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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재발견
[Editor’s Letter]
[95호] 2018년 03월 01일 (목) 신기섭 marishin@hani.co.kr
신기섭 편집장
 
저는 값을 많이 깎아 파는 물건을 잘 사지 않습니다. 평소 팔던 가격과의 차액만큼 누군가 손해를 볼 터이고, 그 부담을 힘없는 사람들이 떠안기 십상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음의 위안을 위해 ‘사치’를 부리는 셈인데, 이런 여유가 생긴 건 극히 최근입니다.
 
몇 년 전까지는 한 푼이라도 싼 물건이 최고라고 여겼습니다. 물건을 싸게 사려고 발품을 파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태도가 가장 심했던 때는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유럽 어느 나라에 잠깐 머물던 10년 전일 겁니다.
 
살던 동네에서 물건값이 가장 싼 가게가 하필 집에서 가장 멀었습니다. 싼값이 주는 기쁨과 발품의 수고를 저울질하며 갈등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이 궂을 때면 갈등이 더 컸습니다.
 
이 가게는 값을 싸게 파는 것 말고도 특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계산원들의 손놀림이 아주 빠르다는 겁니다. 바코드 시스템을 이용해 물건값을 계산하는 건 모든 가게가 똑같은데도, 이 가게 계산원들의 처리 속도가 월등했습니다. 값이 싼데다 계산대 앞에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더 바랄 게 없는 가게입니다.
 
빠른 처리 솜씨는 계산원들의 경력에서 나옵니다. 나이 지긋한 여성이 대부분이고 보통 5년 이상 경력자라고 전해들었습니다. 바코드 시스템을 쓰기 전에는 많이 팔리는 물건의 가격을 아예 외워서 처리 속도를 높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깨달은 게 있습니다. 흔히 ‘단순노동’이라 하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능력에서 ‘경쟁력’과 ‘부가가치’가 나오는 건 전문직만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단순노동이라는 단어를 입에 잘 올리지 않습니다.
 
‘육체노동’이라는 단어도 제겐 단순노동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건설 현장에서 흙먼지 뒤집어쓰고 일하는 사람이나 공장에서 기름밥 먹는 이를 은근히 깔보는 태도가 깔려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이런 일에는 ‘머리’가 필요없다는 편견을 조장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머리를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노동은 없습니다.
 
지식경제, 정보기술,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을 논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요즘, 손에 많이 의존하는 기술자는 무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합니다. 첨단기술의 나라, 독일 이야기입니다. 젊은이들이 점점 기능직을 기피하면서 인력난은 심해진 반면, 경기가 좋아지면서 기능직 수요는 늘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16쪽 ‘집중기획’을 보시기 바랍니다.
 
단순노동이나 육체노동에 대한 편견은 노동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창겨울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을 보면서도 생각해본 질문입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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