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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놈, 건방진 놈, 튀는 놈
[Design]
[8호] 2010년 12월 01일 (수) 유정미 economyinsight@hani.co.kr

유정미 대전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
 
공교롭게도 정보기술(IT) 분야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IBM·애플·구글의 로고를 보면 브랜드 디자인의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로고 디자인의 교과서적인 규범을 세운 IBM, 원칙을 어기고 금기를 깨트린 애플, 그리고 권위에 맞서 실험에 몰두한 구글. 이들의 디자인은 저마다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며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것으로 꼽힌다.

디자인의 정석 IBM
처음부터 모범생은 아니었다. 이름도 중간에 변경됐다. 바꾼 이름은 너무 길어서 기억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것이 IBM의 과거 모습이다. 그렇다고 IBM이 세계적인 기업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브랜드 디자인 측면에서는 당시의 다른 기업들과 별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IBM은 1956년 미국의 그래픽디자이너 폴 랜드를 만나면서부터 달라졌다. 그가 진행한 디자인을 통해 비로소 강력한 ‘기업 이미지 통합 체계’(CIP·Corporate Identity Program)를 구축하게 되었다. CI 디자인은 기업에 경영이념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유용한 수단이다. 이 작업을 통해 기업의 정체성은 물론 문화와 경영전략까지 체계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CI 디자인은 단지 로고 디자인에 국한된 의미가 아니라 시각 이미지 전체를 포함해야 한다. 이런 개념은 1950년대 폴 랜드를 비롯한 디자인 선구자들이 체계적으로 정립했다.
   
IBM의 초창기(1924-1946)로고.

폴 랜드는 IBM을 위해 기존 로고를 크게 바꾸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그동안 쌓아온 IBM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명확한 이미지를 더할 수 있는 영리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기존 로고보다 좀더 견고하면서 안정적 느낌을 주는 서체로 바꾸며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이로써 디자인은 기존 것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오히려 기업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말해주었다.
   
 

이후 IBM과 폴 랜드의 관계는 지속됐다. 그는 IBM의 시각 이미지 전체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조정했다. 로고에서도 그는 확정적인 디자인으로 그치지 않고 응용된 버전을 계속 내놓았다. 1972년 폴 랜드의 새로운 버전으로 IBM의 로고가 교체됐다. 일명 ‘줄무늬 로고’가 그것인데, 이 새로운 로고에서 죄수복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때 서류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사인하는 자리에 줄무늬를 새겨넣는 관례가 있었는데, 이는 결국 품위와 신뢰의 상징이 되었다. 폴 랜드는 이에 착안해 IBM의 기업 이미지에 줄무늬의 권위를 부여한 것이다. 이로써 IBM의 기업 이미지는 신뢰와 품위의 상징이 되었다. 이 줄무늬 로고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결국 이 간결한 디자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 중 하나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기업이 IBM의 CI 체계를 디자인의 교과서로 삼으며 충실히 따르고 있다.

금기를 깨뜨린 애플
애플의 로고에는 항상 사과가 있다. 그런데 이 사과는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닌다. 애플사의 로고만큼 뒷말이 무성한 경우도 드물다. 잡음이 일어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로고 디자인에 대한 콘셉트와 개발 배경을 공식적으로 밝힌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을 들고 나올 때 말고는 공식 석상에 나오는 걸 꺼린다니 창업자 성격 탓인 듯하다. 애플의 로고는 세 번의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엄밀하게는 두 번이다. 처음 로고는 빛도 보기 전에 폐기됐다. 디자인이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였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뉴턴의 모습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공동 창업자가 그렸다고 한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도하는 애플사의 현재 모습과는 거리가 먼 로고다.
   
애플의 초창기 로고.

두 번째는 1977년 소개돼 20년 동안 사용된 한입 베어먹은 사과 모양의 무지개색 로고다. 로브 자노프가 디자인한 이 로고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다. 애플사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정설에 가까운 설과 호사가들의 설로 나뉜다. 정설에 따르면, 사과는 지혜의 상징으로서 컴퓨터의 지혜와 연관되고 무지개색은 색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애플의 강점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입 베어먹은 모양은 깨문다는 뜻의 ‘바이트’(bite)로서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바이트’(byte)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비운의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훈장도 받고 세계 최초의 컴퓨터까지 만든 천재였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독이 든 사과를 베어물고 자살한 그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무지개색이 동성애자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으며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애플의 마지막 로고는, 이런 설이 영국 저술가 새디 플랜트에 의해 출간된 뒤 1997년에 변경됐다. 형태는 같은 사과인데 양감을 지닌 그러데이션의 크롬색 로고로 수정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애플의 두번째 로고(1977-1999).

디자인 원칙에 비춰볼 때 애플의 로고는 세 번 모두 금기를 깨뜨렸다. 첫 번째 로고는 사용되지 않아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형태를 단순하게 디자인하라는 원칙에 어긋났다. 두 번째 로고도 색상은 가급적 절제하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무지개색을 사용했다. 세 번째 역시 그러데이션 방식을 금하는 원칙에 맞서 그러데이션 로고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애플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의도된 선택이었다. 색상을 제한한 원칙은 비용에 따른 부담 때문이다. 인쇄매체 시대에는 색상이 많으면 그만큼 비용 부담이 커지므로 그 원칙을 고수해야 했다. 하지만 1980년대 DTP 시대를 선도하며 컬러 인쇄가 자유로운 애플에 색상 제한은 구시대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온라인 브랜딩이 가능한 인터넷 시대가 열린 1990년대에는 그러데이션 또한 더 이상 금기가 될 수 없음을 애플이 앞서서 선포한 것이다.
   
 

권위에 맞서는 구글
로고 디자인의 제1원칙은 ‘원형을 바꾸지 말라’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훼손하는 행위로 인식돼 금기시하고 있다. 적어도 구글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원칙을 충실하게 존중했다. 그러나 구글은 마치 전통과 권위에 맞서는 이단아처럼 로고 디자인을 과감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기념일마다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첫 화면 로고를 꾸미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구글의 로고 디자인 자체는 무척 평범하다. 많은 브랜드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으로 ‘Google’이라는 영문 글자를 그대로 사용한 디자인이다. 여기에 원색의 기본적인 색상을 볼륨감 있게 처리한 디자인으로 단순한 형식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본 로고의 가운데 놓인 두 개의 알파벳 ‘O’를 중심으로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하는 그래픽을 선보이는 것이다. 전세계의 국경일이나 기념일은 물론 유명한 아티스트나 과학자들의 탄생일을 기념한다.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하트 모양으로 바꾸고, 부활절에는 달걀이 두 개가 놓인다. 성탄절과 새해 인사를 하느라 눈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때로는 DNA로 바뀌어 ‘DNA 발견 50주년’을 기념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한국 출신의 재미동포 데니스 황(한국 이름 황정목)이다. 그래서 한국의 광복절과 한글날을 기념한 디자인도 소개된 바 있다.
   
각종 기념일을 장식하고 있는 구글의 로고디자인 ‘구글두들’.

이처럼 기념일을 장식하는 로고 디자인을 ‘구글 두들’(Google Doodle·구글의 낙서)이라고 부른다. 기념일을 다루는 범위도 세계적이어서 때론 그 의미를 해독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래서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2년 사이에 세계 각국에서 사용된 구글 두들 중 해석이 어려운 10가지를 뽑아 소개하기도 했다. 그중 1위가 2008년 9월30일에 소개된 기념일이다. 이날은 수피 교단의 창시자인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의 탄생일을 기념한 것이라고 한다. 수도사들이 복장을 갖춰 이슬람 종교의식인 ‘세마’를 연출하는 모습으로 그를 기렸다. 이를 통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네티즌은 자기들만의 구글 로고를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이제 그들 사이에 구글 두들은 즐거운 시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로고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구글이 증명해 보인 셈이다. 구글에 의해 로고는 더 이상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유기체로 바뀌었다.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로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세상이 변하면 디자인도 변한다
기업의 로고 디자인은 1950년대 미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디자인 선구자들에 의해 기본적인 철학이 정리됐다. 전통적인 규범은 단순하고 절제된 로고를 최고의 요건으로 꼽았다. IBM은 이 원칙에 따라 가장 교과서적인 전범을 제시했다.
그러나 디자인은 기술 변화에 따라 변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정립된 규범이 디지털 시대까지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매킨토시와 함께 디지털 시대를 선도한 애플은 그동안 존중된 로고 디자인의 기본적인 원칙을 깨뜨렸다. 로고에 절제된 색상을 사용하라는 규칙은 화려한 무지개색 로고로 1980년대에 무너졌다. 그래도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계속 그러데이션 로고는 피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20년 뒤 애플이 또다시 그 원칙마저 흔들었다. 이는 인쇄매체 시대에 정립된 원칙으로 디지털 시대까지 유효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21세기에는 구글이 로고 디자인의 전혀 새로운 방식을 실험했다. 로고의 원형은 바꾸지 말라는 가장 중요한 권위마저 무너졌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인쇄매체 환경의 고정불변한 로고를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로고 디자인은 디지털 환경의 변화로 인해 절제와 단순 미학에서 더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요소가 적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로고 디자인은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대체로 3D와 애니메이티드 로고를 예상하고 있다. 현재로선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또 다른 기술의 출현으로 미래에는 당연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무지개색과 그러데이션 방식, 그리고 때마다 변하는 로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듯이.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변하면 디자인도 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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