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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제콜·관료 출신의 공고한 카르텔
[Issue] 프랑스 40대 기업(CAC 40) 경영진 분석
[98호] 2018년 06월 01일 (금) 쥐스탱 들레핀 economyinsight@hani.co.kr

40대 기업 회장 절반이 공직 거친 최고 학벌 남성… 여성·노동자 이사 늘린 법 개정에도 실질 변화 미미

프랑스 상위 40대 기업(CAC 40) 경영진은 대부분 같은 그랑제콜 출신의 전직 정부 관료인 남성 엘리트가 장악하고 있다. 2017년부터 법 개정으로 일부 변화는 보이지만 그들만의 리그는 여전하다.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가 2007년에 이어 이들 기업의 경영진 내부 구성을 분석했다.
 
쥐스탱 들레핀 Justin Delépine 마르크 슈발리에 Marc Chevallier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회사 실적 발표회에서 경영 상황을 설명하는 자동차부품 업체 발레오의 자크 아쉥브루아 회장. 아쉥브루아 회장은 베올리아와 BNP파리바 이사를 겸하고 있다. REUTERS
2018년 4월 에어버스 주주총회를 신호탄으로 시작된 프랑스 시가총액 기준 상위 40대 기업(CAC 40) 주총 시즌은 6월 중순 카르푸와 르노를 마지막으로 종결될 것이다. 이렇게 2개월 남짓 프랑스 주요 상장기업의 대주주와 소액주주는 지난 회계연도 결산 내용을 승인하고 경영진 보수를 확정하며 이사회 임원 일부를 교체한다. 오래전부터 ‘그들만의 세상’이던 이사회는 그 폐쇄성 때문에 비판 대상이었는데, 지난 몇 년에 걸쳐 구성 규칙이 바뀌었다. 여성과 노동자 이사의 비중 확대나 겸직 제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조사에선 외관상 변화에도 현실은 달라진 게 그다지 없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핵심이 여전히 같은 사람에게 집중된 것이다.
 
1천 명이 지배하는 세상
법인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5~16명이 기업 이사회나 감사회를, 12~13명이 임원진을 구성한다. 전자가 후자를 감독하고, 후자는 경영 책임을 진다. 파리증권거래소의 대표 주가지수인 CAC 40을 구성하는 시가총액 기준 상위 40대 기업 전체로 보면 이사·감사·임원 수가 1천 명이 조금 못 된다. 이 가운데 74명이 하나 이상 다른 40대 기업의 이사를 겸하고 있다. 프랑스 대표 기업 사이에 일종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특히 루이뷔통(명품), 카르푸(유통), 오랑주(통신), 생고뱅(건축자재), 베올리아(물) 이사회나 경영진 가운데 다른 40대 기업 이사 등을 겸하는 사람은 각각 5명이 넘는다. 이렇게 연결된 네트워크 밀도는 기업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기할 점은, 다른 기업과 관련을 맺은 기업 상당수가 정부와의 관계도 특별하다는 것이다. 오랑주, 사프랑(항공엔진), 엔지(전력)처럼 정부가 직접 출자해 지분을 보유하는 기업, 베올리아·생고뱅·부이그(통신) 등 정부 발주 비중이 높거나 BNP파리바처럼 금융 규제가 심해 기업 활동에서 정부 의존도가 큰 기업이다. 이들 기업의 경영진이 일반적으로 각료나 관료 출신인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로레알과 루이뷔통은 예외적이다. 두 기업은 다른 40대 기업의 지분 보유로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프랑스의 주요 기업들과 아예 관련이 없거나 거의 없는 기업도 있다. 라파즈홀심(시멘트·건축자재 기업으로 2014년 스위스 홀심과 프랑스 라파즈의 합병으로 탄생)이나 아르셀로미탈(2006년 세계 1위 철강업체 인도 미탈이 2위 아르셀로를 인수)처럼 법적으로 외국 법인이거나 주요 주주 2명이 중국과 카타르 국적 보유자인 아코르(호텔)처럼 외국인 주주 영향이 큰 기업들이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이 완전히 고립됐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르셀로미탈 회장 락슈미 미탈은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이사다.
 
이처럼 예외가 있지만, 40대 기업 전체 지형도를 보면 여전히 강한 상호연결성을 가진 프랑스 자본주의의 특징이 눈에 띈다. ‘핵심 그룹’ 시스템을 끝낸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외국자본 공격에서 기업을 지키려는 기업 간 교차 출자가 성행하고 있다.
 
   
▲ 뱅상 볼레르 회장(가운데)를 비롯한 비방디의 주요 임원들이 주주총회에 참석해 미소를 짓고 있다. 비방디는 경영진에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으로 악명이 높다. REUTERS
겸직 제한과 여성·노동자 이사 확대
오늘날 동일인이 복수 기업 이사나 감사를 겸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기업 간 연결은 과거보다 덜한 편이다. 이사 겸직은 프랑스 기업을 외국 기업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러나 2001년 이사 겸직 제한법이 제정돼 이사 겸직은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 전체 40대 기업 이사 가운데 이사직을 3개 이상 겸직한 사람은 1999년 12%에서 2016년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다른 40대 기업 이사 등을 겸한 이사도 2011년 94명에서 2018년 60명으로 줄었다.
 
겸직 이사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겸직 이사는 최고 경영진으로 올라갈수록 흔하다. 40대 기업의 회장, 대표이사, 최고경영자(CEO) 59명 가운데 19명이 현재 다른 40대 기업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다. 카르푸 이사 겸 루이뷔통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 오랑주 이사 겸 카르푸 회장인 알렉상드르 봉파르, PSA(자동차) 회장이자 에어버스와 토탈(정유) 이사인 카를로스 타바레스, 알스톰(전력·운송) 전 회장이자 사노피(제약)·부이그·라파즈홀심 이사인 파트리크 크롱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외이사’ 직함으로 이사직을 겸한다. 프랑스의 대표적 사용자 단체인 민간기업조합과 경제인연합회의 기업지배구조 규정은 이사회의 ‘상당한 비중’을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권고한다. 그렇지만 겸직 이사들이 형성하는 권력 네트워크는 사외이사의 독립성보다는 유력자 포섭과 특혜라는 느낌을 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다. 2017년부터 종업원 500명 이상 대기업은 이사회 임원 여성할당제를 준수해야 한다. 여성이 이사회 임원의 40%를 넘어야 한다. 그 결과, 2013년 28%였던 40대 기업의 여성 이사 비중이 2018년 초 40%로 늘어났다. 그러나 기업의 다른 결정기구에선 여전히 여성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 40대 기업의 회장, 대표이사, 최고경영자 가운데 여성은 단둘뿐이다. 엔지 대표이사 이자벨 코세르와 창업주인 부친 뒤를 이어 회장에 취임한 소덱소(음식서비스) 소피 블롱이 그들이다. 위계상 이사회 바로 아래인 경영진에서 여성 비중은 14%에 그친다. 그나마 인사관리나 홍보처럼 최고위직 진출이 어려운 자리가 대부분이다. 최악은 부이그나 빈치(건설), 아르셀로미탈, 비방디(미디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처럼 경영진에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기업들이다.
 
이 밖에 이사회 구성에서 노동자 이사 임명 의무를 강화하는 쪽으로 법령이 개정됐다. 2017년부터 프랑스에 본사를 둔 종업원 1천 명 이상 대기업은 적어도 1명의 노동자 이사를 둬야 한다. 현재 40대 기업의 577개 이사직 가운데 노동자 주주를 대표하는 18명 이사를 제외하면 46개가 순수한 노동자 이사의 자리다.
이처럼 전체의 10%에도 못 미치는 비중으로는 달걀로 바위 치기에 불과하다. 40대 기업의 기본 운영 방식에는 변화가 없고 기업이 사회적 차원을 고려하도록 하는 유인이 딱히 커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최근 의회를 통과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기업 성장과 변혁을 위한 행동계획(PACTE) 법’은 8명 이상 이사회에서 노동자 이사 수를 2명으로 늘리고, 노동자 이사 임명 의무를 지주회사(가족경영 기업 제외)와 사회보험회사들로 확대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고 독일식 노사 공동결정 시스템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40대 기업 가운데 12곳은 가족경영 기업이다. 규모가 크지만 여전히 한 가족이 대주주이며, 어떤 기업에서는 가족 한 사람이 직접 회사를 경영한다. 소덱소 이사 14명 가운데 5명이 창립자 가족이며, 마르탱 부이그는 아버지로부터 부이그그룹을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다. 페르노리카(주류) 회장 겸 대표이사는 창립자 손자이며, 다른 후손 3명은 이사다. 루이뷔통의 아르노 회장은 두 자녀를 이사회에 앉혔다. 볼로레 가문이 경영하는 비방디그룹도 상황이 비슷하다. 여러 기업이 대주주인 가족을 경영진에도 앉히고 있지만, 푸조·로레알·퍼블리시스(광고)처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호하는 기업도 있다.
 
대기업 경영진 장악한 3대 학맥
프랑스 대기업을 지배하는 경제 엘리트의 동질성은 예나 지금이나 견고하다. 이들 지배층을 묶어주는 것은 경력, 특히 학맥이다. 40대 기업의 정상에 오르려면 3대 그랑제콜(프랑스 고유 고등교육기관으로 ‘대학 위의 대학’이라 함 -편집자)인 에콜폴리테크니크, 국립행정학교, 경영대학원 가운데 하나를 나와야 한다. 최고 엘리트 코스만으로 탄탄대로를 밟고 싶다면 세 학교 출신인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명문 그랑제콜을 나와 정부 부처에 들어가야 비로소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에콜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다면 광산·토목 관련 부처에 들어가고, 국립행정학교 출신이면 기획재정부 재정감독관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다. 물론 성적도 우수해야 한다. 토탈, BNP파리바, 에어버스, 르노, 발레오(자동차부품), 솔베이(화학·엔지니어링)의 공통점은 전·현직 회장과 대표이사가 모두 광산·토목 부처 관료 출신이다. 결론적으로 40대 기업의 현 회장 가운데 45%가 에콜폴리테크니크나 국립행정학교를 나온 관료 출신이다.
 
이들 비중은 2007년에 비해 그나마 줄어든 것이다. 당시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조사를 보면, 이 수치는 62%였다. 드문 몇몇 예외를 빼면, 다른 40대 기업 회장도 3대 그랑제콜은 아니더라도 공과대학인 에콜상트랄, 상경계 명문 인시아드, 정치대학(시앙스포), 유럽경영대학원 같은 그랑제콜 출신이다.
 
40대 기업 수뇌부와 이사회를 지배하는 ‘그들만의 세상’의 뿌리를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대부분이 공대 교육을 받았다는 점은 이들 기업에서 여성이 임원으로 자리잡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 또 다른 현상은 40대 기업 회장들이 사회생활을 정부 관리로 시작한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의 35%가 각료나 고위 관료 출신이며, 이 비율은 2007년과 비슷하다. 최초 민영화 바람이 지나간 지 벌써 30년이 흘렀지만, 정부 고위 관료를 거치면 비교적 쉽게 ’낙하산’을 타고 대기업 수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카트린 콤 릴대학 사회학 교수는 “경제 엘리트 형성에서 어떤 나라도 프랑스처럼 국가기관이 핵심적 구실을 한 나라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 프랑스 대기업 수뇌부에 상존하는 ‘족내혼’(특정 집단 내에서 배우자를 구하는 관행)의 결과를 평가해볼 때다. 물론 기업에는 수뇌부와 이사회에 형성된 네트워크 문화가 귀중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트 선별 방식이 기업 내부의 사기를 저하시킨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내부 승진을 차단함으로써 명문 출신이 아닌 관리자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인재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기업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이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교수인 피에르 프랑수아가 강조한 것처럼, 경제 엘리트와 관련해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들이 연봉 인상이라는 이해관계를 최소한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 프랑스 3대 그랑제콜의 하나인 에콜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이 혁명기념일을 맞아 파리 시내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REUTERS

 

이사회 주 임무는 인맥 형성과 명성 과시?
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임원들로 구성되며, 40대 기업들은 노동자 대표 1명을 포함해 평균 14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는 최고경영자를 선임하고 감독하며 회사의 전체적인 전략 목표를 설정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연구부장 에르베 졸리는 이사 임명이 일종의 과시욕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이사회에 특정 인물을 임명함으로써 위엄과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 인맥을 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사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이사회는 여전히 기업에서 노동 현실에 대한 문제가 거의 제기되지 않는 최후 공간의 하나다. 어떤 이들은 이사들이 더욱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70% 넘는 이사회 출석률과 이사들의 출석률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이사회와 경영진의 분리를 주장한다. 동일인이 감독과 운영관리 기능을 겸직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그러나 40대 기업 절반 이상이 두 역할을 분리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현재 40대 기업 수장 가운데 21명이 대표이사인 동시에 이사회 의장이다. 2007년 이들의 수는 19명이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8년 5월호(제379호)
Enquête sur l'aristocratie du CAC 40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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