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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진 치고 조직 효율화 초고강도 개혁
[Business] 중국 고급자동차 ‘훙치’ 살리기
[97호] 2018년 05월 01일 (화) 안리민 economyinsight@hani.co.kr

‘훙치’ 대다수 직원 ‘하방’ 뒤 공개경쟁으로 보직 부여… 판매 경쟁력 낮고 내부 이해관계 복잡

1958년 탄생한 ‘훙치’(紅旗)는 중국 정부 지도자의 전용차로 사용되면서 ‘국차’(國車)라는 명성을 얻었다. 개혁·개방 이후 이치자동차그룹의 역대 회장은 훙치의 옛 명성을 회복해 중국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얼마 전 취임한 쉬류핑 신임 회장은 5천 대를 밑도는 훙치 판매량을 2020년 10만 대로 끌어올리겠다는 대담한 목표를 내걸었다. 그는 “죽기까지 노력한다”며 배수진을 치고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섰다. 국영기업의 낡은 체제가 여전하고 내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쉬 회장의 전격적인 고강도 수술이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안리민 安麗敏 <차이신주간> 기자

   
▲ 중국 베이징 모터쇼에 전시된 훙치의 고급 승용차 H7. 훙치는 2013년부터 관용차 시장을 겨냥해 H7 모델을 출시했으나, 부정부패 척결 차원에서 관용차 개혁이 시작되는 바람에 판매난을 겪었다. REUTERS

2017년 8월 54살 쉬류핑 회장은 중국병기장비그룹에서 중국제일기차그룹(이치자동차)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달 뒤 그는 대대적 개혁을 추진했다. 현장 노동자를 뺀 그룹 직원 대부분을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공개경쟁을 거쳐 새롭게 뽑았다. 이치자동차 내부 관계자는 조직구조와 인사, 급여체계와 관련된 전방위적 개혁이라고 설명했다. 이치자동차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개혁이었다.

쉬 회장이 제시한 청사진을 보면, 그룹을 훙치·승용차·상용차 세 사업부문으로 나눌 계획이다. 3개 브랜드 그룹을 만들고, 그룹마다 ‘연구와 생산, 공급망, 마케팅’을 통합해 완벽한 산업사슬을 갖춘 독립 체제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그 가운데 훙치는 그룹 본사에서 직접 관리한다. 쉬 회장이 훙치의 성장을 직접 책임진다는 뜻이다.

쉬류핑 회장은 물러설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스스로 설정했다. 2018년 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훙치 전략발표회에서 쉬 회장은 2020년 10만 대, 2025년 30만 대, 2035년 50만 대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을 고려하면 급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책임보험 자료를 보면, 2017년 훙치 판매량은 4452대였다. 그런데도 올해 3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담한 도전
현재 훙치 판매 모델은 2개다. 가격이 500만위안(약 8억5천만원)인 L5는 2017년 겨우 4대가 팔렸다. 몇 년 전 내놓은 H7은 눈에 띄는 강점이 없어 신차 H5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2017년 말 출시 예정이던 H5는 2018년 4월 베이징모터쇼로 출시일이 연기됐다.

관계자는 신차 출시가 늦어짐에도 판매망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자동차 판매는 4S점(영업, 부품 공급, 정비, 시장조사를 종합적으로 하는 매장 -편집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훙치는 판매량이 적어 진정한 의미의 4S점 판매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도심 지역 제품 전시장인 훙관(紅館)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홍보했고, 승용차 브랜드 베스턴(奔騰) 4S점에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했다. 훙치는 2017년 3월부터 대리점을 모집했다. 쉬 회장은 반드시 H5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고 보고, 출시 전까지 대리점을 100곳 이상 확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계약을 체결한 대리점이 적지 않지만 실제 개장한 매장은 많지 않다. 그는 “모두 신차 시장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며 “대리점 100개 개장 목표는 2018년 말로 연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치자동차는 항상 장기 계획을 수립한다. 보기에는 훌륭하지만 대부분 실현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치자동차에서 20년 남짓 일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치자동차가 해결하지 못한 폐단이다. 다수의 그룹 내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해결하긴 어렵고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해야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쉬 회장은 취임 초기 그룹 내부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7개월이 지난 지금 직원 평가는 달라졌다. “모두 초조한 마음으로 일한다. 조금만 잘못해도 그대로 잘릴 수 있다.” 그룹 본사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일부 직원은 겉으로는 우호적이지만 속으로는 쉬 회장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그룹 내부에서 쉬 회장이 공업정보화부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에선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이 소식은 진위를 떠나 쉬 회장이 놓인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다. 이 단호하고 엄격한 회장을 갈아치우면 이치자동차의 미래는 또 어떻게 될까? 정답은 아무도 알 수 없다.

   
▲ 이치자동차와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바이튼의 경영진이 베이징에서 업무협약을 맺었다. 고강도 개혁에 들어간 훙치는 신에너지차와 자율주행차를 주요 전략 방향으로 정했다. REUTERS

‘지뢰밭’ 연구·개발 부문
1월 인민대회당에서 쉬 회장은 유난히 분주했다. 발표회를 시작하기 전 도착한 귀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대 위에 선 쉬 회장은 ‘중국 최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품격 브랜드’라는 훙치의 전략적 목표를 소개했다. 그는 훙치의 제품 라인업을 조정해 L, S, H, Q의 4개 시리즈로 분류했다. L은 고급 세단, S는 쿠페, H는 주력 차종, Q는 승합차다.

훙치의 새 전략은 신에너지차와 자율주행차를 주요 방향으로 정했다. 2025년까지 출시할 17개 모델 가운데 15개가 신에너지차다. 쉬 회장은 전기차로의 전면적 전환이 훙치 목표라고 했다. 훙치는 2018년 출시한 H5 모델에 스마트 주행보조 시스템을 장착했다. 2019년 L3 단계, 2020년 L4 단계 자율주행차를 양산하고, 2025년까지 완전한 자율주행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자동차기술학회는 자율주행을 L0부터 L5까지 여섯 단계로 구분했다. L1과 L2는 주행보조 시스템이고, L3부터 자율주행 범주에 들어간다.

훙치는 공유이동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쉬 회장은 이치자동차가 창춘, 청두, 톈진, 창저우 정부와 함께 스마트공유이동서비스를 추진해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L·H 시리즈 자동차 제조공장 신축 계획을 밝혔지만, 가동 시기와 투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발표회 뒤 쉬 회장은 그룹 내부의 위챗 단톡방에 “목적을 이룰 때까지 멈추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기까지 노력한다”는 말을 남겼다.

대형 고급차 시장에서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이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기업들의 공개 자료를 종합하면, 2017년 중국 시장에서 팔린 12개 브랜드의 고급차는 모두 257만5천 대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8.4% 늘었다. 리옌웨이 중국자동차유통협회 전문가위원회 위원은 2018년에도 고급차 시장의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훙치가 2020년까지 10만 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이뤄도 매년 고급차 시장 점유율은 3%로 비중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링컨과 캐딜락은 적확한 전략과 차별화로 2017년 판매 증가율이 각각 66%와 51%를 기록했다.

문제는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룹 내부에도 있었다. 한 관계자는 특별한 장소에서 대규모로 진행한 전략발표회에 연구·개발과 제조 부문 책임자가 초대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훙치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곳은 이치종합연구원이다. 이 관계자는 “원장부터 직원까지 전략발표회에서 소개한 17개 모델의 구체적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고, 이런 제품을 누가 기획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는 가뜩이나 긴박한 상황을 악화했다.

앞서 쉬 회장은 훙치의 이중클러치변속기(DCT) 사업을 중단시켰다. 대량생산과 응용을 앞둔 상태였다. 쉬 회장은 난이도가 높다는 제조 부문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업 중단을 지시했고, 관련 연구자들은 흩어졌다. 종합연구원 관계자는 “몇 년간 수억위안을 투입한 사업이 말 한마디에 중단됐다. 이 개발사업을 중단하면 갈수록 엄격해지는 연비 규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외부에서 동력전달장치를 구입하겠다는 건가?”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른 관계자는 전략발표회가 끝난 뒤 종합연구원의 일부 기술개발자들이 집단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연구·개발 부서 변동이 이치자동차의 저력을 근본적으로 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훙치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직원은 “목표는 현실을 기반으로 설정해야 하고 마음이 급하더라도 사실에 입각해서 추진해야 한다”며 “훙치가 지금 가진 자원으로는 전략발표회에서 제시한 목표와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쉬 회장은 전략발표회 다음날 언론 인터뷰에서 자동차산업의 발전 속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신기술을 기반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해 앞으로 5~10년 사이에 시장을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훙치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장쑤성 난징 창안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중형 스포츠실용차 마쓰다 CX-5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2017년 12월 이치자동차·둥펑자동차·창안자동차, 세국영 자동차기업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를 맺었다. REUTERS

영욕의 60년
이치자동차의 전신인 제일기차제조창은 1953년 설립됐다. 1차 5개년계획의 중점 사업이었고, 마오쩌둥 주석이 친필로 공장 현판을 써줬다. 국가 지도자와 고위급 간부가 다녀간 중국 자동차산업의 출발지였다. 중국 정치와 함께 탄생한 훙치는 정부 지도자만 탈 수 있는 전용차로, 태생부터 고급 자동차였다. 1960년 훙치 CA72는 <세계자동차연감>에 수록돼 세계 명차로 분류됐다.

당시 훙치는 자동차라기보다 하나의 상징이었다. 1958~81년 중국에서는 개인용 자동차를 거의 판매하지 않았다. 시장경제 체제 도입 전까지 훙치는 대량생산으로 경제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손작업이 대부분이었고 제조원가가 비쌌지만, 품질은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1981년 생산을 중단하기 전까지 중국인에게 훙치는 천안문이나 중난하이처럼 경이의 대상이었다.

1996년 훙치가 생산을 재개한 뒤 이런 애정은 증오로 바뀌었다. 그때 출시한 제품을 ‘소훙치’라고 불러, 이전에 정부 지도자의 전용차로 쓰인 ‘대훙치’와 구별했다. 훙치는 몸값을 낮춰 관용차, 택시, 자가용 시장에 진입했다. 2001년 훙치가 출시한 명차 모델은 판매가격을 15만8천위안(약 2700만원)까지 낮췄다.

이때 훙치는 아우디100 모델을 기반으로 차량을 개발했다. 외부에서는 직접 개발한 게 아니라 자동차 로고만 바꿔 출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후에도 이런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6년 출시한 HQ3 모델은 도요타 크라운마제스타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2006~2008년 세기성을 비롯한 몇 개 모델이 생산을 중단했고, 한 해 판매량은 수백 대에 그쳤다. 훙치는 또다시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국차’라는 훙치 이미지와 시장 실적이 상반된 결과를 보이자, 아우디 등 외국산이 훙치 자리를 대체했고 중국 고급차 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차지했다.

2009년 건국기념일 60주년 열병식을 앞두고 사열차량을 제공하는 기회를 잡은 이치자동차에서는 대훙치 부활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치자동차는 1600여 명을 차출해 훙치 개발에 투입했고 105억위안(약 1조7900억원) 투자 계획도 밝혔다.

훙치는 2013년이 되어서야 관용차 시장을 겨냥한 H7 모델을 출시했다. 하지만 신차를 내놓자마자 부정부패 척결 차원에서 관용차 개혁이 시작됐다. 각급 정부는 관용차를 대폭 줄였다. 훙치는 자가용 시장을 겨냥한 판매망과 서비스체계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각 성의 정부가 있는 도시에 판매점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제12차 5개년계획기간(2011~2015년)이 끝날 때까지 훙치의 연간 판매량은 5천 대를 넘지 못했다.

이후 이치자동차는 훙치를 분리하고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 등 고급차 브랜드 대열에 올려놓기 위해 고심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모두 실패로 끝났고 예고한 제품은 출시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2017년 말까지 대형 스포츠실용차(SUV)를 출시하고 제품 라인업에 중형버스를 추가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진행 상황을 내놓지 않았다.

20여 년 동안 시장화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겅자오제, 주옌펑, 쉬젠이, 쉬핑 회장이 ‘1인자’ 자리를 거쳐갔다. 각자 추구하는 전략이 달랐고, 브랜드 위상도 그에 따라 달라졌다. 부침을 거듭하면서 훙치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질책의 목소리가 커졌다. 업계에서는 이치자동차가 100억위안 넘게 투자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훙치 관계자가 당시에 대해 말했다. “훙치는 맨손으로 시작한 거나 다름없었고 고급차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100억위안도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뭐라 말해도 비난이 쏟아졌고 설명할수록 질책이 나와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2017년 8월 중국병기장비집단공사와 이치자동차가 최고경영자를 맞교환했다. 쉬핑 당시 이치자동차 회장은 둥펑그룹(東風集團)에서 이치자동차로 옮겨온 지 2년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한 업계 전문가는 쉬류핑 회장이 병기장비집단공사 산하 창안자동차에 있을 때 실적이 좋아 선택됐다고 전했다. 초소형 승합차를 주로 생산하던 창안자동차는 2006년 승용차를 처음 선보였는데 10년 뒤 자체 브랜드의 연간 판매량이 100만 대를 넘어섰다.

훙치는 쉬류핑 회장이 실력을 발휘하기 위한 최적의 시험무대다. 더 나빠질 것도 없다. 2018년 목표인 3만 대 판매를 이루면 새 역사를 쓸 수 있다. 훙치의 최고 판매 실적은 2002년에 세운 2만8500대다. 훙치에서 이직한 직원은 훙치가 단기간에 판매 실적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없다고 단정했다. “훙치는 제품과 판매, 서비스가 체계적이지 않고 브랜드 가치를 시장 가치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멀리 볼 때는 봉황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공작이라면 소비자 심리가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자동차업계는 지금 대변혁 시대를 겪고 있다. 회사 체제의 구속은 “좋은 패를 들고서도 형편없게 패배하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2017년 쉬허이 베이징자동차그룹 회장이 한 포럼에서 신생 전기차 제조사 니오(蔚來)자동차 리빈 회장과 대담했다. 쉬허이 회장은 스타트업의 유연한 체제가 가장 부럽다며 “예를 들어 니오자동차는 베이징 중심가 창안제에 대형 브랜드 체험관을 만들었다. 이렇게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을 국유기업이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기득권과의 싸움
이치자동차와 베이징자동차가 자체 브랜드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때 올해 55살인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은 토종 자동차 브랜드의 새로운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리수푸 회장은 최근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의 지분 9.69%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그는 지분 인수 배경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2~3개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경계를 뛰어넘는 경쟁에 대응하려면 기업 간 폭넓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자동차는 원래 벤츠의 협력사였다. 쉬허이 회장도 다임러와 지분 교차 소유를 공개적으로 제안한 바 있다. 현재 다임러는 베이징자동차의 지분 10.08%를 가졌지만, 베이징자동차의 다임러 지분 인수는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냉정한 현실 앞에서 훙치는 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 2002년 훙치의 판매량이 최고점을 찍었을 때 리수푸 회장은 고대하던 자동차 생산허가증을 얻었다. 훙치 실적이 바닥에서 맴돌던 2010년 지리자동차는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 볼보를 18억달러(약 1조9300억원)에 인수했다. 2017년 훙치 H7의 판매 실적은 저조했지만, 지리자동차가 볼보와 공동 개발한 고급차 ‘링커’(領克)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쉬류핑 회장이 2017년 9월 시작한 개혁은 이치자동차의 의사결정을 효율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018년 1월 인터뷰에서 그룹을 독립된 몇 개 사업체로 나눠 각 사업부문의 장이 필요한 인력을 통솔하도록 하고, 직능부서에 집중된 권한을 사업부문으로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직원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공개경쟁을 거쳐 보직을 맡게 한 것은, 부서장이 직접 필요한 사람을 뽑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2018년 전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쉬 회장은 지린성 언론 인터뷰에서 “이치자동차 개혁은 임원·간부 직위와 직원 입·퇴사, 직원 연봉, 조직 규모를 유연하게 조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치자동차로 자리를 옮긴 뒤 현장 조사와 논의를 거듭했고 수십 개 부서와 자회사를 찾아가 현장 노동자, 기술 담당자, 관리자, 고위 경영자와 면담했다. 대부분 개혁을 원했고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치자동차가 추진하는 대대적인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 수십 년간 그룹 내부의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며 “개혁 추진으로 불이익을 받는 일부가 집 앞에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겠나?”라고 물었다. 저항을 막기 위해 쉬 회장은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개혁을 단행했다. 2017년 9월 개혁 방안을 발표한 날부터 공개모집을 했고, 일주일 뒤 그룹과 자회사에서 1만 명 넘는 직원이 공개모집에 참여했다. 직원들은 저마다 위기감을 느꼈고 원래 자리로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룹 관계자는 “쉬 회장이 수많은 사람을 움직였는데, 모두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개혁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다른 관계자는 “자동차산업의 주기가 길어 몇 년 동안 집중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유기업 ‘1인자’는 임기가 짧다. 그들이 자신의 임기 동안 ‘실적’을 희생해 다음에 올 사람을 도와줄 리는 없다. 그는 “국유기업의 혼합소유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며 “그들 자신의 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유기업 관리자와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2017년 12월 이치자동차와 둥펑자동차, 창안자동차는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 국유기업은 2009년 ‘자동차산업조정진흥계획’에서 규정한 ‘4대’ 자동차기업이다. 나머지 하나는 상하이자동차다. 이들 기업은 이 계획에 따라 전국 범위에서 합병과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 이치자동차 내부에서는 일부 승용차 브랜드가 특별히 취약하면 통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중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라는 부적이 훙치를 지켜주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財新週刊 2018년 제11호
徐留平鐵腕造紅旗
번역 유인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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