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Scholars Column
     
정치 양극화가 소득 양극화 불러
불평등한 사회 표준에 맞춰 살려면 빚을 질 수밖에 없어
[7호] 2010년 11월 01일 (월) 폴 크루그먼 economyinsight@hani.co.kr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학 경제학 교수
 ‘미국 리버럴의 양심’이라 불리는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최근 룩셈부르크소득연구소(LIS)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경제 불평등’과 ‘위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난 수십 년간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파악해야 한다. 2008년 경제위기가 찾아온 뒤 경제사학자 배리 아이켄그린과 케빈 오록은 1929년 대공황 시기와 현재의 위기를 비교했다.1) 경제위기가 시작된 첫해의 경기 곡선은 서로 비슷했고,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두 차례 모두 심각했다. 세계무역량 감소와 금융시장의 혼란은 2008~2009년이 1929년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듬해부터 진행 방향은 서로 달라졌다. 1930년대와는 달리 이번에는 산업생산량이 다시 회복됐고 세계무역량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결과는 무엇보다 공공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2008~2009년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이지 않았고, 주정부도 균형예산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건 아니며, 앞으로의 향방에 그렇게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서서히 찾아올 수 있으나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1929년과 동일한 경제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통해 불평등과 경제침체 간의 관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세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다. 우선, 단순한 우연이다. 두 차례 모두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은 뒤 불평등이 확대됐다. 하지만 두 가지 현상은 서로 어떤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현실에 가까운 두 번째 가정은, 불평등의 재확대와 금융규제 약화 사이에 공통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또 어느 정도 현실에 가까운 마지막 가능성은, 불평등 자체가 거시경제 측면에서 경제를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화당이 우회전하며 불평등 심화
   
 
놀런 매카티, 키스 T. 풀, 하워드 로젠탈은 <양극화된 미국>2)에서 이 문제에 대해 경제학이 아닌 정치학의 개념으로 접근했다. 그들은 미국 정치체계의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입증했다. 대공황 이전에 민주당과 공화당은 경제·사회적 현안에서 크게 대립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양당이 거의 대립하지 않았다. 공화당 출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요즘 어떤 민주당 지도자들보다 좌파적 성향을 가졌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공화당이 우파적 성향을 한층 강화하면서 양당 간 입장 차이는 다시 심화됐다. 1980년대 이래로 정권을 잡거나 의회를 통제하는 쪽은 대부분 공화당이었다. 다시 말해 소득이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분배된 시기에는 정치적 당파성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반대로 불평등이 확대되는 시기에는 정치적 양극화도 심화된 것이다.
이 둘은 어떤 방향의 인과관계가 있는가? 놀런 매카티 등은 처음으로 경제변동이 정치적 동태를 설명한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소득 불평등이 커지면 정치적 양극화도 심각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보면 불평등이 심화되기 이전에 정치적 양극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공화당이 우파로 선회한 시점은 1970년대 초반이다. 제도적 배경이 원인이었다는 게 대다수의 견해다. 당시 ‘한계세율’(Tip & Tap 참조)을 낮춰 소득 불평등이 악화됐다. 노조활동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고, 최저임금의 실질적 수준이 크게 떨어져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
이런 상황은 금융 분야도 마찬가지다. 금융 분야가 크게 발전한 것은 정치적 변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간 세인트 저메인 법’(Tip & Tap 참조)으로 은행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미국 가정의 채무는 1982년 이후 급속하게 증가했다(<그림1> 참조). 당시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보증 요건이 급속히 완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 경제위기 직전에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다.
게다가 은행 자격이 없는 기관에서 은행 업무를 보는 일도 빈발했다. 이런 기관들은 은행보다 조금 더 높은 예금 금리를 제공했고, 종종 현금화하기 어려운 장기 투자에 거액을 대출해주었다. 이 모든 일이 기존 은행 업무를 보호하는 제도 없이 진행됐다. 경제위기 초반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 금융 시스템의 약 60%가 이 허울뿐인 은행 시스템에서 이뤄진다고 봤다. 정치 환경이 달랐다면 규제가 강화됐겠지만 포스트 레이건 시대의 미국에서 이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금융 분야의 급속한 성장은 소득 불평등 확대에도 기여했다. 초고소득층이 늘어난 것은 20세기 초반처럼 부동산 수입이 증가해서가 아니라, 거대 기업은 물론 스포츠나 쇼비즈니스 스타의 소득이 늘었기 때문이다. 투자 사업가, 기업 은행가 등 재계 인물이 소득 최상위층의 일부였다.
 
문제는 저소비가 아닌 높은 부채비율
   
 
따라서 정치적 상황 때문에 불평등이 확대되고 금융 분야가 한층 더 취약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직접적인 연관성은 무엇일까? 불평등이 확대된 사실 자체가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우리 경제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 건 아닐까? 이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저소비’ 개념을 바탕으로 이런 관계를 성립시켰다. 이 관점은 20세기 초반 존 홉슨의 연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3)
논리 전개는 이렇다.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빈곤층은 적게 소비할 수밖에 없지만, 부유층은 저축을 많이 하기 때문에 소득수준보다 적게 소비한다. 결국 완전고용을 유지하고 경기순환에 취약한 경제를 지탱하기에는 소비가 충분치 않다. 홉슨은 특히 20세기 초반 제국주의의 경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진국은 내수시장이 부족하자 외부로 시장을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오늘날에도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도 그중 한 사람이다.4) 더 공정한 소득분배가 되기를 바란다는 점엔 공감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이론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설명하기에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소비 이론은 사실 오류가 있다. 고소득자가 저축을 많이 하고, 중산층은 적은 금액을 저축하며, 저소득층은 과거 저축을 가져다 소비한다는 점은 옳다. 하지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입증했듯이 일부 고소득층은 그해에 특별히 더 많은 금액을 받아서 저축률이 높아진 것이지, 그들의 소비 행태는 달라진 게 없다. 저소득층도 마찬가지다. 평소와 달리 적은 금액을 받았는데도 소비수준을 낮추지 않았기 때문에 빚을 지게 된 것이다.
저축률이 눈에 띄게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를 평소 예상 소득수준에 맞춰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20년 전부터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평등이 확대되고 국내총생산(GNP) 대비 소비가 증가해 1980년대에 저축률이 8%로 떨어졌고, 경제위기 당시에는 0%에 가까워졌다. 미국이 저소비 문제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지표는 없었다.
반면 전세계적으로는 저축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2005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 부임한 벤 버냉키가 특히 비난하는 문제다. 그러나 과잉저축 문제는 미국인이 아닌 중국, 산유국, 독일의 부자들이 저축을 많이 한 데서 기인한다. 소득 불평등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결국 저소비 이론은 현재의 난관을 설명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높은 부채비율이 경제구조를 한층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교육 불평등이 위기의 시발점
이런 이론을 가장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로버트 프랭크 코넬대학 경제학 교수다.5) 최고 부유층의 높은 소비수준은 빈곤층과 중산층이 소득을 초과해 소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중·하층 사람들이 아둔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사회 전반의 ‘표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애덤 스미스도 이런 현상에 대해 이미 언급한 바 있다(<국부론>은 우리가 흔히 말하듯 자유시장을 주창하는 고전을 넘어 훨씬 흥미로운 책이다). 오늘날 우리는 좋은 차를 타고, 특별한 패션 스타일을 갖춰야 할 의무를 부여받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동네에 집을 보유해야 한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사람들은 불평등한 사회가 강요하는 표준에 맞춰 살기 위해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신설되는 소비자보호단체의 의장을 맡게 될 엘리자베스 워런 변호사 6)는 미국 금융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딸과 공동으로 집필한 저서에서, 미국인이 경제위기를 겪게 된 것은 사람들이 신용카드로 평면TV를 사들여서가 아니라 집을 사기 위해 많은 빚을 지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결국 교육 분야의 불평등이 현재 당면한 문제들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불평등이 확대되고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물론 정치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불평등 확대와 거시경제적 취약성은 서로 직접적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새로운 대공황으로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을지 알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것만 남았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번역 서희정 위원


1) <두 개의 공황 이야기>, www.voxeu.org/index.php?q=node /3421.
2) www.voteview.com/polarized_america.htm.
3) fr.wikipedia.org/wiki/John_Atkinson_Hobson.
4) robertreich.org.
5) www.robert-h-frank.com.
6) en.wikipedia.org/wiki/Elizabeth_Warren.

Tip & Tap
한계세율
초과수익에 대해 세금으로 내야 할 비율. 세율 구조가 누진적이면 과세표준이 커짐에 따라 평균세율보다 더 높아진다.
간 세인트 저메인 법(Garn St. Germain Act)
1982년에 채택돼 미국의 저축은행 관련 규제를 완화했고, 특히 변동금리 담보대출을 가능하게 했다. 이로 인해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저축은행 경제 대란이 일어났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