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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대출 넘어 중고차 플랫폼 경쟁
[국내이슈] 달아오르는 중고차 금융시장
[94호] 2018년 02월 01일 (목) 이순혁 hyuk@hani.co.kr
30조원 시장 겨냥 은행·카드사 너나없이 진출… 디지털 플랫폼 등장으로 거래 투명성 높아져
 
어느 나라에서나 중고차 시장은 불신의 대명사다. 소비자가 실속 구매를 하고 싶어도 품질을 믿을 수 없어 망설이게 된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 정보 비대칭으로 불량품만 나도는 시장을 일컫는 ‘레몬 마켓’의 대표 사례로 중고차 시장이 꼽히는 이유다. 최근 돈 빌려줄 곳을 찾지 못해 고민인 금융권이 30조원 넘는 것으로 알려진 중고차 거래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금융권은 대출 경쟁에 머무르지 않고 중고차 거래 플랫폼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또 다른 사업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은 매물의 품질과 거래 투명성을 높여 중고차 소비자들의 신뢰와 호감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순혁 <한겨레> 기자
 
   
 
‘레몬’은 미국 속어로 ‘쓸모없는 것’ ‘불량품’이란 뜻이다. 영국에서는 ‘바보’나 ‘멍청이’로도 쓰인다. 레몬의 특성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불리는지 짐작이 된다. 과일은 과일인데, 맛이 없다. 비슷하게 생긴 오렌지처럼 상큼하지도 않고,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시다(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이지 않는가). 그래서 기껏 설탕에 재었다가 차로 마시거나, 고기나 생선, 과자나 빵을 만들 때 첨가하는 요리·식품 보조제로 쓰인다.
 
미국 조지타운대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1970년 ‘레몬 시장: 품질 불확실성과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레몬 판매자는 그 품질을 잘 알지만 구매자는 (사서 먹어보지 않는 한) 그렇지 못하다. 결국 구매자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간값 정도를 상한으로 정하고 거래에 나선다. 나쁜 품질의 레몬을 생산한 농부는 이에 응하지만, 고품질 레몬을 생산한 농부는 레몬을 거둬들인다. 결국 품질 좋은 레몬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저급한 레몬들만 넘쳐난다.
 
결국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 정보 비대칭으로 불량품만 나도는 시장이 레몬 마켓인데, 애컬로프 교수는 중고차 시장을 그 예로 들었다. 판매자는 차량의 사고 경력, 주행거리 등을 잘 알지만 (이를 속일 경우) 구매자는 모른다. 정보 비대칭 속에서 구매자들은 (값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레몬 같은’ 차를 살 가능성이 크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실제 품질은 떨어지는 물건들만 넘쳐나고, 속임수가 난무한다.
 
신차서 중고차로 영토 확장
한국에서도 중고차 시장이라 하면, 의심과 경계부터 하는 이가 많다. 가짜 매물을 올리고 손님을 끈 뒤 다른 차를 보여 주며 바가지를 씌우거나, 주행거리나 사고 경력이 조작된 차들이 거래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 피해와 민원이 끊이지 않기로 유명했다. 이런 이유로, 중고차 시장보다 되도록 지인끼리 중고차를 거래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도 변하고 있다. 인터넷 가격 비교 등으로 구매자들의 정보력이 향상됐고, 품질 보증 서비스 등 ‘안전판’도 강화되는 추세다. 시장이 투명해지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실속형 이용자가 늘면서 더는 쉽게 속여 팔기 힘든 시장이 돼가는 것이다.
 
싸구려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고차 시장이 요즘 금융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금 거래가 일반적이고 일부 캐피털사 대출 상품만 있는 정도였던 이 시장에 몇 년 새 카드사는 물론 은행들까지 앞다퉈 뛰어들었다. 시장 포화와 수수료 수입 감소로 곤란을 겪거나(카드사), 기업대출 수요 감소와 가계대출 포화 속에서 고민하던(은행) 찰나, 2016년 기준 3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중고차 시장이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받은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이 가장 눈에 띈다. 2010년 ‘신한마이카대출’을 출시하며 자동차 금융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든 신한은행은 2012년 6월 그 대상을 신차에서 중고차로 확대했다. 은행권 최초의 중고차 대출 상품이다. 현재는 오프라인에서 ‘신한마이카중고차대출’, 온라인에서 ‘써니마이카대출’(중고차) 상품을 취급한다. 2017년 대출 규모는 4만여 건, 7573억원에 이른다. 회사 관계자는 써니마이카대출에 대해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고정금리 대출이 가능하고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할 수 있다”며 “모바일로 다른 회사 고금리 자동차할부대출에서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전환대출도 고정금리 선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한 해 동안 1만8천 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라고 덧붙였다.
 
우리은행도 2013년 10월 ‘뉴우리V오토론’을 내놓고 중고차 대출을 시작했다. 현재 오프라인에서는 ‘맑은우리카대출’, 모바일(앱)에서는 무방문으로 대출한도 조회와 대출신청 등이 가능한 ‘위비모바일오토론’ 상품을 취급한다. 두 상품 모두 대출한도 1억원, 1~10년 분할상환이다. 맑은우리카대출은 자동차 매매회사 소유 차량 또는 자동차 판매를 주요 업종으로 등록한 사업자등록증을 보유한 딜러와 거래할 때만 대출이 가능하다.
 
2011년 ‘KB매직카대출’이라는 브랜드로 자동차 금융을 시작한 KB국민은행은 2016년 2월 중고차로 대상을 확대했다. 서울보증보험 보증한도 안에서 300만~1억원까지 대출, 거치기간 없이 1~10년 분할상환이다. 원금균등상환과 원리금균등상환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KEB하나은행은 2015년 신차·중고차 할부 상품인 ‘1Q오토론’을 내놓은 데 이어 2017년 6월에는 서울보증보험 보증이 필요 없는 ‘1Q오토신용대출’을 내놨다. 오토바이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가 2017년 11월 폐차 직전의 수입차를 무사고 차량으로 꾸며 거액을 챙긴 중고차 영업사원을 구속한 뒤 범행 수법을 설명하고 있다. 중고차 사기가 좀체 근절되지 않아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이 높다. 연합뉴스
 
카드사들 서비스 경쟁 치열
지방은행 중에서는 부산은행이 ‘BNK 중고차오토론’을 취급하는데, 보증보험 담보대출과 이보다 금리가 약간 높은 신용대출 상품이 있다. 은행에서 인증한 사이트에서 매입할 경우 0.5%포인트를 우대해준다. 은행권 중고차 대출은 기본금리(코픽스)에 3~4%포인트를 더한 게 보통이다. 자동이체와 신용카드 사용 실적 등으로 1%포인트 전후 금리 우대를 받으면 4~5%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사 가운데서는 최근 삼성카드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카드는 2017년 12월 온라인 또는 모바일(앱)에서 매물 검색과 한도 조회, 대출 신청까지 원스톱 처리할 수 있는 ‘다이렉트오토 중고차’ 서비스를 출시했다. 365일 24시간 서비스가 가능하고, 무서류·무방문으로 고객 편의를 최대화한 서비스다. 이 회사 관계자는 “2016년 7월 출시한 신차 대상 ‘다이렉트오토’가 6개월 만에 방문객 700만 명을 돌파하고 12월 취급액이 전년 대비 4.8배나 증가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여서 서비스 범위를 중고차로 확대하게 됐다”며 “중간 유통 구조를 줄여 타사보다 1~2%포인트 낮은 최저 3.9% 금리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중고차 금융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6년 9210억원이던 삼성카드의 자동차 금융 취급액은 2017년에는 3분기까지 9471억원으로 40%대 증가율을 보인다.
 
연 5.1~23.8% 금리에 24~48개월 원리금균등상환 조건의 중고차 할부 금융 상품을 운용하는 신한카드는 2017년 2월부터 온·오프라인 연계 중고차 매매사인 ‘차투차’와 손잡고 중고차 구매 때 6개월/1만km까지 품질을 보증해주는 무상 수리 보증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중고차 거래 1위 업체인 SK엔카와 제휴해 신용카드 포인트로 할부 상환액 일부를 갚거나(하이세이브), 선수금만 낸 뒤 2~3년 할부금을 내고 타다가 차량을 반납하는(바이백) 서비스도 있다. 중고차 업체가 아니라 개인에게 중고차를 샀을 때도 최장 60개월까지 원리금균등상환 방식 대출이 가능하다. 회사 쪽은 “2017년 7월부터 영수증 발행이 의무화돼 현금영수증 미발행 때 거래 금액의 50%를 과태료로 부과하는 대신 거래 금액의 10%를 소득 공제해준다”며 “중고차 시장에서도 신용카드 결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고차 구매 고객에게는 한도 일시증액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가장 점유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자동차 금융의 전통적 강자 캐피털사들의 중고차 대출 규모는 3조원대로 알려져 있다. 선두를 달리는 현대캐피탈과 KB캐피탈, JB우리캐피탈이 ‘빅3’로 불린다. 현대캐피탈 쪽은 “2017년 중고차 금융 매출은 1조6천억원 수준인데, 할부뿐 아니라 리스 등 임대까지 포함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KB캐피탈과 JB우리캐피탈 중고차 금융 매출은 2016년 기준 각각 7천억원대, 4천억원대였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기본적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 중고차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캐피털사는 중금리 대출에 특화된 금융기관이다. 상대적으로 조달금리가 낮은 은행과 카드사들이 진출하면서 소비자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아무래도 더 낮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여기에 NH농협은행 등이 2018년 시장 진출을 준비해 대출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수원시 북수원자동차매매단지를 가득 메운 중고차들. 스마트폰 사용의 일상화로 금융회사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중고차 정보 수집과 거래, 담보대출이 크게 늘고 있다. 연합뉴스
 
캐피털사 플랫폼 출시 잇따라
더 근본적으로, 금융사들의 중고차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부동산114처럼) 중고차 관련 허브가 되면 대출 말고도 다른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중고차 거래 플랫폼 ‘KB차차차’를 내놓은 KB캐피탈이 대표적이다. BNK캐피탈도 온라인에서 중고차를 사고파는 ‘BNK썸카’를 출범시켰고, JB우리캐피탈 등도 비슷한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피털 업계 맏이인 현대캐피탈은 2018년 1월16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서울대학교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중고차 시세 모형을 개발하려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단순히 중고차를 담보로 대출만 해주는 게 아니라, 중고차 관련 정보와 거래가 모이는 시장(플랫폼)이 되겠다는 시도들이다.
 
금융회사들의 이런 시도가 누적될수록 중고차 시장의 투명성은 높아진다. 가짜나 바가지 매물 정리가 플랫폼 품질 관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의 신뢰가 점점 높아질 것이다. 과연 중고차 시장은 레몬 마켓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털어내고 복숭아처럼 가격 대비 좋은 제품들이 넘치는 ‘피치 마켓’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피치 마켓을 평정할 금융사는 어디가 될까?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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