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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과 빈곤의 ‘미끄럼틀 사회’
[Issue]
[8호] 2010년 12월 01일 (수) 이병희 economyinsight@hani.co.kr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사회안전망의 제도적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실직 등 일자리 위기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청년층, 경력 단절 여성 등의 취약계층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했지만, 지표상의 실업자 수는 100만 명을 넘지 않았다. 실업급여 지출액은 사상 최대 수준을 매월 경신했지만, 실업급여는커녕 변변한 퇴직금조차 없는 실직 취약계층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로 간주돼 실업률 지표에서는 잡히지 않고, 저소득 가구의 실질소득 저하와 빈곤율 상승 지표를 통해서 그 흔적을 드러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립, 사회 서비스 확대, 노인·아동·장애인 등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도입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취약계층의 실직 위험을 줄이고 재취업을 지원하는 고용안전망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1차 고용안전망인 고용보험을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2004년 일용근로자에게까지 적용해 법적으로는 임금근로자의 대부분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지난 3월 현재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8.9%에 불과하다(통계청).
   
2009년 3월 서울관악종합고용지원센터 실업급여 신청창구.

실직하면 빈곤에 빠지는 ‘미끄럼틀 사회’라는 일본에서의 표현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취약계층은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해 실직, 특히 가구주의 실직은 가구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절대빈곤 상태로 떨어진 이후에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 부양의무자 기준 등에 의해 대부분 배제되는 것이 현실이다. 고용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실직과 빈곤의 동반 위험에 노출된 취약계층이 근로빈곤층인 것이다.
실직 기간의 소득 보장과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가 실업급여다. 모든 임금근로자가 실직 기간에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가사노동자, 월 60시간 미만의 단시간근로자 등은 법적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둘째, 적용 대상이라 해도 보험료 부담 때문에 가입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받기 어렵다. 셋째, 수급 요건이 엄격해 자발적으로 이직하면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완전히 박탈된다. 넷째, 실업급여를 받더라도 급여 수준이 낮거나 수급 기간이 짧아서 보장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2009년 4월 통계청 조사 결과는 실업급여의 우선적인 제도 개선 사항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표1> 참조). 이 조사에 따르면, 실직한 지 1년이 안 된 임금근로자 중에서 불과 11.3%만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취약계층일수록 실업급여를 받는 비중이 낮은데, 전 직장에서 상용직인 실직자는 37.0%가 실업급여를 받는 반면 임시직과 일용직 가운데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비중은 7.2%, 2.3%에 불과하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유도 차이가 있는데, 상용직은 자발적인 사유에 의한 이직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은 반면, 임시·일용직은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응답하고 있다. 따라서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고용보험 가입률과 ‘실업급여의 관대성’(실업급여의 수급요건·수급기간·소득대체율 등을 측정·비교해 실업급여 지급이 얼마나 관대한지 보여주는 지표)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12개국을 대상으로 실업급여를 비교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실업급여 관대성이 가장 낮은 나라다(<표2> 참조). 자발적으로 이직했을 때 수급 자격을 완전히 박탈하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적극적인 구직 활동 요건이 엄격하며, 실업급여 지급 기간이 3∼8개월로 가장 짧다. 급여수준이 실직 전 임금의 50%로 규정됐지만, 실제 받는 실업급여액은 이전 임금의 40%를 약간 상회할 뿐이다. 하지만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실직 이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일해야 한다는 기여 요건은 우리나라가 가장 관대한 수준이다.
   
 

실업급여 관대성 가장 낮은 한국
대부분의 임금근로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실직 이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일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음에도, 취약계층의 상당수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얼핏 상충되는 측면을 보여준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고용보험료 이외에 사회보험료 전체의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노사가 함께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는 2010년 현재 임금총액의 1.4%로 낮은 수준이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할 경우 국민연금·건강보험료도 함께 내야 하기 때문에 전체 보험료는 임금총액의 17.92%로 늘어난다.
따라서 영세사업장의 사업주나 저임금근로자는 고용보험료율이 낮은데도 전체 사회보험료 부담 때문에 고용보험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전체의 가입을 꺼리는 것이다. 이의 해결 방안으로 사회통합위원회와 한국노동연구원은 사회보험료 감면 등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자고 제안해왔다.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의 고용 및 소득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정적인 적발과 제재만으로는 사회보험 미가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세는 누진세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근로소득이 적으면 면세해준다. 반면 사회보험은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한 보험료율을 요구하기 때문에 저임금근로자는 오히려 불리하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선진국은 저임금근로자에게 사회보험료를 감면해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사회보험료 지원 정책을, 기업의 노동수요를 촉진하고 비공식 고용을 공식 고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고용전략으로 권고하고 있다.
사회통합위원회에 따르면, 10명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저임금근로자(최저임금∼최저임금의 1.3배)를 대상으로 사업주와 근로자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 일부를 지원할 경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최대 83만9천 명에 이른다. 이때 필요한 재원은 연간 7013억원인데, 2010년 3조원에 이르는 ‘직접 일자리’ 창출 대책을 정비하는 것으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더구나 사회보험료 지원은 가입자의 부담에만 의존해, 결과적으로 정규직 근로자만 보호하는 사회보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고용과 소득의 동반 하락으로 신용불량과 근로빈곤의 덫에 빠진 영세자영업자에게 임금근로자로 재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사회보험료 지원 등 고용보험 제도 개선만으로 취약계층의 실직 위험을 충분히 해결할 수 없다. 법적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자영업자,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지만 실업급여 수급 요건 미충족자 등은 여전히 실업급여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층은 바로 이들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은 희망근로 등 직접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단기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은 노동시장 여건에 따라 정책을 확대하거나 축소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참여자들이 부적절하다거나 들어간 돈에 비해 효과가 낮다고 지속적으로 비판을 제기했다. 특히 적절한 일자리로의 재취업 서비스나 지원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적인 일자리로는 취약계층이 실업과 빈곤의 덫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가 실업부조다. 실업부조는 자산 조사를 거쳐서 일정한 소득수준 이하인 실업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주요 대상이다. 2005년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12개국이 운영하고 있으며, 실업자 사회안전망의 발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참여수당 연계한 고용안전망
그러나 실업부조 도입에는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고,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관리 비용도 상당하다. 실업급여 수급률이 낮은 탓에 실업부조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반대도 있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정한 자격을 충족하면 국가가 소득을 보장해주는 전통적인 실업부조보다는 더 나은 일자리로의 취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직업훈련, 경과적 일자리, 취업알선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참여수당을 연계하는 형태로 ‘선 취업 지원, 후 소득 지원’ 하는 한국형 실업부조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저소득층은 장기적으로 실업 상태에 머무르지 않으며 노동시장 이탈 성향도 낮기 때문에 더 나은 일자리로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근로능력이 있는 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통해 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활성화 원리에 기반하며, 취약계층의 취업 촉진과 소득 지원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것이다.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저소득 실업자에게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참여수당을 연계하는 방식의 고용안전망 구축은 이웃 일본에서도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고용보험과 사회부조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훈련과 생활 지원을 결합하는 제2의 고용안전망 구축이 그것이다. 한편으론 한국형 실업부조가 고용정책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취업 지원이 필요한 목표집단을 저소득 실업자로 명확히 하고, 고용 서비스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직업훈련 따로, 단기적 일자리 따로, 고용보조금 따로였던 고용정책을 참여자의 특성과 능력에 맞게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직업훈련, 경과적 일자리, 취업알선, 고용보조금 등 기존의 단편적인 사업들을 한국형 실업부조를 중심으로 재배치할 수 있으므로, 참여수당 이외에 추가적인 재원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통합형 고용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심층상담을 통해 프로그램 참여 전 기간 동안 ‘사례 관리’(Case Management)가 이뤄져야 한다. 사례 관리를 담당하는 직업상담 전문인력의 확충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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