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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 막바지, 가속 아닌 연착륙 필요
[Finance] 미국 경제성장률 고공행진의 그림자
[94호] 2018년 02월 01일 (목) 윤석천 maporiver@gmail.com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은 이후 10년 가까이 경제 팽창 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2017년에는 실질성장률이 연율 기준 3%대로 마침내 잠재성장률을 넘어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한계치까지 이른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며 대규모 감세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팽창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미국 경제에 가속페달을 밟는 것은 오히려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 감세로 인한 재정 적자 확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주도하는 긴축이 맞물리면 디플레이션 위기가 가시화할지 모른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퇴임을 앞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2017년 12월13일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REUTERS
 
대부분의 정부 정책은 시장에 영향을 끼친다. 원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이끌어 목적을 이룬다. 예를 들어 경찰의 순찰은 범죄를 줄이고, 부동산 안정화 정책은 마침내 시장의 거품을 꺼뜨린다. 하지만 의도한 목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암호화폐를 규제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시장을 잠재우기보다 과열을 불러오는 것이 좋은 예다. 물론 그런 결과는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장기적으로 정부 정책은 시장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도 목적 달성에 실패할 수 있다. 시장을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 경기 회복의 문제점
미국은 꾸준한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이고 성장률은 견고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경제 팽창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 번째로 긴 팽창 국면이다. 지금보다 더 길었던 팽창기는 1960년대와 1990년대뿐이다. 문제는 현재의 성장이 다른 팽창 국면보다 허약하다는 것이다. 경제 팽창이 상당한 기간 진행된 것은 분명 긍정적인 소식이지만, 한편으론 불편한 징조일 수 있다. 일반적인 사이클과 비교할 때 미국 경제는 이미 침체 중이거나 침체를 겪었어야 한다. 하나, 미국 경제는 여전히 나아지는 중이다. 이 흐름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또 하나 불길한 전조가 있다. 미국의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어섰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2017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율 기준으로 3.3%다. 인플레이션 조정 뒤 성장률로, 엄청난 수준이다. 침체기엔 보통 성장률 갭(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이 커진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뒤 갭이 최대로 벌어졌다가 2009년 이후 점차 줄고 있다. 지난 10년의 실질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밑돌았다. 2017년 마침내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어섰다. 이 또한 미국인들이 환호해야겠지만,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일반적으로 성장률 갭(GDP 갭)은 현재의 경기 상태가 과열인지 침체인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로 쓰인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플러스 갭은 경기가 과열돼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인플레이션 신호다. 반대로,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마이너스 갭은 물가 상승 압력은 없지만 경기는 침체 상태에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GDP 갭에는 더 많은 의미가 담겼다. 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차이는 이용되지 않은 생산 능력을 뜻한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생산의 3요소인 노동, 토지, 자본을 모두 사용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돈다는 것은 여전히 이용할 수 있는 잠재적 생산요소가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돈다는 얘기는 가용 생산요소를 전부 투입해 소모했다는 것이다. 부채가 미래 소득을 끌어와 쓰는 것이듯, 실질성장률이 더 높은 플러스 갭은 미래의 생산요소를 현재 시점에서 미리 당겨썼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기 회복 혹은 팽창은 전세계에 긍정적이다. 기쁜 소식인가? 그렇다. 그러나 마냥 손뼉을 칠 일은 아니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면 환호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결국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1970년 이후 미국의 경기 사이클을 추적해보면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뛰어넘었을 때마다 침체가 곧 시작됐다.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2만5천을 돌파한 2018년 1월4일 개장 직후의 주가지수 전광판. 미국에선 2017년 2분기 연속 3% 이상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기 팽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REUTERS
 
다가온 경기 침체의 전조
‘곧’이란 단어는 추상적이다. 기간을 특정할 수 없다. 1990년대 말과 2006~2007년엔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오래 웃돌았다. 불행한 일이지만 두 경우 모두 강한 침체가 뒤따랐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그것도 오랜 기간 웃돌수록 뒤이은 침체도 그만큼 폭이 크고 기간이 길었다. 당연한 귀결이다. 상당 기간 지속되는 높은 실질성장률은 한 나라가 쓸 수 있는 미래의 자원까지 끌어다 썼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더해,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현재 같은 긴축을 시행하지 않았다. 이는 적어도 현재의 팽창이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 정책을 추진하며 성장률이 4%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상도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럴 수 있다. 한두 분기는 연율 기준 4% 이상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몇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은 희망사항이고 판타지다.
 
성장률이 해마다 3~4%에 이른다는 것은 선진화된 경제에서 기적에 가깝다. 경제 규모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에서 3% 성장이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산출물 증가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경제에서 10% 성장하는 것과 그 열 배 규모의 경제가 1% 성장하는 것은 늘어난 산출물로 볼 때는 같다. 만약 열 배 규모의 경제가 3% 성장한다면, 그것은 규모가 작은 경제의 10% 성장이 만들어낸 것의 세 배에 이르는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성장률이 낮더라도 규모가 큰 경제는 실제 더 큰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경제 규모가 커지면 성장률 둔화는 필연이다. 경제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생산요소를 거의 소진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같은 신흥국은 인구도 많고 개발할 땅도 넓다. 자본 여력도 충분해 잠재성장률이 높다. 반면 미국 같은 선진국은 사용 가능한 생산요소를 거의 전부 쓰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잠재성장률이 비약적으로 개선된다면 높은 실질성장률이 가능하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생산요소가 개선되면 된다. 그중에서도 기술혁신은 선진화된 경제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중요한 변수다. 웨어러블 컴퓨터나 로봇을 이용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암 치료 등 의료 기술의 혁신으로 노동자의 수명을 늘리고 건강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면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혁신이 그렇듯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게다가 혁신이 전 산업 분야에 퍼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잠재성장률의 획기적, 단기적 개선은 거의 불가능하다.
 
감세 통한 3% 이상 성장은 선동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 수 있다. 그러나 정의에 따르면, 그런 성장은 지속 불가능하다. 생산을 늘리기 위한 투입물인 노동자나 생산성 등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 호황(boom)은 터지기(burst)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변수가 또 있다. 연준은 현재 긴축 모드다. 경제가 팽창함에 따라 단기 금리를 올리고 2018년부터는 보유 자산을 축소하고 있다. 연준이 긴축 모드에 나서는 이유는 자명하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경제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불가피하다. 연준은 압력이 폭발하기 전에 통제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긴축이 성장의 적이란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감세안으로 3~4%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선동이다. 세수가 줄어든 만큼 미국 정부는 적자 보전을 위해 수천억달러(수백조원)를 빌려야 한다. 국채가 늘어나는 것은 금리시장에 악재다. 연준의 금리 인상에 더해 국채발 시중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시중금리가 오르면 연준은 금리를 더 올려 대응할 것이고, 이는 미국 경기를 이끄는 부동산 시장과 소비재 지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 정부는 ‘더딘 성장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대규모 감세를 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외려 성장을 더욱 둔화할 수 있다. 정부 정책이 독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는 달릴 때 가속해야 속도가 빨라진다. 자동차가 이미 최고 속도에 이르렀는데, 체감 속도가 느리다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더 빨라지진 않는다. 연료만 낭비하며 차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더딘 성장’이란 주관적 판단이다. 미국 경제는 이미 능력에 비해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을 뛰어넘는 성장을 하는 중이다. 여기서 가속페달을 밟아도 성장률이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
 
자족은 국가 운영에서도 미덕이다. 현재의 미국 경제 팽창은 충분히 강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연착륙을 생각할 때지 ‘공중 부양’을 할 때가 아니다. 재정 적자는 미국 정부의 고질병이자 미국 경제를 갉아먹는 해충이다. 그것을 잊는 순간 미국은 언제든 다시 실패할 수 있으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감세로 재정적자는 늘어날 것이다. 이에 더해 연준은 긴축에 들어갔다. 불가피한 조처지만 속도가 문제될 수 있다. 사상 처음으로 자산까지 축소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를 디플레이션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재정적자와 긴축이 합해지면 어떠한 부정적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지 모른다. 3% 이상 성장을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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