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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앞당겨지는 ‘달러 사망’
[Finance] 달러 지배력 언제까지 이어질까
[91호] 2017년 11월 01일 (수) 윤석천 maporiver@gmail.com
미국 달러는 20세기 이후 줄곧 기축통화 지위를 지켰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달러 지배력만큼은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달러 지배력에 균열 조짐이 보인다. 이제 관심은 달러의 왕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다. 트럼프가 달러의 위상을 흔드는 대내 요인이라면 중국 위안화의 부상은 대외 요인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문을 걸어 잠그는 사이 달러가 오랜 기간 차지했던 왕좌 자리를 위안화 또는 제3의 통화가 꿰찰 것이란 기대가 높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이후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배력에 균열 조짐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0월17일 헤리티지재단 주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추석 연휴 직후, 가장 큰 경제 이슈는 한국과 중국 간 통화스와프(두 나라가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일정 시점에 통화를 교환하는 거래 -편집자) 연장 여부였다. 언론은 심각하게 이 문제를 다뤘다. 한-중 통화스와프가 위기 때 방패막이가 될 것이냐와 별개로, 한국은 유독 외환 문제에 민감하다. 외환위기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양국이 재연장에 합의하면서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한국 등 신흥국이 왜 외환위기를 걱정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은 유동성 공급의 책임이 있다. 미국은 과연 그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천문학적 달러를 발행해 위기를 넘기고 이제 긴축 등을 통해 유동성을 자꾸 줄이려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로 인해 신흥국 위기가 발생한다면 미국은 달러를 공급해줘야 한다. 통화스와프가 가장 좋은 방식이다. 한데 미국은 유럽·일본·영국 등 선진국과는 무제한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하면서도 신흥국에는 매우 인색하다.
 
달러에 비해 신흥국 통화는 변동성이 크다. 위기 때, 미리 정한 환율로 맞교환한다는 게 미국으로선 큰 위험일 수 있다. 교환된 달러를 다시 돌려받지 못 할 가능성마저 있다. 하지만 달러 시스템의 근본 취지는 미국이 달러 유동성을 만족할 수준까지 공급해준다는 전제에서 의미가 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대체 왜 세계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써야 한단 말인가. 최소한 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겪는 국가들에 대해서라도 미국은 달러의 문을 개방해야 한다. 이쯤 되면 미국의 달러 지배 정당성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달러 사망론’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규모로만 보면 점차 쇠퇴하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0%에서 2016년 말 18%로 줄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비중 역시 줄고 있다. 같은 기간, 중국의 비중은 거의 네 배 증가해 미국과 비슷한 16% 수준이 됐다. 신흥국의 비중은 제2차 세계대전 때 40%에서 2016년 말 60%로 늘었다. 이 추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선진 경제는 저성장에 시달리는 반면 신흥국은 계속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그런 변화는 느낄 수 없다. 미국의 경제력은 쇠퇴하지만 달러는 여전히 생기발랄한 청춘이다. 그 지배력은 공고하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성장의 주체가 옮겨가는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대전 뒤 폐허의 유럽이 다시 부활하고 글로벌 무역이 팽창함에 따라 준비자산(각국 중앙은행이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비해 준비해둔 금·달러 등의 자산 -편집자)의 수요 역시 빠르게 늘었다. 1950년대부터 늘어 1970년대 초 최고조에 달했다. 글로벌 달러 수요는 급증했다. 금환본위제도에서 달러는 금에 고정됐으나, 종이 달러의 급팽창을 본질적으로 금이 충당할 수는 없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의 영향으로 미국 부채가 급증한 결과 달러 발행이 남발됐다.
 
1971년 12월과 1973년 2월에 금에 대한 달러의 절하가 있었지만, 금과 달러의 태환 약속은 본질적으로 지켜질 수 없는 것이었다. 달러 발행이 온전히 미국의 권한인 이상 그 발행이 적정 수준으로 지켜진다는 것은 애초부터 상상할 수 없었다. 금에 대해 달러를 절하시켰지만 달러의 ‘과잉 가치’는 여전했고 마침내 금태환이 정지되며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3년 종말을 고한다. 이로써 달러는 지속적으로 절하된다.
 
1960년대부터 달러 지배력이 종말을 맞을 것이란 얘기는 있었다. ‘달러 사망’은 흔한 단어가 되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될 때, 그리고 미국의 무역 적자가 급증할 때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수 없이 퍼졌던 얘기다. 하지만 달러의 지배력은 여전하다.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유지하는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은 ‘달러 사망’ 용어의 사용 빈도와 무관하게 한결같다. 달러는 국제 외환시장의 절대 거래 통화이자 여전한 석유 결제 통화다. 이 정도면 베네수엘라 지도자들이 말하는 ‘달러 폭정’이란 용어가 새삼스럽지 않다.
 
이는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미국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와 카먼 라인하트의 최근 연구에서 미국 달러는 여전히 지배적 지위를 유지한다는 게 확인됐다. 1970년대까지 글로벌 GDP의 3분의 2는 달러에 고정됐다. 나머지는 영국 파운드와 옛 소련의 루블이 차지했다. 현재도 모든 국가의 60% 이상이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GDP를 합하면 70%에 달한다. 다른 측정 수단, 즉 무역 거래의 통화나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미국 국채의 비중도 비슷했다.
 
유로는 어떤가. 유로는 등장 이후 달러를 위협할 가장 강력한 변수로 생각됐으나 현실은 무력하기만 할 뿐이다. 달러에 이어 2위 통화 자리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그 격차는 생각보다 크다. 유로 이전 독일의 마르크보다 되레 영향력이 크지 않다. 1980년대 초부터 1999년 유로 체제 출범 때까지 마르크의 영향력은 서유럽에서 동유럽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유로 등장 이후 이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 어떤 통화도 글로벌 리더십에서 달러와 경쟁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달러 지배는 견고하다.
 
안전자산 여부는 변동성으로 결정된다. 달러 변동성이 작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국제시장에서 달러의 매력을 잠식하지는 않는다. 각국 중앙은행이 미 국채를 보유하려는 이유가 있다. 미 국채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단일 금융시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전하다. 미 연방정부는 1812년 영미전쟁 이래 부채를 연체한 적이 없다.
 
기축통화 지위에 필수적인 것은 외교와 군사력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세계 최강이다. 이것이 달러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미국과 군사 동맹을 맺은 국가들은 준비자산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30%포인트 정도 높다. 반면 핵무기 보유국은 보유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경제학 교수인 배리 아이컨그린이 밝힌 사실이다. 지정학적 동맹과 국제통화 선택 간의 관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유는 많다.
 
   
중국은 한국과 통화스와프 협정 연장에 합의하면서 위안화의 지배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서울 KEB하나은행 본점의 지폐 위·변조 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등장과 달러 지배력 쇠퇴
동맹 관계이기 때문에 무기 체계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미국산 무기 의존은 달러 수요를 늘린다. 혹자는 동맹국이라서 높은 우선순위로 미국이 부채를 갚을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거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한국과 일본은 준비자산의 80%를 달러로 보유하고 있다. 군사동맹이 달러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임을 부정할 수 없다.
 
달러 지배력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누구도 모른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달러는 진정한 시험에 들게 됐다. 트럼프는 좌충우돌의 외교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동맹도 안중에 없다. 심지어 고립주의를 표방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보호무역을 가시화하고 있다. 무역 보복은 전방위적이며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낸다. 이는 동맹 균열로 발전할 수 있다. 한반도만 해도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신은 미국 힘의 누수를 뜻한다. 중국은 언제든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중국이 지정학적 측면에서 아시아에서 앞서나간다면 그 뒤를 위안화가 이어받을 것이다. 바로, 달러 영향력의 쇠퇴다.
 
그럼에도 달러의 영향력은 급속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즉각적인 달러로부터의 이탈, 외국 채권자의 미 국채 투매 등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다. 미국의 효율적인 금융시장 역시 다른 국가들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다른 통화는 아직 투자 매개체나 준비자산으로 미국 달러에 도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달러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이다. 아무리 트럼프의 정책이 치명적이라 해도 달러의 급격한 몰락은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달러의 지배력은 얼마든지 잠식당할 수 있다.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갈등에도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재개했다.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미래를 보고 있다. 자국 통화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애쓰고 접근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미국이 문을 걸어 잠근 사이 중국은 열고 있다. 사실, 이는 위안화만이 아니다. 주요 통화들의 경쟁력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달러의 고유한 장점은 느리지만 점차 잠식될 것이다.
 
트럼프 시대는 그 시기를 앞당길 것이다. 트럼프는 달러에 득이 되는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그의 정책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축통화의 첫째 요건은, 글로벌 유동성 공급이다. 자국 화폐를 세계에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그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는 운명이다. 이른바 ‘트리핀의 딜레마’다. 한데 미국은 그 숙명에서 벗어나려 한다. 부채 폭증을 막으려는 미국의 재정 목표는 준비 통화 독점 제공자라는 국제적 역할과 일치하지 않는다. 달러 지배 정당성이 훼손되고 있다. 이 틈을 누군가는 메울 것이다. 그것이 위안화든 유로화든, 아니면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는 제3의 통화든 말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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