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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를 만드는 건 사람의 힘이다
[경제와 책]
[98호] 2018년 06월 01일 (금) 박찬일 저자 chanilpark@naver.com

박찬일 저자

<노포의 장사법>
박찬일 지음 | 인플루엔셜 펴냄 | 1만6800원
 
일본에 오래돼 유명한 식당이 있다. 미슐랭에서 별 셋을 받았다. 400년 가까운역사다. 교토의 ‘효테이’다. 16대째 내려가고 있다. 한 매체가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대를 잇는 목표가 뭐냐고. 대부분의 2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선대 유지를 받들되 더 나은 식당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하면 선대와 똑같이, 변하지 않는 맛과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심합니다.”
 
   
 
오래된 것의 빛나는 가치는 어쩌면 그 말에 들어 있을 것 같다. 내 노포 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왜 오래된 식당은 변하지 않는데도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드는가. 명성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걸까.
 
효테이는 대략 우리나라 광해군 시기에 개업했다. 교토 신사 앞 떡집 ‘이치와’는 1천 년이 됐다. 거란이 쳐들어온 고려 현종 때 문을 열었다. 왜 일본 식당은 오래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노포가 적을까. 하나하나 의문을 풀어보기 시작했다. 일본은 전쟁을 많이 겪지 않아 그렇다는 해석도 있다. 태평양전쟁 때 공습을 받았지만 지상군 교전은 일본 영토에서 없었으니 그럴듯하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 때 혹독한 파괴를 겪은 유럽에서도 100~200년 된 식당이 살아남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식당은 100년을 겨우 넘었다. 그것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어쨌든 나는 우리나라 노포의 역사를 짚어갔다. 10여 년의 일이었다.
 
우리가 다 알 만한 오래된 식당을 다녔다. 문전박대도 있었다. 잘되는 식당이니 인터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러 사기꾼이 있어, 나도 그런 대접을 받았다. 자꾸 찾아갔다. 그들이 마음을 열었다. 청진옥, 한일관, 하동관, 우래옥, 조선옥 같은 한국 최고(最古)의 식당 안을 볼 수 있었다.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나이 든 직원이 많았다. 입사 60년차도 흔했다. 스무 살에 들어와 팔순이 기본이었다. 우래옥 김지억 전무는 구순이 머지않았다.
 
1961년 경력으로 입사했다. 그런데도 ‘잘리지’ 않았다. 개점 시간인 오전 11시20분, 그가 지팡이를 짚은 채 손님을 맞는다. 그는 아는 손님이 아주 많다. 몸이 불편해도 꼭 서서 손님을 맞는다. “사장이 ‘나가시오’ 하는 말이 없으니 목숨 되는 날까지 나오는 것이지.” 근로소득세를 이처럼 오래 낸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조선옥 주방장인 박중규씨도 다르지 않다. 내년이 팔순이다. 19살에 들어와 60년이 됐다. 조선옥에 가면 언제든 그가 연탄화덕 앞에서 갈비 굽는 걸 볼 수 있다. 그에게도 정년이 없다.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근력이 없어져서 요리하실 수 없으면 나와서 앉아 계시라고 했어요. 가게 역사는 사람에 있으
니까요.”
 
한일관의 쟁쟁한 노장 두 분도 마찬가지다. 홀을 관리하는 김동월씨, 주방 담당 곽명훈씨 역시 고희에 다다랐다. 이들이 한일관 80년 맛을 책임진다. 노포는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 역시 사람의 힘으로 생겨났다.
 
노포 취재를 다니며 현대사의 여러 흔적을 보았다. 인천 노포 신일식당은 복과 아귀 요리 전문집이다. 할머니 대에서 시작해 며느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가게가 처음 생길 때는 사람들로 어수선하던 전쟁통이다. 물자와 사람, 피란민이 몰렸다. 이때 ‘깡마당’이라는 노천 부두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버리다시피 하는 생선을 굽고 국을 끓였다. 그 생선이 바로 복과 아귀다. 복은 요리하기 어려우니까, 아귀는 재수 없다고 버리는 고기였다. 그것을 끓여 공짜로 주었다. 술 한잔 시키면 나오는 안주였다. 일제강점기에 발달해 전후에 피란민 수용, 다시 근대화와 공업화의 첨병으로 활약한 도시가 인천이다.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이 얼룩진 인천 역사를 증명하는 식당인 것이다.
 
한국에선 30~40년이면 오래된 식당 축에 든다. 호프집으로 노포가 된 집도 있다. 을지OB베어다. 직장인의 ‘성지’이자 ‘을지로 옥토버페스트’라는 별칭이 붙은 골목에서 최초로 문을 연 집이다. 이 집은 4년 전까지 강효근(92)씨가 생맥주를 뽑아내는 기계의 디스펜서를 잡았다. 이 골목이 서울시 지정 미래문화유산이
된 것은 바로 강씨 덕이다. 그가 이 가게를 얻은 1980년대 초, 결심한 것이 있었다. 동네 신임을 얻을 때까지 가게에서 먹고 자는 것이다. 스티로폼을 침대 삼아 살았다. 매일 아침 동네를 청소했다. 배타적인 인쇄골목 노동자들도 강씨에게 마음을 열었다. 5평 가게가 ‘노가리 골목’ 역사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노포는 장사다. 신뢰가 기본이다. 하동관은 널리 알려진 곰탕집이다. 개업 이래 한집에서만 고기를 받는다. 전후에 시작했으니 70년 가까이 됐다. 그 거래처가 팔판정육점이다. 80년을 바라보는, 국내 최고령 고깃간. 한때 어느 재벌 유통업체가 80억원을 주고 팔라고 했다던 전설이 있다. 3대째 이어가고 있다. 이 집 사장은 우래옥과도 거래한다. 그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하루 2시간 이상 자지 못했소. 새벽에 고기가 오는데 내가 직접 받지 않으면 인심을 잃는다고. 우래옥과 거래를 오래 하고 있지요. 그 집과는 가격 갖고 얘기하는 법이 없어요. 서로 믿으니까요.”
 
‘백년 거래처’는 그렇게 탄생한다. 이들은 묻는다. 당신도 평생 믿고 거래할 사람이 있는가? 당신 사업을 초심으로 백년을 지켜갈 의지가 있는가?
 
 

●인사이트 책꽃이
 
   
 
알렉산더 해밀턴
론 처노 지음 | 서종민·김지연 옮김 | 21세기북스 펴냄 | 6만원
미국 지폐에 얼굴이 들어간 사람 가운데 대통령이 아닌 이는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과 알렉산더 해밀턴(10달러)뿐이다. 미국 건국 아버지, 미국 초대 재무장관, 뉴욕 설계자, 현대자본주의 미국을 만든 정치가로 불리는 해밀턴이 미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 ‘흙수저’로 태어나 결투로 죽음을 맞기까지 그는 극적으로 살다 갔다. <금융제국 JP모건>의 론 처노가 썼다. 주석을 뺀 쪽수가 1330쪽이다.
 
 
 
 
   
 
블랙 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 차익종·김현구 옮김 | 동녘사이언스 펴냄 | 2만8천원
<블랙 스완>은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200만 부가 팔린 밀리언셀러다. ‘블랙 스완’은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비유하는 것으로, 저자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며 두루 쓰였다. 개정판에 ‘블랙 스완에 대비하라’는 내용이 더해졌다. <미래를 경영하라>를 쓴 톰 피터스는 “열 개 도서관에 꽂힌 모든 책을 합친 것보다 이 책 한 권에 현실 세계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슈퍼팬덤
조이 프라드 블래너·에런 글레이저 지음 | 윤영호 옮김 | 세종연구원 펴냄 | 1만6천원
팬 활동을 역사·사회·심리학 관점에서 살펴본다. 지금까지 팬덤이 어떻게 진행해왔는지도 설명한다. 팬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고, 팬덤이 브랜드와 상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팬덤으로 브랜드 지속성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팬덤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혜택만 활용하려 든다면 팬의 신뢰를 잃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에도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미래보고서
마루야마 이치·NHK 다큐멘터리 제작팀 지음 | 김윤경 옮김 | 다산북스 펴냄 | 1만6천원
세계경제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거장을 찾아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다. 거장들 답은 한결같다. 지금까지 번영은 모두 빚으로 쌓아올린 사상누각이고, 그마저도 일부에게만 과실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일본 NHK에서 시리즈로 방영돼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다큐멘터리 <욕망의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숫자와 그래프 너머에 있는 진짜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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