할 수 있는 것이 크고, 갖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작을수록 행복해진다. 이제 전자는 바꾸기 힘들다. 후자를 줄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부러움은 인지상정이지만, 위만 바라보면 욕망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노후 불안과 불행에 기름을 붓게 된다. 심할 때는 후회를 넘어 남보다 가진 게 없고 능력이 떨어지는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 ‘난 도대체 뭐하고 살았나?’ 하며 스스로를 후벼 파기 일쑤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지독한 우울을 낳기도 한다. 
 
‘죽을 때 돈을 싸들고 갈 것도 아닌데’ ‘나는 괜찮아’ 하며 자신을 다독여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문득문득 치솟는 울화가 노후의 삶을 온통 휘젓는다. 많은 것을 준비했더라도 이렇게 무시로 찾아오는 울화나 열패감을 다스리지 못하면 편안하고 자유로운 노후는 기대하기 힘들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자기부정은 가장 위험한 ‘마음의 암’이다. 
 
짧은 우화의 힘
자신이 제대로 나이 들어가는지 의심이 들고 마음이 흔들릴 때 도움이 되는 우화가 있다. 이솝의 <여우와 포도>다. 여러 버전이 있지만, 널리 알려진 우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배고픈 여우가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 먹으려 여러 차례 펄쩍 뛰어가며 갖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한다. 그러자 여우는 그 포도는 덜 익어 시기 때문에 필요 없을 것이라며 단념한다.’
 
이 우화는 뭔가를 몹시 원하지만 가질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변명을 늘어놓거나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척하는 태도를 꼬집는다. 자기합리화 또는 자기방어 기제라는 것이다. 노력을 다하지 않은 채 핑계를 앞세운다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동원되는 우화다. 
 
그러나 삶이 힘들 때는 자기합리화 또는 자기방어가 필요하다. 잘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부와 지위를 뜻하는 그 ‘포도’는 진짜 덜 익어 먹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포도를 절실하게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이의 물질적 소유와 능력이 부러워 내가 한없이 작아져 보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부와 지위를 부러워하지만, 그것을 얻거나 지키느라 치른 대가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가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애달파할 것은 아닐 수 있다.    
 
한계효용과 고민총량
다행히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예외 없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적용받는다. 재화를 소비할 때 얻는 효과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내용의 경제학 법칙이다. 상식적인 얘기다. 배고파 빵을 먹을 때 처음 한두 개는 꿀맛이지만 더 먹으면 맛이 없고 먹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효용 가치가 줄어들다 마침내 사라진다.   
 
‘돈의 한계’를 입증한 연구도 이미 숱하게 나와 있다. 일정 수준을 넘는 부가 행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아주 불편하지만 많다고 해서 무한정 만족감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또 건강과 장수에는 맛난 음식보다는 거친 음식, 돈이 주는 편함보다는 자신의 몸을 쓰는 불편함이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학문적으로 공인된 이론은 아니지만 ‘고민총량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다. 사람이 아무리 행복하고 즐거워도 고민의 총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큰 걱정거리가 사라지면 그때까지 신경도 쓰지 않던 자잘한 고민이 머리를 짓누른다. 생사를 가르는 큰 수술을 하고 나면 어디 몸 한구석의 가려움을 참기가 힘들고, 대낮의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져 정적이 찾아오면 시계 초침 구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거꾸로 대중가요 가사처럼 사랑이 떠나갔을 땐 곧 죽을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밥만 잘 넘어간다. 많이 가진다고 인생의 동반자인 고민과 고통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부장은 다른 사람의 포도가 부러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자기 위안을 한다. “그건 신 포도일 거야”라고 되뇌면서.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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