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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소득불균형 등 만능 해결사
[세계는 지금] 스위스 경제의 핵심 협동조합
[99호] 2018년 07월 01일 (일) 이두영 dylee@kotra.or.kr

정부는 일자리 증가 없는 성장과 인구 노령화 등과 함께 빠르게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협동조합 확산을 이끌고 있다. 공공부문이 맡던 일자리 창출, 복지서비스 제공을 협동조합이 분담해 사회문제 해결에 민간의 참여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두영 KOTRA 스위스 취리히무역관 관장

   
▲ 스위스 베른 외곽에 있는 협동조합 형태의 슈퍼마켓 미그로스. REUTERS
한국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해 조합제도의 법적 기반을 닦았다. 이후 정부가 앞장서 협동조합의 판로 개척, 경영 교육과 컨설팅, 금융서비스 지원으로 자생적 협동조합 활성화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현 문재인 정부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100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선정했다. 2018년 3월 정부개헌안에 ‘협동조합 육성’을 처음 명시했다.
 
협동조합은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어 2012년부터 2016년 말까지 1만640개가 설립되는 등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협동조합은 재화나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조합원 간의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조직을 말한다. 조합원은 조합 설립에 기여한 자본금 규모와 상관없이 1인 1표 권리를 부여받아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조합 운영에 참여한다. 이런 협동조합 방식은 특히 스위스에서 두드러진다.
 
협동조합은 영리 또는 비영리를 목적으로 5명 이상이 자유롭게 상법상 회사와 민법상 법인과 구별되는 협동조합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소비자가 물품이나 서비스의 안정적이고 합리적 구매를 목적으로 설립하는 소비자협동조합, 생산자가 원자재 공동구매와 공동판로 개척 등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생산자협동조합,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하는 근로자협동조합 등으로 구분된다.
 
기획재정부의 협동조합 실태조사(2015년)를 보면 협동조합은 산출액 10억원당 소요되는 취업자가 21.4명으로 모든 산업이 평균 취업자 수 6.4명을 크게 상회할 정도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또 848개 협동조합이 고령자, 장애인, 경력단절여성 등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과 날로 늘어나는 사회서비스 수요에 대응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엔도 1인 1표의 민주적·자주적 협동조합을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 부문과 효율성을 상징하는 민간 부문의 장점을 살려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사업모델로 인정하고 있다.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공표하기도 했다. 국제협동조합연합은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 협동조합에 가입했으며, 협동조합이 2억8천만 명을 고용해 세계 고용인구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고 본다.
 
협동조합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방직산업에서 태동한 이래 유럽 전역에서 활발하게 협동조합 운동을 펼쳤다. 스위스에선 생산자 간 협동이 필요한 낙농·치즈 등 농축산업 부문에서 협동조합이 조직됐다. 1881년 협동조합이 법제화한 뒤에는 농업, 도소매업, 금융, 보험, 여행업 등 산업 전반으로 협동조합이 퍼져나갔다. 2017년 기준 8855개 협동조합이 결성돼 활발히 활동하는 스위스는 가히 ‘협동조합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 거리를 걷다보면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상점, 주유소, 은행, 여행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위스 협동조합은 다양한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성장해 경제의 큰 축을 형성한다. 국제협동조합연합이 발표한 ‘2017년 세계 300대 협동조합 순위’(2015년 매출 기준)에 게재된 스위스의 주요 협동조합은 미그로스(Migros·도소매, 매출 284억달러), 코프(Coop·도소매, 279억달러), 페나코(Fenaco·농식품, 63억달러), 라이파이젠그룹(Raiffeisen Group·은행, 41억달러), 스위스 모빌리아(Swiss Mobiliar·보험, 37억달러) 등이다.
 
미그로스와 코프는 스위스의 소비재 소매 매출의 50%를 점유하는 대형 소매유통 기업이다. 두 기업의 고객이자 주인인 조합원 수는 스위스 인구 820만 명의 50%에 이른다. 고용인원도 14만3천 명으로 스위스 소매산업 고용인원의 44.4%를 차지한다. 라이파이젠은행은 2290억프랑(약 254조원)의 고객예탁금을 운용하는 스위스 3대 은행이고, 스위스 모빌리아는 스위스에서 규모가 큰 부동산 보험회사다. 각각 190만 명, 100만 명의 조합원이 있다. 스위스 협동조합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가치와 공공 가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미그로스와 코프 등만 봐도 협동조합 안에서 민주주의(Democracy), 평등(Equality), 연대(Solidarity), 자립(Self-sufficiency)이라는 협동조합 정신이 잘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스위스 바젤에 있는 도소매 협동조합 그룹 코프의 본사. REUTERS
민주주의 안착과 산악지대… 토대 마련
스위스에서 협동조합은 일자리 창출과 함께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 자칫 분열되기 쉬운 지역 간 통합도 촉진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특성상 주주 이익보다는 공동체 이익, 사회적 가치를 우선해 시장경제의 단점도 보완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합원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고, 기업 과실을 일반 기업보다 이해 당사자 간에 공정하게 분배하는 경향이 있다. 스위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세전소득 기준으로 소득이 가장 공정하게 배분되는 국가다.
 
미그로스는 2016년 현재 최고경영자 연봉이 93만프랑(약 10억3천만원)으로 슈퍼마켓 매장 등의 직원 최저 연봉 4만6800만프랑(약 5200만원)보다 20배 정도 높다. 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스위스의 3분의 1 수준인 한국의 대형 유통업체 최고경영자의 연봉 수준 11억~17억원보다 낮다. 미그로스의 최고경영자 연봉과 직원 1인의 최저 연봉의 차이도 (소매유통업계 직원의 임금 수준이 현저히 낮은) 한국보다 크지 않다. 이는 미그로스 경영진의 연봉 결정 과정에서 기업 이익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인데, 미그로스의 조합정신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컨설팅기업 지에프케이(GfK)는 스위스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경제성, 기업 이미지, 사회·도덕적 기대 충족을 기준으로 기업 평판을 해왔다. 미그로스는 2017년까지 4회 연속 평판이 가장 좋은 기업에 선정됐다. 코프가 6위, 라이파이젠은행이 10위, 스위스 모빌리아가 16위를 차지해, 협동조합이 기업활동에서 사회적 가치를 더 충실히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많은 협동조합이 사회복지 서비스를 하는데, 100년 역사의 스위스 주택협동조합이 공공임대의 60%에 해당하는 16만 채의 아파트를 민간보다 저렴하게 임대해 저소득층 주거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그 증거다.
 
스위스에서 협동조합이 활성화한 배경으로 오랜 전통의 풀뿌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협동조합이 지닌 경제적 효용성을 꼽을 수 있다. 스위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강대국과 국경을 접한 작은 나라다. 1848년 연방헌법 제정과 함께 26개 주로 구성된 스위스연방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자주국방과 경제 부흥을 위해 통일국가 형성이 촉진됐다. 반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쓰는 전통과 문화가 다른 각 주는 독특한 문화, 삶의 방식을 유지하려 했다. 이는 스위스가 지방분권이 가장 강력한 연방제국가를 선택하는 밑거름이 됐다. 지방분권 전통은 풀뿌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토대가 됐다. 지금도 26개 주는 독자적인 세제·교육·보건 등 시스템을 운영하며, 분기별로 주요 사안에서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려는 직접 국민투표를 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전통은 기업 운영에서도 개인의 자본 크기보다는 1인 1표 민주주의, 평등한 조직 운영을 지향하는 협동조합과 자연스럽게 접목될 수 있었다. 스위스는 알프스가 있는 산악국가다. 주요 산업이 목축·낙농업일 수밖에 없고, 가축 사육농장을 공동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협동조합이 유용한 조직 형태로 자리잡았다. 산악지대가 많은 지리적 여건에서 원격지 주민이 합리적 가격으로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협동조합이 큰 몫을 했다. 스위스 풀뿌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전통이 협동조합 활성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결실을 맺으려면 공동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참여 경험과 함께 공동체 이익을 협동조합으로 실현하려는 시민의 활발하고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해 시장의 활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있다. 다행히 최근 활발한 시민의 정치 참여와 노령화 등으로 복지 수요 급증이 협동조합 정착에 좋은 토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조합원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점을 고려하면 다양한 정부 지원은 협동조합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이뤄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인다. 스위스 사례는 협동조합이 정부 지원 없이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주민이 주인이자 고객인 미그로스와 코프의 스위스 농산물 우선 구매, 유기농 등 지속가능 제품 구매, 활발한 문화·교육 등 사회사업은 협동조합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시장경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 대한무역투자진흥 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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