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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기업부채 ‘침체 신호탄’?
[Finance] 경기변동성 완화와 신용 확대의 의미
[99호] 2018년 07월 01일 (일) 윤석천 maporiver@gmail.com

호황과 불황이라는 고전적 경기변동 형태가 사라지고 있다. 통화정책으로 돈이 얼마나 시장에 풀리느냐에 따라 시장과 경기가 요동친다. 무분별한 신용확대는 경제주체의 자생력을 무너뜨리고, 언제나 침체와 불황의 그늘을 드리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18년 6월13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어 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했다. REUTERS
한국은행은 2017년 8월 ‘경기변동성 축소에 대한 재평가’란 보고서를 내놨다. 핵심은 한국의 경기변동성이 주요국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줄고 있는데, 경제 성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보다는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신호라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조로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경기 국면을 제대로 식별하는 게 어려워지고, 이는 경기 판단과 대응의 오류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일단 경기변동성이 줄어드는 현상에 대한 진단은 정확하다. 하지만 그 원인이 한국 경제의 조로 현상 때문이란 판단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경기변동성 축소가 한국에 국한돼 나타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고전적 경기변동이 엷어진 것은 전세계의 공통된 현상이다. 경제 성숙과 경기변동성 축소의 상관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고전적 경기변동 형태는 무너졌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명확히 호황이라 할 만한 국면은 없었다. 긴 불황과 엷은 회복만 이어졌다. 미국을 예로 들면, 고통스러운 수축 뒤에 허약한 성장이 따랐다. 유럽과 일본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 경제의 신용 주기
경기변동이 더는 명확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경기변동 대신 통화정책에 좌우되는 신용 주기의 변화만 완연할 뿐이다. 신용 확대와 축소가 경제를 좌우하는 세상이 되었다. 경기변동 대신 신용변동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보자.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은 1990년대 말 비정상적으로 금리를 내렸다. 당시 경기는 호황 국면이었는데도 그는 저금리를 추구했다. 이른바 ‘Y2K’(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사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 우려와 1998년 발생한 신흥국 금융위기에 선제적 대응으로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신용 확대는 2000년대 초반 닷컴 거품의 씨앗이 됐고, 이후 금리인상으로 침체가 뒤따랐다. 벤 버냉키 역시 2000년대에 차입자들에게 매우 후한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주택시장 거품을 불러와 2008년 금융위기와 대침체의 원인이 됐다. 물론 침체를 촉발한 건 저금리 뒤 이어진 금리 인상, 즉 긴축이었다. 신용의 확대와 축소에 따라 경기가 변동되고 있다.
 
신용 주기의 핵심에 금리가 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춰 부채를 늘리면 자산 가격이 오른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고 보유 자산을 줄이면 자산 가격은 낮아진다. 자산 가격 변동은 호황과 침체를 만든다. 침체는 자산 가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경기변동에선 침체가 자산시장 약세를 불러왔으나, 신용 주기에선 낮아진 자산 가격이 침체 원인이 된다. 긴축으로 자산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소비자 지출과 기업 투자가 줄어든다.
 
신용 접근 가능성이 소비자 지출과 기업 투자를 결정한다. 쉽게 말해, 돈을 빌리기 쉬우면 지출과 투자가 늘지만 어려워지면 지출과 투자가 쪼그라든다. 그에 따라 경기가 변동한다.
 
   
▲ 2008년 9월 금융위기 발생 직후 영국 런던의 리먼브러더스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세계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러더스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가 촉발한 금융위기로 파산했다. REUTERS
민스키 모멘트
우리는 지난 금융위기에서 ‘민스키 모멘트’를 목격했다. 과도한 부채 확대에 기댄 호황이 끝난 뒤 채무자의 부채 상환 능력이 악화돼 결국은 건전한 자산까지 내다팔아 금융시스템까지 붕괴하는 순간을 말하는 민스키 모멘트는 여전히 과소평가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만큼 현대의 금융위기를 잘 설명해주는 모델은 없다. 민스키 모멘트는 지금 같은 신용 주기에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글로벌 부채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필연이다.
 
3년 전,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는 ‘부채와 디레버리징’이란 엄청난 보고서를 발표했다. 글로벌 부채 상황을 분석한 보고서였다. 결론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가계, 기업, 정부, 금융 부문 부채를 포함한 글로벌 부채는 2007년 4분기 57조달러에서 2014년 2분기 199조달러(약 22조원)까지 늘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자료가 이번엔 국제금융협회(IIF)에서 발표됐다. IIF의 ‘글로벌 부채 모니터’에 따르면 글로벌 부채는 1997년 74조달러, 2007년 167조달러, 2016년 216조달러, 2017년 238조달러로 늘었다. 이 수치대로라면 글로벌 부채는 1997년에서 2007년까지 연평균 8.5%씩 늘어난 셈이다. 다행히 2007~2017년에는 증가율이 연 3.6%에 그쳤다. 좋은 일이다. ‘부채 다이어트’가 이뤄진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2017년이 문제였다. 말 그대로 ‘부채 파티’가 열렸다. 부채가 10.2% 늘었다. 부문별로 나눠보면, 비금융 기업 부채는 11.1%, 정부 6.7%, 가계 12.5%, 금융기업 부채는 11.3%가 늘었다. 정부 부문을 빼고 나머지 부문의 부채가 급증했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징조다.
 
특히 기업 부채 시장은 침체를 부르는 폭탄이 될 수 있다. 설마 하겠지만 가능성이 높다.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 최고의 금융시스템을 갖춘,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미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는 역으로 오늘날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말해준다. 그런 일은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당시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와 관련 파생상품에서 발생했지만, 오늘날 발생 확률이 가장 높은 지점은 기업 부채 시장이다.
 
미국 비금융기업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72%에 이른다. 2017년 기준으로 약 14조5천억달러(약 1만6천조원)다. 2017년에만 8100억달러 늘었다. 현재 지난 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신용 주기의 정점에 있거나 정점에 다다랐다고 봐야 한다. 현재 상황이 정점이라면 하락만이 남았고, 이는 곧 침체를 뜻한다. 신용주기의 정점에선 어김없이 침체가 왔다.
 
회사채 시장의 허약성
금융위기 이후 2010년부터 도드-프랭크법(월스트리트 규제 및 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됐다. 핵심은 은행의 자기자본 거래금지, ‘그림자은행’(중앙은행의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는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소비자보호국 감시 권한 강화, 대마불사였던 거대 금융기관에 대한 상시적인 감독 등이다. 현재 이 법을 무력화하는 법안인 ‘금융선택법’이 2018년 6월8일 미 하원을 통과했지만, 아직 도드-프랭크법은 유효하다.
 
도드-프랭크법으로 주요 은행의 시장조성 능력은 약 10% 줄었다. 그런데도 현재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은 양호하다. 헤지펀드와 다른 비은행 대출자들이 은행의 빈자리를 메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시장조성자가 아니란 사실이다. 시장조성자는 고객의 매수 주문에 응할 수 있도록 채권 재고를 유지하고, 매도 주문에 응할 수 있도록 자금력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헤지펀드와 비은행대출자는 그럴 의무가 없다. 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을 보유할 필요도, 투자자가 매도하려 할 때 그 물량을 사줄 필요도 없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장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매도자가 가장 원할 때 매수자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 리서치 회사 게이브칼(Gavekal)의 ‘유동성 환상과 그 결과’란 보고서를 보면, 공식 채권 딜러들이 보유한 능력은 금리 상승에 따라 예상되는 매도세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의 회사채 시장은 금융위기 직전에 견줘 2배 정도 규모가 커졌다. 반면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는 채권 딜러의 능력은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 스트레스를 받는 시장 환경에선 80% 이상 줄었다.
 
현재 회사채 시장은 새로운 투자 세력인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와 뮤추얼펀드 등이 지배하고 있다. 이들 펀드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하이일드 채권에만 2조달러 이상을 투자한 상황이다. 이들의 투자 행태는 매우 단기적이다. 충분한 유동성을 가진 시장을 기대하며 투자한다. 만약 금리가 0.5~1%포인트만 올라 유동성이 줄어들면 이들은 충격받고 시장을 떠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시장을 떠받칠 수 있을까. 없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미국 기업들은 4조달러 정도의 채권을 차환해야 한다. 기업 부채의 3분의 2에 이르는 금액이다. 차환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차환이 된다 해도 기업 현금 흐름의 상당액이 성장이 아닌 부채 상환에 쓰인다면 경제 수축은 불가피하다.
 
현대 경제는 신용경제다. 문제는 신용팽창이 영원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연준은 오랜 제로금리 이후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다. 이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다만 오랜 기간 이어진 신용 확대로 경제주체는 자생력을 잃었다. 부채에 심각하게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온실 속 화초는 찬바람을 이겨낼 수 없다. 금리 상승이란 혹한은 경제주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것이 신용경제의 본모습이다. 중앙은행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침체가 아니라 무분별한 신용 확대다. 이를 무시하는 한, 호황없는 혹은 허약한 호황 뒤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주기적 불황은 불가피하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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