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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흙수저 성장기’ 세계적 공감
[Culture & Biz] 방탄소년단 ‘성공 설화’ 분석기
[93호] 2018년 01월 01일 (월)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끊임없이 새로운 흥행 기록을 만드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배경에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아이돌 제조기’인 대형 기획사 출신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 방식도 있다. 전세계 팬들에게 공감을 얻는 그들의 길을 되짚어본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17년 5월 케이팝 가수로는 처음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은 방탄소년단. REUTERS
 
정말 궁금했다. 요즘 아이돌 시장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이니 설명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순 있었다. 어느 팀이 가장 인기를 끌지 예측하지는 못해도, 가장 인기있는 팀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수긍할 수는 있었다. 나름의 이유들이 대부분 내 이해 범주 안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방탄소년단’(BTS)이란다. 이름부터 좀 이상했다. 트렌드에서 엇나가는 게 팀이 추구하는 방향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아이돌 시장의 주소비층은 아니지 않은가 하며 애써 외면했다. 적당한 무지는 이렇게 사람을 쉽고 편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졌다. 방송에서 그리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은데, 해외 사업에 목숨 거는 대형 기획사 소속도 아닌데, “해외에서 크게 터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음이 바빠졌다. 왜 이들이 인기 있는 걸까, 이유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들의 무대를 뚫어져라 봤다. 안타깝게도 내 눈과 귀로는 다른 아이돌들과 큰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
 
2017년 5월, 이들은 케이팝 가수로는 처음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가수가 됐다. 이들의 성공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기사들이 나왔다. 이런 큰 성공 뒤에는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뭔가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와야 했다.
 
아쉽게도 핵심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수십 개의 아이돌 그룹이 대부분 갖춘 빼어난 외모, 칼 군무, 현란한 랩, 자작곡 실력만으로 이들의 성공을 논하는 것은 뭔가 부족했다. 적어도 케이팝 아이돌 수준에서 이 정도의 외모, 군무, 랩 등은 어느 수준 이상임을 보여주는 ‘컷’ 기준일 뿐이다. ‘컷’ 기준을 얼마나 뛰어넘는지는 그다지 의미 없고 평가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사는 그런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다. 기획사의 남다른 기획력이 뒷받침된 것도 아니었다.
 
이윽고 11월, 이들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초청받아 단독 무대에 서는 등 해외에서 인기가 더 확산되자 이들을 분석하는 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보다 더 깊이 있게 설명하는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는 ‘흙수저 아이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질’ ‘케이팝 아님’ ‘힙합 기반’ ‘멤버들의 자기 표현’ ‘성장’ 등이었다.
 
‘흙수저’ 아이돌 키우기 나선 소년소녀 팬
열쇳말들을 연결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옛날 옛적 빅히트엔터테인먼트라는 작은 기획사에서 방탄소년단이란 아이돌 그룹이 태어났다. 이들은 한국 케이팝을 이끄는 3대 기획사 출신이 아닌 터라 ‘흙수저 아이돌’로 불렸다. 이미 장안을 랩으로 평정했다는 RM 등 빼어난 멤버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3대 기획사 출신이 아닌 까닭에 시작이 평탄치 않았다.
 
고생하던 이들에게 새로운 ‘보물’이 생겼으니 바로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였다. 이미 많은 스타가 SNS로 팬들과 소통 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SNS를 통해 더 솔직하게 자신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특히 대형 기획사에서 ‘제조’되는 다른 아이돌 멤버들은 SNS 활동에 제한받는 것과 달리, 이들은 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했다. 멤버들은 이 공간에서 ‘흙수저’ 아이돌의 고민과 또래들이 공감할 10대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이것들을 모아 가사로 직접 표현했다. 특히 이들은 팬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자신들의 활동과 삶을 SNS에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러면서 그룹 자체가 스스로 성장하는 하나의 ‘성장 캐릭터’를 만들었다.
 
10대들은 이들의 이야기와 노랫말에 조금씩 열광했다. 단지 가수와 팬으로서가 아니다. SNS를 통해 ‘시대적 공감대’를 느꼈기에 가능했다. 소년소녀 팬들은 이들과 일체감을 공고히 하며 ‘덕질’에 박차를 가했다. 팬들은 그들 스스로를 방탄소년단을 품은 ‘아미’(ARMY)라 불렀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공감대를 느낀 팬들이 늘어갔다. 유튜브로 이들의 삶과 모습을 외국 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음악이 힙합 기반이라는 점이 유리했다. 다른 케이팝 음악은 댄스에 중심을 둔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미국인들에게 조금 더 익숙한 힙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점이 한국에서는 어렵게 느껴져 다소 불리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더 친숙하게 다가갔다.
 
외국 팬들은 자신들을 ‘케이팝 팬’이 아니라 ‘방탄 팬’이라 불리길 원했다. 케이팝이라는 통로로 이들 팬이 된 것이 아니라 ‘방탄’만의 팬이라는 것이다. 이윽고 이들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팬들의 기쁨도 커졌다. 어려운 흙수저 아이돌을 자신들의 힘으로 성장시켜 인정받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2017년 11월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공연장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하위문화 스토리텔링의 승리
전형적인 전래동화나 설화처럼 보일 정도로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성공 스토리는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째, 철저하게 하위문화를 이해하면서 접근했다는 점이다. 케이팝은 한국 대중문화에서 주류이지만, 세계시장에서는 철저하게 비주류 팬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아무리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세계 기록을 경신하더라도 세계 음악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팬들에게 접근할 때도 주류적 속성이 강한 대중미디어 등에 의존하기보다 비주류 집단에 적합한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비주류 집단과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SNS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통로를 제공하는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이들이 빌보드 시상식에서,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가장 화제가 된 가수에게 선사하는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은 것도 이런 활동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대중문화 시장에는 너무나 많은 상품이 존재한다. 상품이 인정받으려면 품질은 당연히 좋아야 하고, 이야기를 통해 차별화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JTBC 프로그램 <전체관람가>도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에선 국내의 내로라하는 영화감독 10여 명에게 제작비를 3천만원씩 주고 15분짜리 독립영화를 제작하게 해 한 주씩 보여준다. 사실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는 영화팬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영화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제작 과정에 큰 비중을 둔다. 제작 과정을 함께 보고 감독들의 내밀한 고민까지 나눈 뒤 보는 영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야기가 꽉 찬 상태로 영화를 만나는 것이라 친밀도가 높아져 주목받는다.
 
방탄소년단의 전략도 이와 비슷했다. 이들은 우선 한국을 주름잡는 3대 메이저 기획사(SM, YG, JYP) 출신이 아니라는, 태생적으로 좋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 그들은 메이저 기획사 아이돌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풀어놨다.
 
SNS는 아이돌에게 득보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통제되지 않은 이야기가 터져나올 위험이 큰 탓에 큰 기획사에선 많은 제한을 둔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그런 제약 없이 이 창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켜켜이 얹어나갔고, 이를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SNS에서 팬들에게 미리 전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노래를 만들기 때문에 호응과 주목도는 더 높아졌다. <전체관람가>의 영화들이 다른 독립영화들보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음악이 드라마 주제곡 모음(OST)과 유사하다고 평한다. 이야기로 그들만의 드라마를 만든 뒤 음악으로 정점을 찍는 영리한 구조라는 것이다. 대형 기획사에선 이런 시도가 어렵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이 구분돼 각자의 역할만 담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과 다른 아이돌의 음악에서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작은 기획사에서 나오는 아이돌은 모두 방탄소년단의 ‘성공 설화’를 따르면 성공할 수 있을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익숙함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색다른 것이라면 접근조차 어렵다는 말이다. 그 익숙함에서 새로움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최근 대중문화 성공작들의 비결을 다룬 책 <히트 메이커스>를 쓴 데릭 톰슨은 이를 ‘마야(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 원칙’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즉 약간은 익숙한 수준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유사한 구조 안에서도 새로움이 있어야만 돋보일 수 있다. 누구든 방탄소년단의 성공 설화를 따르려 한다면 그 안에서 어떤 새로움을 보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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