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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 불발로 국회 공방 불가피
[국내이슈] 휴대전화 보편요금제 도입 논의 어디까지?
[95호] 2018년 03월 01일 (목) 안선희 shan@hani.co.kr
시민단체 대표 정책협의회 퇴장하기도… 야당 반대·이통사 로비, 연내 입법 녹록지 않아
 
‘통신비 인하’는 이전 정부에서도 주요 민생 정책으로 다뤄졌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어느 때보다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비 관련 대선 공약이 역대 정권보다 강력했고, 국민의 통신비 관심도 높아진 탓이다. ‘기본료 폐지’ 논란으로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은 2017년 하반기 ‘선택약정할인율 인상’ 줄다리기, ‘완전자급제 도입’ 논란을 거쳐, 이제 ‘보편요금제 도입’을 둘러싼 싸움을 앞두고 있다. 2018년 2월 사회적 논의 기구인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보편요금제 합의가 무산되면서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현재로서는 ‘연내 입법과 내년 초 시행’이 정부가 희망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안선희 <한겨레> 기자
 
   
2017년 7월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정부와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는 2017년 말부터 보편요금제 도입 논의를 해왔으나 이견이 커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보편요금제’라는 다소 생소한 정책을 들고나온 것은 2017년 6월22일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구실을 하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통신비 절감 대책’ 발표 때였다. 보편요금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전까지 새 정부 통신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기본료 폐지가 중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통신기본료 1만1천원 폐지’를 내놓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통신비 20% 인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입비 폐지’ 공약 등과 비교해, 더 구체적이면서 액수도 큰 것이었다. 이동통신사들의 강력한 반발이 뒤따랐고,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미래부를 압박하자, 미래부가 기본료 폐지 대신 들고 나온 카드가 보편요금제다.
 
애초 보편요금제는 정의당의 대선 공약이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모든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전기통신 업무’를 ‘보편적 역무’라고 정의한다. 이 규정에 근거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보편적 역무로 지정하고 누구나 적정 요금으로 기본 수준의 데이터·음성을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뼈대였다. 미래부의 방안은 이 공약의 명칭과 기본 취지를 수용한 것인데, 대신 이동통신 서비스를 보편적 역무로 규정하지는 않고 지배적 사업자(현재는 SK텔레콤)에게만 출시 의무를 부여했다.
 
기본료 폐지 대신할 실질적 인하 방안
보편요금제의 최대 관심거리는 요금과 서비스 제공량의 수준이다. 정부는 국정기획위 발표 두 달여 뒤인 2017년 8월23일 보편요금제 도입 내용이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에서 정부는 제공량의 기준은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를 제외한) 일반적인 이용자의 전년도 평균 이용량 대비 50~70% 수준’으로, 이용요금 기준은 ‘전년도 시장평균 단위요금의 100〜200% 범위’로 제시했다. 시장평균 단위요금이란 전체 요금수익을 전체 이용량으로 나눈 값이다. 이 기준에 따라 정부가 보편요금제의 요금과 제공량을 2년마다 조정해 고시하도록 했다.
 
정부가 평균이용량 등을 반영해 내놓은 예시는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다. 현재 이통사들은 ‘3만2천원대에 음성 무제한, 데이터 1GB’ 요금제를 판매하고 있다. 음성통화가 200분으로 제한되지만 현재 요금제보다 1만2천원 이상 싸다. SK텔레콤이 이 요금제를 내놓으면 KT와 LG유플러스도 뒤따라 내놓을 수밖에 없고, 상위 요금제도 따라서 내릴 것이라는 게 정부 기대다.
 
보편요금제는 이전까지의 통신요금 규제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만만치 않은 제도다. 이전까지 정부 통신비 규제는, 지배적 사업자는 새 요금제를 출시할 때 정부 인가를 받도록 하고 나머지 사업자는 신고하도록 하는 것이 큰 틀이었다. 보편요금제는 지배적 사업자에 한하고 여러 요금제 중 하나지만, 정부가 직접 요금과 제공량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비록 정부가 보편요금제 도입과 함께 인가제는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보편요금제 자체는 상당히 강력한 정부 개입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국정기획위 발표 이후 한동안 보편요금제는 크게 논란이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선택약정할인율 인상처럼 당장 시행되는 제도를 둘러싼 정부 발표와 이통사의 반발 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가 4차 회의까지 완전자급제 논의를 한 뒤, 2017년 12월22일 5차 회의 안건으로 보편요금제를 올리면서다. 정책협의회에는 정부, 이동통신 3사, 시민·소비자단체, 알뜰폰 업계, 이동통신 유통 업계 등이 참여한다.
 
파행으로 끝난 사회적 논의 기구
이동통신 3사와 알뜰폰 업계는 보편요금제에 반대, 정부와 시민·소비자단체는 찬성 태도를 보이며 팽팽히 맞섰다. 이통사들은 “보편요금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고, 시장 경쟁 활성화라는 그동안의 정부 정책 기조에 역행한다”며 “특히 이통사의 경영 악화를 초래해 5세대(5G) 이동통신, 연구·개발 등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며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알뜰폰 업계는 저렴한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알뜰폰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반대 견해를 밝혔다.
 
시민·소비자단체는 그동안 주장해왔던 기본료 폐지 등에서 한발 물러서 보편요금제를 차선책으로 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은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경감하려면 보편요금제가 도입돼야 한다”며 “보편요금제는 그간 이통사들이 소극적이었던 저가요금제 경쟁을 강화해 오히려 경쟁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음성 200분, 데이터 1G’는 현재 소비자의 이용량 등을 고려하면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정부는 저가요금제 영역에서 ‘시장 실패’가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통사들의 경쟁이 고가 요금제에만 치중해, 저가요금제 영역에서는 경쟁이 없고 혜택도 적다는 것이다. 실제 데이터 중심 요금제 중 최저가요금제는 이동통신 3사 모두 ‘3만2890원에 300MB 제공’으로 판박이처럼 똑같다. 과기정통부 자료를 보면 한국의 최저요금과 최고요금의 가격 차이는 3.3배인데 데이터 제공량 차이는 324배나 된다. 외국보다 격차가 훨씬 크다. 참여연대 자료를 보면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 주요 나라에는 2만~3만원대 요금에 훨씬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가 다수 출시됐다.
 
정책협의회는 8차 회의까지 보편요금제를 둘러싼 협의를 이어갔지만, 끝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2월9일 8차 회의에서는 시민·소비자단체 대표들이 이통사의 태도를 비판하며 항의의 표시로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이통사는 “우리나라의 요금 수준은 해외보다 저렴하고 가계 통신비 부담이 증가한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월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소비자단체들이 이동통신 보편요금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시민단체 다소 낙관
정부는 2월22일 9차 회의를 끝으로 정책협의회를 마무리하고 그동안의 논의 결과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보편요금제 관련 법안은 규제개혁위원회, 국무회의 등 정부 절차를 거쳐 6월께 국회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직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보편요금제에 공식적 견해를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평소 ‘시장 경쟁’을 중시하는 보수야당이 “보편요금제는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이통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반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 대립이 격화하는 방향으로 정치권 분위기가 움직일 수도 있다.
 
수십 년 동안 정부 규제를 상대하며 ‘산전수전’을 겪은 이통사들의 대국회 로비 공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완전자급제(이통사 대리점에서 단말기 구입을 금지하는 제도) 관련 법안이 국회에 3건이나 발의돼 있다는 점도 변수다. 자유한국당에서 김성태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서 김성수 의원과 박홍근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에서 나름대로 완전자급제를 통신비 인하 대안으로 내놓은 것인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보편요금제를 들고 오면 여당 의원들도 선뜻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완전자급제에 부정적이다.
 
정부와 시민단체 쪽에서는 다소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민의 통신비 인하 열망이 강하고 시민단체들도 지지하고 있으니 국회가 외면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야당이 초반에는 반대할 수 있겠지만 끝까지 그러지는 못할 것”이라며 “통신비 인하를 막는다는 여론의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보편요금제 법안은 2018년 정기국회 막바지까지 줄다리기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연내 법안이 통과된다면 경과 기간을 거쳐 이르면 2019년 상반기에 시행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여건이 맞았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여당이 보편요금제 법안을 중점 법안으로 추진해 힘을 실어야 하고, 여야 사이에 협치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통신비 인하를 요구하는 여론의 압박도 필수적이다. 여차하면 국회 처리가 하염없이 지연될 수 있다. 보편요금제가 무산되면 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은 ‘선택약정할인율 5% 인상’ 외에 내놓을 것이 없게 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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