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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하는 자본’ 사회적 기업
[Enterprise]
[7호] 2010년 11월 01일 (월) 장종익 economyinsight@hani.co.kr

장종익 연세대 경제연구소 연구원
 
유럽과 북미에서 주로 발전한 사회적 기업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1970년대 후반 이후 유럽 각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경제활동 조직으로 취약계층의 노동 통합, 사회 서비스의 전달,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 등의 목표를 가지고 운영되는 ‘독특한’ 기업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독특함’이란 1990년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논의된 사회적 기업의 개념을 반영한 것으로, 비영리조직과 협동조합의 교집합적 특성을 나타낸다. 이탈리아에서는 2005년 현재 7363개 사회적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유급 노동자 24만 명을 고용하고 자원봉사자 3만 명의 도움을 받아 330만 명의 이용자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70억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영국 정부의 사회적 기업 정의에 부합되는 사업체가 2006년 초 5만5천여 개에 달하는데, 이는 피고용인이 있는 총사업체의 약 5%에 해당한다.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독특한’ 기업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반 생산공동체운동의 시도, 자활지원사업의 제도화,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와 대량실업 이후 실업극복운동과 사회적 일자리 확대를 기반으로 하여 최근에는 시민사회 참여의 활성화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사회적 기업의 설립이 확산되고 있다.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근거해 노동부가 사회적 기업 인증을 실시한 뒤, 2010년 9월 말 현재 노동부의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 수는 353개에 달하며 그 수는 당분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사업 유형은 고령자·장애인·만성적 실업자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형, 간병·보육 등 사회 서비스 제공형, 문화·로컬푸드 등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타형으로 나뉜다. 
사회적 기업이 등장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무엇인가?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은 전통적 기업조직 형태인 주식회사, 협동조합, 비영리기업 등과 무엇이 다른가? 사회적 기업은 기업조직 형태상 일종의 ‘혁신’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기업의 조직적 특성에 대한 천착은 사회적 기업의 발전 가능성과 조건, 한계뿐만 아니라 인간 행위의 경제학적 가정에 적잖은 함의를 던져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다양한 기업조직 형태는 시장경제제도 아래 발생하는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주체적·창의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로널드 코즈 이래 많은 경제학자들이 밝혀왔다. 시장 거래를 위한 계약 작성과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비용이 기업이 탄생한 경제적 이유인데,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은 다수의 소액 자본주와 경영 및 노동의 결합에 소요되는 조직 유지 비용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지배적인 기업조직 형태로 발전해왔다. 농협·신용협동조합·소비자협동조합·노동자협동조합 등 다양한 종류의 협동조합 또한 시장 거래의 불완전성에 대응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주식회사 형태보다 유리한 특정 재화 및 서비스 부문에서 제한적으로 발전해왔다.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은 내부조직 운영원리 측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주주 혹은 조합원의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기업통제권자가 이익을 수취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육, 보건·의료, 문화·예술 등 일부 서비스 산업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비영리기업’은 기업통제권과 잉여수취권을 동시에 행사하는 전통적 의미의 소유자가 없다는 점에서 주식회사나 협동조합과 큰 차이점이 있다.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주식회사 방식을 채택하면 교육·보건 등 서비스의 드러나지 않는 품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고, 서비스 수혜자가 협동조합 방식을 채택하기에는 소유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기부금, 신탁금, 회비 등 자본조달 방식의 혁신을 가져온 비영리기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국 웨일즈지역 카디프의 사회적 기업인 ‘패킷’의 직원들이 작업장 한곳에 모여있다.

 
자본조달 방식의 혁신
사회적 기업은 이윤 배분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비영리기업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목적의 실현을 명시하고,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소유자가 각기 다양한 기준으로 투입 요소를 제공하는 ‘유연하고 열린’ 기업조직 형태라는 점에서 비영리기업과 다르다. 사회적 기업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공급할 때 개인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 내 다수의 이익 향상에 기여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목적 수행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공급의 조직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자본·노동·원료·경영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이런 투입 요소 제공자들은 전통적인 기업과 거래할 때와는 다른 기준으로 사회적 기업에 투입 요소를 제공하게 된다. 자본 제공자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태도와 자산 포트폴리오의 특성 등에 따라 출자, 대출, 신탁, 정부보조, 기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을 제공한다. 출자 자본도 ‘수익률 극대화’라는 목표보다 ‘시장수익률 이하의 배당’과 ‘사회적 목적 달성’이라는 혼합된 가치 창출에 더 관심이 높은 일종의 ‘인내하는 자본’(Patient Capital)의 공급자라고 할 수 있다. 자본 제공의 주체도 일반 대중, 기관투자자, 특정 목적의 펀드, 정부 펀드, 은행, 종업원, 이용자, 후원자 등 다양하다.
또한 노동과 경영의 제공자도 노동 혹은 경영능력의 한계생산성에 부응하는 금전적 보수를 기대하기보다는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일의 참여에서 얻는 직업만족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 때문에 사회적 기업은 다양한 재능과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의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 고용과 자원봉사 등 노동과 경영의 획득 방식 측면에서 전통적 기업 형태와는 다른 기준과 다양성을 띠게 된다.
사회적 기업의 목적과 재화·서비스 생산에서의 조직화 방식의 독특성으로 인해 사회적 기업에서의 소유권은 전통적인 기업 소유권과는 다르게 규정된다. 우선 잔여재산청구권이 현저히 제약된다. 사회적 기업의 목적이 투입 자본의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목적 수행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회적 기업에 투입된 자본을 분할(지분화)해 거래하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고, 투입 자본에 대한 이윤 배분에서 배당률과 총배당액을 제한하며, 사회적 기업의 매매 역시 제한된다.
 
사회적 목적 달성하고 돈도 벌고
사회적 기업에서는 소유권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통제권도 현저히 제약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기업의 통제권은 출자자본의 소유자에게만 부여되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열려 있다. 이처럼 사회적 기업에서 소유권의 제약이 규정되고 있음에도 자본을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경제주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런 소유권을 ‘자발적으로 절제되는 소유권’(Voluntarily Attenuated Ownership)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에 의한 지배구조를 갖게 되기 때문에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업의 이런 조직적 특성으로 인해 사회적 기업이 수행하기에 적합한 재화·서비스 부문이 존재하게 된다. 특히 정(+)의 외부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지역 공동체 구성원이 참여해야 하는 집단재(Collective Goods)적 성격을 지닌 사업이 있다. 즉 낙후된 지역의 실업주민, 장애인, 장기 실업자, 빈곤여성 및 노인 등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취약계층에게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공동 참여와 노력이 요구되는 지역개발 프로젝트나, 지역의 역사·문화·환경적 유산을 보존하는 활동처럼 정(+)의 외부 효과를 발휘하는 사업의 경우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요구되지만, 이런 투자 활동의 산출물은 준공공재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이윤 추구 기업에 맡기면 공급을 기피하게 된다. 더욱이 집단재의 생산이 성공하려면 구성원 간의 신뢰와 연대가 요구된다. 지역 주민의 역량 개발이 지역공동체 개발 사업의 핵심적 성공 요소 중 하나인데 기존의 투자자-소유기업, 전통적 협동조합, 공기업 등은 이런 측면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하다. 반면에 사회적 기업에 맡기면 사회적 기업이 갖는 투입재 공급의 다양성과 열린 지배구조의 특성상 참여형 개발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과 재화·서비스의 생산·공급에서 투입 요소 소유자의 기여 방식의 다양성, 사회적 기업의 성과 측정 기준의 다원성, 자발적으로 절제된 소유권, 다중이해관계자에 의한 지배구조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기업 형태상 일종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혁신적 기업 형태가 20세기 말에 대두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계화의 진전과 정보기술 혁명에 따른 부의 창출, 고용 창출의 공간적 불일치 경향, 고용 창출 및 복지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정부 부문의 비효율성을 거론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도 경쟁에서 밀려난 장기 실업자와 만성적 낙후 지역이 증가하고 비인격적 거래가 세계적 차원에서 증가함에 따라,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가 지적한 ‘다층적 사회적 자본’(Multidimensional Social Capital)의 빈곤화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인구의 고령화와 여성의 경제적 진출에 따른 사회복지 서비스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인격적 거래와 사회적 자본 형성
농협·신협 등 전통적 협동조합도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격화되는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조합 규모의 대폭적인 확대가 있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탈지역화, 자본조달 방식의 탈조합화(Demutualization), 사업의 국제화, 투자자-소유기업과의 유사성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사회적 기업은 이와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면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인격적 거래와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라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혁신적 기업 형태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구조적 실업의 증가와 양극화, 급속한 고령화, 도농 간 불균형 심화 속에서 나타나는 농촌 어메니티(Aamenity·각종 생활편의시설, 도시계획학상 쾌적한 환경의 개념) 수요 증가에 따라 사회적 기업의 역할과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혁신적인 사회적 기업가와 사회적 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이타적이며 관계 지향적 선호도를 지닌 사람들의 풀을 확대해야 한다.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ing)의 활성화와 조직화·보호된 시장, 공공조달 등 제도적·정책적 노력이 이뤄질 때, 사회적 기업의 공급이 확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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