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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쳐모여’로는 보수 재건 어렵다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민심과 따로 노는 보수대통합 정계개편
[92호] 2017년 12월 01일 (금) 윤희웅 waymaker@opinionlive.co.kr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순실 사태로 쓰나미를 맞은 보수진영의 이합집산이 현실화하고 있다. 바른정당 의원 3분의 2가량은 당내외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추가 탈당 논의도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보수세력은 몸집을 불리고 ‘안보 장사’를 하면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바른정당을 탈당한 김무성 의원이 2017년 11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재입당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씨춘추> ‘찰금편’에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유래가 적혀 있다. 전국시대에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칼을 실수로 강물에 빠뜨렸다. 당황한 칼 주인은 다른 단검을 꺼내 칼을 떨어뜨린 배 위치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했다. 배가 건너편에 닿자 표시해둔 곳 물밑으로 들어가 떨어뜨린 칼을 찾으려고 했다. 당연히 잃어버린 칼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지금 한국 보수의 모습이 각주구검과 같다. 흩어진 보수 정치세력을 한곳에 모으면 잃어버린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혁신과 변화 대신 옛 세력의 복원에만 매달리고 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불거진 뒤 새로운 정당을 창당해 이탈했던 세력을 다시 불러모으고 있다. 2017년 1월 개혁보수를 지향하며 원내 30석 정당으로 시작한 바른정당은 보수 통합 명분을 내세운 의원들의 2차에 걸친 집단 탈당 사태를 겪었다. 대선 전 의원 10명이 1차 탈당했고, 2017년 11월에 9명이 다시 탈당했다. 현재 11명이 남았지만 추가 탈당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때 100석에도 못 미쳤던 자유한국당은 이제 116석으로 몸집을 불렸다.
 
과연 세력을 계속 복원하면 보수에 등을 돌린 민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진보를 뛰어넘거나 최소한 균형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조금은 지지세를 끌어 올릴 수 있겠지만 원하는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대중의 정치적 인식과 이념적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이 분열해 지지층이 허약해진 것이 아니므로, 과거처럼 하나의 정당을 만들어놓는다 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마치 판구조론을 뒷받침하는 대륙이동설처럼 대중의 정치 인식 지형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본인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스스로 인식하는, 이른바 ‘주관적 이념 성향’을 보면 국정 농단이 드러나기 전인 2016년 초와 지금은 변화가 상당하다.
 
한국갤럽이 2016년 2월19일 조사한 이념 성향별 응답자 수를 보면 전체 응답자 1006명 중 진보 183명, 중도 329명, 보수 315명이었다. 자신의 성향을 모르거나 밝히지 않은 응답자는 173명이었다. 이 중 모름/무응답 173명을 제외하고 백분율로 나타내면 진보 22.1%, 중도 39.8%, 보수 38.0%이다. 당시 진보 성향이라고 밝힌 비율이 겨우 20%를 넘긴 반면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비율은 40%에 육박해, 보수 흐름이 월등한 우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정반대다. 한국갤럽의 2017년 11월 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 1003명 중 진보 316명, 중도 293명, 보수 266명, 모름/무응답 128명이었다. 이 중 모름/무응답을 제외하고 백분율로 단순 전환해보면 진보 36.1%, 중도 33.5%, 보수 30.4%이다. 진보층 비율이 약진해 이젠 진보 우위의 흐름으로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이념 성향 분포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은 대중의 정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각주구검 유래에 빗대 표현하자면 배가 강물 위를 흘러 이동한 것이다. 대중이 선착장에 묶여 있는 배가 아니라 움직이는 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 보수 야당은 변화된 대중의 정치 인식을 세밀하게 분석해 새로 좌표를 재조정함으로써 지지를 회복할 생각은 못하고 있다. 오로지 세력을 모으고, 과거 보수층에 잘 먹혔던 안보·종북 이슈를 꺼내들고 있다. 마치 움직이는 배에 칼자국을 내듯이 말이다.
 
안보·종북, 철 지난 레퍼토리
새로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고 6개월이 넘었지만 국정지지율은 70%를 상회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에게서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다. 대중이 이처럼 상당 기간 호응한다는 것은 과거의 정치적·이념적 대중 분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나타나기 어려운 현상이다.
 
정당지지도 역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평소 존재감을 보이지 않지만 50%에 가까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진보적 색채가 뚜렷한 정의당도 5% 내외의 지지도를 얻고 있다. 반면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양쪽 지지도를 합해도 겨우 20% 남짓에 불과하다. 국정 농단 사태와 새로운 정부의 초반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예를 든 정치적 지표가 의미하는 바는 일시적 지면의 흔들림이 아니라 지층이 이동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경제학에서는 외부 조건이 변화해 교란되더라도 다시 본래 상태로 복귀하는 경향이 있을 때 이를 ‘안정균형’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 대중의 정치 인식 변화는 안정균형점 자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새로운 안정균형이 나타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고려하면 보수는 단지 옛 용사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것으로 대중의 호응을 온전하게 얻기 어렵다. ‘안보가 중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거나 진보세력은 종북세력이라고 규정하는 흘러간 레퍼토리로는 강물에 빠뜨린 칼을 되찾을 수 없다. 보수정치 세력을 복원만 한다고 보수층이 다시 풍성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진정으로 잃어버린 지지와 호응을 되찾으려면 대중이 옮겨간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재창조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물 교체뿐만 아니라 노선과 정책의 변화도 병행돼야 한다.
 
참여정부 이후 진보정치 세력은 외면한 대중을 되돌리기 위해 기존 정치권 외에 시민사회 등 외부 인물들을 받아들이려 했고, 무턱대고 이념적 진보를 외치기보다 무상급식 같은 생활 이슈를 내세워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최근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생활정치’란 말은 당시 널리 확산된 표현이다. 이는 단순히 진보세력의 복원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었다.
 
쪼개진 세력을 다시 하나로 만들면 다소 지지율이 오르는 등 효과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대중의 선택을 받으려면 지금보다 지지율이 오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경쟁세력과 비슷한 수준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변화된 대중에 대한 깊은 연구로 새로운 지향점을 설정해 긴 호흡으로 나아가야 한다.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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