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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과 열린 태도
[경제와 책]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91호] 2017년 11월 01일 (수) 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노태복 번역자 gwaan@naver.com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이라는 근사한 한국어판 제목을 단 이 책의 원서 제목은 ‘A Survival Guide to the Misinformation Age’이다. ‘그릇된 정보가 넘치는 시대의 생존 안내서’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번역서 제목이 캐러멜마키아토라면 원서 제목은 에스프레소다. 몇 술 더 뜨면 십전대보탕 정도가 될까? 아무튼 원서 제목에는 무거움이 가득하다.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데이비드 헬펀드 지음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펴냄
1만8천원

나는 진한 커피보다 달콤한 커피를 즐기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책 번역을 처음 맡았을 때 살짝 불편했다. 저자가 만사에 너무 진지한 사람은 아닐까? 혹시 과학으로 세상의 모든 골칫거리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닐까? 저자 데이비드 헬펀드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천문학과 교수라고 소개돼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시시콜콜 과학적 사고법을 전도사처럼 설교하는 사람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과학책을 여러 권 번역한 경험에 따른 걱정이었다.
 
저자의 글이 고루하거나 지나치게 고상하면 번역이 힘겨워질 수 있다. 번역 과정에서 저자와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그때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기우였다. 원서를 펼쳐보니 처음부터 뜻밖이었다. 저자는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무렵 강의실을 벗어나 학생들과 함께 뉴욕 리버사이드파크로 산보를 나선다. “(원래 수업 주제인) 항성 핵합성을 배울까요, 아니면 공원을 산책할까요?” 저자가 학생들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고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산책을 결정했다.
 
산보 중에 저자는 푸르른 봄 하늘과 갓 피어난 수선화 언덕에서 과학의 렌즈로 삶의 풍요로움과 자연의 신비를 포착한다. 왜 하늘은 푸른지, 어떻게 손톱으로 해를 가릴 수 있는지, 왜 공원 보도블록이 정육각형 모양인지, 왜 봄 햇살은 따스한지.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과학의 눈으로 세상의 미묘함을 설명한다. 게다가 존 키츠와 애드거 앨런 포가 쓴 영시(英詩)를 인용하며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짚었다. 과학자에게 보통은 기대하지 않는 풍부한 감성까지 갖추고 있다니!
 
아무튼 과학을 주제로 한 책을 적잖이 번역한 나로서도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저자가 교실을 박차고 탁 트인 봄 공원으로 나갔듯이 나도 이제부터는 과학자에 대한 좁은 선입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우리는 뭔가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설명하려면 막연할 때가 많다. 과학 영역에선 더욱 그렇다. ‘태양계 내 행성들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해보자. 대다수는 ‘아주 멀다’와 같은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규모를 정량적으로 가늠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더라도 구체적으로 가늠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고, 일상생활에서 여러 판단을 내리거나 선택을 할 때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저자는 공원의 한 지점에 놓인 공 하나를 지구라고 가정하고서 다른 행성들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는 법과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를 구체적으로 계산하는 법을 일러준다. 우주가 굉장히 크다고만 여기는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나면 태양계가 마치 한 장의 지도처럼 머릿속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뉴욕에 피아노 조율사가 몇 명 있는지 추산하는 봉투 뒷면 계산법, 그래프 제대로 읽는 법, 통계와 확률을 이해하는 법 등 일상에서 과학적 사고습관을 기르는 방법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이어지는 설명을 따라 지구환경과 관련된 과학자의 합리적 사고법을 대하고 나면 이 책의 원제가 왜 그토록 진지한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 책을 옮기면서 내가 받은 가장 큰 감동은 따로 있다. 바로 그릇된 정보에 대응하는 과학적 태도가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 적용됐다는 점이다.
 
원서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발견해 저자에게 의견을 물은 한 계산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넘긴 번역 원고에서 편집자가 발견해 내게 의견을 물은 한 수치였다. 나는 이 책에서 배운 합리적 의심의 태도로 저자에게 의문을 제기했고, 저자는 열린 마음으로 그 계산 과정이 틀렸음을 인정하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과학은 언제나 질문에 열려 있고, 설령 확립된 이론이라도 반증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바로 그 특성이 번역 과정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편집자가 찾아낸 원서의 오류이자 번역 원고의 오류에 대해, 나도 이 책에서 배운 정신에 걸맞게 오류를 인정하고 원고를 수정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한국어판은 저자·역자·편집자 모두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그것에 따라 언제든 기존의 관점이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진 덕분에 더 충실한 내용으로 출간될 수 있었다.
 
책의 주제가 책 만드는 과정에서도 빛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 역자로서 가장 큰 보람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저자와 편집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인사이트 책꽂이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
미즈노 가즈오 지음 | 이용택 옮김 | 더난출판 펴냄 | 1만4천원
성장 신화를 비판하는 책을 연작으로 낸 일본 경제학자가 주식회사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 쓴 책이다. 성장 강박에서 벗어나 먼 미래를 길게 보며 “더 여유롭게, 더 가까이, 더 관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여유롭다는 건 단기 실적에 급급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더 가까이 가라는 건 ‘서비스 배당’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라는 뜻이다. 더 관용적으로 바뀌라는 건 내부유보금을 국고로 돌리라는 말이다.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
허쉐펑 지음 | 김도경 옮김 | 돌베개 펴냄 | 1만6천원
중국 농촌 연구자인 저자는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안정을 유지한 비결을 농촌에서 찾는다. 중국의 농촌은 ‘세대별 분업에 기초한 반농반공’의 가계 모델을 형성했다. 나이 든 부모가 농촌을 지키고 젊은이는 도시에 나가 일하는 구조를 말한다. 농촌은 젊은이가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때 돌아가는 곳으로 남았다. 옮긴이는 저자가 중국의 특수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화이부실 시진핑의 중국몽
다카하시 요이치 지음 | 김영주 옮김 | 영림카디널 펴냄 | 1만4천원
일본 재무성에 근무한 경제학자가 쓴 중국 비판서다. 저자는 “소련이 붕괴된 결정적 원인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였지만, 소련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것은 바로 위조 통계”라며 중국이 소련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당장 중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중국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통계 위조 실태를 표면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렇게 문제를 드러낼 때만 대처 방안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인다.
 
 
 
   
지방도시 살생부
마강래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1만4천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가 지방을 직접 답사한 뒤 쓴 책이다. 저자는 2040년이면 한국 지자체의 30% 정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또 쇠퇴를 벗어나려는 지방 도시들의 노력이 대부분 실패할 것이라며 양적 발전의 환상을 버리고 질적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것이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지방이 몰락하면 정부 예산을 빨아먹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며 지역 문제를 나라 전체의 문제로 인식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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