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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화폐개혁, 실패 단정 이르다
[NK economy]
[1호] 2010년 05월 03일 (월)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conomyinsight@hani.co.kr

개혁과 개방이라는 도전 속에서 북한 경제는 지금 전환기를 맞고 있다. 남한경제는 어느 정도 북한경제 변수와 맞물려 돌아간다. 단기적으로 북한경제 상황은 남한경제에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북한경제의 동향과 파장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한다. 특히 장기적으로 통일을 대비해 북한경제를 예의주시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북한경제의 실태 및 남북한 경제협력과 관련한 주요 이슈를 분석·정리하는 고정물(NK economy)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지난해 11월 말 북한에서 화폐개혁이 실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국내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보도를 쏟아내었다. 한국정부가 말을 아끼는 가운데 국내 NGO 및 탈북자 단체의 대북소식지들이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면, 언론은 이를 여과 없이 보도하거나, 전문가 및 언론의 해석을 덧붙여 화폐개혁 및 이후의 북한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기본 패턴이었다.
화폐개혁이 실시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국내 언론들은 ‘상황 종료’를 선언한 듯하다. 화폐개혁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의 대혼란, 심지어는 폭동, 더욱이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식의 보도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차분하고 냉정한 관찰과 분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 북한의 이번 화폐개혁은 단순한 화폐개혁이라고 보기 어렵다. 화폐 액면 절하(redenomination)및 신·구화폐 교환에 그치지 않고, 교환의 한도를 설정했다. 아울러 외화사용 금지, 종합시장 폐쇄 등 물리적 강제력을 앞세운 보수적 경제정책과 패키지로 추진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다 임금과 환율을 포함해 전반적인 가격체계의 재편도 시도했는데 이는 국가 자원배분 체계의 재편을 의미한다. 정책의 성격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정책의 무게감만 놓고 보면 2002년의 7·1 경제관리개선조치에 비견되는, 새로운 경제관리조치라고 평가할 만하다.
 
부유층ㆍ상인의 지갑 뺏기

북한정부의 의도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핵심은 화폐교환 과정을 통해 주민이 보유하고 있는 화폐를 국가가 환수하는 것이다. 구화폐와 신화폐를 100:1로 교환해주되, 교환해주는 한도를 설정해 그 한도를 넘어서는 보유화폐를 사장(死藏) 또는 퇴장시킨다.  이렇게 민간 보유 화폐량이 크게 줄어들면 국가가 인플레이션 부담 없이 새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따라서 국가 재정수입이 늘어난다. 이 돈을 임금 등으로 풀어 주민들을 시장에서 직장으로 되돌아오도록 유인한다.
   
▲ 4월8일 북한 평양 강동군에 있는 합법 공설시장 진입로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게다가 부유층과 상인들의 화폐자산을 대폭 감축시켜 시장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보유 화폐 규모의 축소 효과는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계층일수록 크다. 즉 일반 주민도 충격이 있겠지만 상인계층의 충격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활동의 재정적 기반을 약화시킴으로써 실질적으로 시장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조선신보는 북한 중앙은행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화폐개혁의 주된 목적의 하나가 계획경제 정상화 및 시장 억제(축소)임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공급 능력의 확충이다. 인플레이션이 근절되지 않는 것도,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이는 것도, 시장을 뿌리 뽑지 못하는 것도 결국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해외의 공급 확충은 대외관계 개선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늘리면 해결된다. 국내의 공급 확충은 최근의 150일 전투, 100일 전투의 성과 등에 의해 확보 가능하다. 국가가 국내의 유통망을 장악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즉, 현재 종합시장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사적 유통망을 공식적인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내외적으로 공급능력을 확대하고 국가가 국내의 유통망을 장악하면 계획경제 정상화 및 시장 억제, 국가 재정수입 확충,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울러 국가가 주민들의 외화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각종 통제를 강화하면 화폐개혁의 부작용, 폐해를 막을 수 있다. 물론 국가가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북한당국이 화폐개혁을 실시하기 전에 그려보았던 성공 시나리오는 대략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동자 임금 100배 뛰어

북한정부의 이러한 구상은 실현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현재 북한에 만연되어 있는 달러화(dollarization), 위안화(yuanization) 현상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 북한은 경제위기 이후 국내 자원이 사실상 고갈되고, 대외의존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실물 경제에 대한 달러화, 위안화의 지배력이 크게 높아져왔다. 주민들은 가치가 폭락한 북한 원화를 기피하고 가치가 높아진 외화를 선호한 지 이미 오래다. 이번 화폐개혁이 단행되는 시점에서 이미 대부분의 부유층과 상인들은 북한 원화보다는 외화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일반 주민들도 북한 원화보다는 적지만 어느 정도 외화를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외화라는 대체화폐의 존재는 내화를 대상으로 한 화폐개혁 조치의 성과를 제약하는 중요한 걸림돌이다. 국내의 화폐 환수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화폐개혁이 북한 원화의 기피 및 외화 선호 현상, 달러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외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외화 거래가 불법화된 데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의 존재로 인해 외화 환율이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환율 상승은 국내 물가에 즉각 반영된다. 즉, 환율 상승에 따라 수입품의 국내 판매 가격이 곧바로 상승한다. 더욱이 시장은 단속·통제되고 있으며, 물가 상승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고, 노동자·농민의 구매력은 일시적이나마 높아졌고, 게다가 투기 세력까지 가세하면 물가는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환율 및 물가 폭등, 상품 공급 위축 등 화폐개혁의 부작용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북한정부는 2월 초부터 시장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늦추고, 시장에서의 식량과 공산품 판매를 허용했다. 또한 외화 사용 금지 조치도 유야무야되면서 정부는 외화 사용을 묵인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북한에서 경제 분야의 최고 책임자인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이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살당했다든지, 김영일 내각 총리가 화폐개혁의 후유증에 대해 주민들에게 사과했다는 미확인 보도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지난 4월8일 북한 쳥양 강동군 공설시장 진입로 입구에서 쌀을 팔고 있는 여성들.
화폐개혁 이후 넉 달간의 경과를 보면 무엇보다도 북한정부의 허둥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화폐체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후폭풍을 몰고 오는 데 대한 우려와 당혹감을 읽을 수 있다.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신권과 구권의 교환한도를 인상하고, 예정에 없던 무상배려금을 지급한 점, 새로운 국정가격체계와 환율을 신속하게 발표하지 못한 점, 무엇보다도 물가와 환율이 폭등하고 식량을 비롯한 상품거래가 크게 위축되고, 이에 따라 종합시장 폐쇄를 단행한 지 불과 보름 만에 통제를 철폐하는 점 등은 화폐개혁 이후의 경제 전반에 대한 북한정부의 관리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북한 화폐개혁을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물론 앞에서 보았듯이 부작용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확충된 재정수입을 활용해 노동자·농민에 대해 임금 및 현금분배액을 대폭 인상했다. 노동자는 임금이 100배, 농민은 현금분배액이 수백 배 상승했다. 정부는 시장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많이 모은 계층으로부터 화폐를 환수해 노동자·농민 등 기존 계획경제체제 순응적인 계층에게 나누어준 셈이다. 따라서 노동자, 농민은 갑자기 현금수입이 크게 늘어났고, 따라서 지금까지 구입할 수 없었던 각종 생활용품 및 고가 내구소비재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더욱이 현재 북한과 같이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사회에서 이들 상품은 단순한 소비품이 아니라 가치를 보전할 수 있는 훌륭한 실물 자산이라는 의미도 강하다.
  
대외경제정책 새 국면 돌입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은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이에 따라 그동안 크게 약화되었던 국가의 사회적 통제력도 다소 회복할 수 있다. 나아가 후계구도 구축 등을 위한 내부 단속, 체제 결속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북한 정부 입장에서 보면 적지 않은 성과임에 틀림없다. 물론 대폭 인상된 급여와 현금분배 지급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그리고 농민·노동자들의 현금수입 증대의 의미를 축소하는 경제 전반의 물가와 환율 상승 움직임이 앞으로 어떠할지가 이러한 성과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정부의 향후 대응방향에 따라서는 상황에 다소 변화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화폐개혁 이후 새로운 환율 및 국정가격 체계가 확정, 공표 혹은 조정, 공표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경제전반의 자원배분 체계의 재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아울러 지난 2월 초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외화사용 금지 및 시장의 폐쇄와 같은 극단적이고 초강경한 정책적 조치를 철회한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물가와 환율의 불안은 다소 진정시킬 수 있다. 물론 이번의 시장 통제 완화 조치가 얼마나 지속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게다가 통제 조치와 상관없이, 이번의 화폐개혁으로 외화 선호 현상이 심화되고, 따라서 환율 및 물가가 재차 상승할 가능성, 특히 일종의 기대심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물가 및 환율의 향배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다만 북한정부가 북미관계를 비롯해 대외관계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이에 따라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다소 늘어난다면 상황은 다소 개선될 수 있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자원 유입은 다소 시일이 필요하며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측면도 있다.
화폐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가 공급 부족의 해결임을, 특히 국내의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외부로부터의 자원 유입이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북한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인지 최근 대외개방 확대를 위한 북한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연말 김정일 위원장이 나선경제특구를 방문, 대외무역과 외자유치를 강조한 데 이어 곧바로 나선시를 특별시로 격상시켰다. 이어 지난 1월에는 ‘국가개발은행’ 설립을 발표했고, 외자유치 창구로서 조선대풍국제그룹을 지정, 외자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북한정부의 의지는 충분히 감지되지만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외자유치는 북핵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 또한 자신들이 외부에 대해 문을 열기만 하면 외자가 물밀듯이 쇄도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여건 개선을 위해 북한정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북한정부의 인식의 현실성 수준이 변수로 작용한다. 경제 분야에서 북한은 한국보다는 중국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을 전후해 북중 관계는 크게 진전되었고, 이에 따라 양국간 경협·지원이 확대될 것이라는 방향성은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속도·규모를 결정하는 변수는 적지 않다. 화폐개혁을 계기로 북한의 대내외 경제정책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북한의 화폐개혁, 엄밀히 따지면 경제 운용의 새로운 ‘판 짜기’는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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