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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0원 돼도 휘발유는 900원
[국내이슈] 동네 기름값이 국제 유가와 따로 움직이는 이유
[88호] 2017년 08월 01일 (화) 심나영 sny@asiae.co.kr
고정 유류세와 주유소 가격 결정 구조가 원인... 중국산 기름 수입 땐 더 싸질까
 
국제 유가보다 휘발유 가격은 왜 천천히 하락할까. 우선 유가와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이 원인이다. 휘발유엔 60% 정도 세금이 부과된다. 유류세는 유가와 관계없이 고정돼 있다. 그래서 국제 유가가 0원까지 떨어지더라도 정해진 세금은 내야 하므로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최소 900원이 넘는다. 주유소의 가격 결정 구조도 기름 값 하락의 체감 속도를 늦춘다. 주유소는 정유사의 공급가를 원가로 삼아 가격을 결정한다. 주유소는 한 달에 두세 차례 정유사로부터 석유제품을 사서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쌀 때 사놓고 비쌀 때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려고 한다. 여기서 유가 하락 속도와 휘발유 가격 하락 속도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심나영 <아시아경제> 기자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국제 유가보다 느리게 내리는 이유는 고정 유류세와 주유소 가격 결정 구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입구에 유가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국제 유가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한국 정유사들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를 비롯해 북해산 브렌트유, 서부 텍사스산 원유를 포함한 전통 원유에 대항해 셰일오일이란 막강한 경쟁자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을 위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도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정유업계에선 “더 이상 과거처럼 배럴당 100달러에 이르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60달러 이상 오르기도 벅찰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국제 유가 하락 뉴스를 접하는 일반 국민이 궁금한 점은 하나다. 국제 유가가 떨어지는 만큼, 주유소 기름값도 하락하느냐이다. 일단 수치로 알아보자.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2017년 7월14일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438.05원이었다. 2017년 들어 원유 가격(두바이유 기준)이 가장 높았던 때는 2월 3일로, 당시 배럴당 55.08달러였다. 두바이유는 7월14일 기준 배럴당 47.22달러로 5개월 전보다 원유 가격이 14% 하락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휘발유는 5.2%(1516.95원→1438.05원) 내리는 데 그쳤다.
 
‘국제 유가 하락 속도보다 주유소 기름 값이 내리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국제 유가가 오늘 10달러 내렸으니 내 차에 넣는 휘발유도 100원 내려야 한다는 기대는 한낱 꿈일 뿐이다. ‘원유→싱가포르 거래시장→정유사 공급→주유소 판매’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는 석유제품의 유통 구조와 국제 유가가 0원이 되더라도 고정 부과되는 유류세에 기름값의 비밀이 숨어 있다.
 
국제가격 따라가는 정유사 공급가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정유사 공급가다. 정유사 공급가는 역내 최대 트레이딩 시장인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국제 석유 제품 가격을 기반으로 한다. 정유사들 마음대로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나 경유, 등유 가격을 조정할 수 없다.
 
한 정유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유사들이 임의로 가격을 올려 내수시장에 석유제품을 공급하면 국제시장에서 싼 석유제품이 수입될 것이다. 싱가포르 국제 제품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없다.” 변수는 있다. 내수시장 상황이다. 큰 틀에선 국제 제품가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주유소 간 경쟁과 수요자의 구매 상황에 따라 공급가는 유기적으로 달라진다.
 
비쌀 때 사서 싸게 파는 주유소는 없다
일반 국민의 기름값 하락 체감 속도를 결정하는 주체는 주유소다. 주유소는 정유사의 공급가를 원가로 삼아 가격을 정한다. 전국 1만 개 넘는 주유소들은 각자 휘발유, 등유, 경유 저장탱크를 갖고 있다. 한달에 두세 차례 정유사로부터 석유 제품을 사놓고 보관해두었다가 소비자에게 판다. 주유소는 석유제품이 쌀 때 정유사로부터 판매할 기름을 사놓고, 비쌀 때 소비자에게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려고 한다. 여기서 유가 하락 속도와 휘발유 가격 하락 속도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주유소가 정유사로부터 2주 전에 비싸게 산 휘발유의 재고가 많이 남았다고 치자. 현재 정유사가 휘발유 가격을 그 때보다 내리더라도, 주유소는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최종 가격을 선뜻 떨어뜨리기 어렵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팔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주유소도 비싸게 산 휘발유를 모두 팔 때까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진 않는다.
 
반면 유가가 오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유소 처지에선 과거 정유사로부터 싸게 산 휘발유를 비싸게 팔 기회가 주어져서 가격을 올리는 게 이득이다. 그러나 정유사들도 경쟁 탓에 생각보다 큰 폭으로 올리진 못한다. 옆 주유소에서 100원 비싸게 팔 때, 나는 95원만 올리면 손님이 몰리기 때문이다. 주유소 간 견제 심리로 인해 가격 상승이 어느 정도 억제된다.
 
최근 몇 년간 국제 유가가 가장 많이 올랐던 2012년으로 가보자. 2012년 6월22일 두바이유는 배럴당 89.15달러였는데 그해 9월14일 115.41달러까지 29.4% 증가했다. 그러나 국내 주유소 판매 보통 휘발유 가격은 1953.60원에서 2025.79원으로 3.7% 오르는 데 그쳤다. 주유소 관계자는 “휘발유 제품 가격을 정하는 건 주유소의 마케팅 활동”이라며 “소비자도 주유소 검색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가장 값싼 제품을 파는 주유소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에도 국제 유가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석유수출국기구 본부 앞에 텔레비전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REUTERS
 
국제 유가 0원 돼도 기름값은 900원인 이유
휘발유와 경유에는 62% 정도의 세금이 부과된다. 유류세 때문에 국제 유가 변동도 주유소 휘발유 가격에 바로 반영되기 어렵다. 2017년 7월 첫쨋주 정유사 휘발유 공급가는 1359.2원. 세전 가격은 489.28원이지만 교통에너지환경세·개별소비세·교육세를 비롯한 6개의 세금이 총 869.92원 붙었다. 유류세는 정액분이 커서 휘발유나 경유 가격이 내려갈수록 비중이 점점 커진다.
 
유류세는 유가와 관계없이 고정 부과된다. 정유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기름값에는 각종 세금이 붙어 있다. 국제 유가가 0원까지 떨어지더라도 정해진 세금은 내야 하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사는 휘발유 가격은 최소 900원이 넘는다.”
 
알뜰주유소는 정말 쌀까?
기름을 싸게 사는 방법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게 알뜰주유소다. 오피넷이 발표한 7월 둘쨋주 ‘주간 국내 유가동향’에 따르면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3.5원 내린 1408.8원, 경유는 3.1원 하락한 1199.8원이었다. 정유 4사 중 가장 가격이 높은 SK에너지와 비교할 때 휘발유는 51.6원, 경유는 52.8원 저렴한 셈이다.
 
여기에도 짚고 넘어갈 점은 있다. 정유사 셀프 주유소도 일반 주유소보다 40~50원 싸게 판다는 것이다. 주유 마일리지와 제휴카드 할인을 더하면 알뜰주유소의 인하 가격과 정유사의 실질 소비자 판매가격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주유시 리터(l)당 알뜰주유소 제휴카드 할인이 보통 80원인데 비해, 일반 정유사 제휴카드 할인 100원, 포인트 5원 적립, 30~40원에 이르는 프로모션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며 “알뜰주유소와 일반 주유소의 가격 차이가 리터당 50원 정도라면 혜택을 감안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소비자가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산 기름이 수입된다면?
국제 유가와 상관없이 국내 기름값을 내릴 방법 중 하나는 중국산 석유를 들여오는 것이다. 한국 석유시장은 완전개방 시장이지만 중국산 석유는 그동안 품질 문제로 들여오지 못했다. 2017년 1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휘발유와 경유의 품질 규격이 한국 수준으로 상향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 함유량을 한국과 같은 10ppm(1ppm은 100만분의 1)으로 낮췄다. 기존에는 50ppm이어서 국내 수입이 불가능했다. 만약 중국에서 싼 가격을 제시하면 국내 정유 4사에서만 제품을 구입하던 유통점은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수입사에도 중국산 제품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산 기름의 유입 통로는 열렸지만 아직까지 수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중국 공장들이 이 기준에 맞는 제품 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유사들은 고품질 제품을 만들기 위해 탈황(脫黃) 시설을 추가로 짓고 있다. 중국 정유사들은 2017년 생산된 저품질 경유를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같은 환경 규제가 약한 지역에 팔고, 고품질 경유는 한국에서 수입한다. 그러나 중국 정유사들이 탈황 설비를 제대로 갖추면 언제든지 수입될 수 있다.
 
과거에도 외국에서 정제된 기름을 수입했지만 일시적이었다. 2012년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세재 혜택을 등에 업은 일본산 경유가 대거 들어왔으나, 국내 업체의 반발로 혜택이 사라지자 수입이 중단됐다. 국내 정유사 관계자는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다는 측면에서 당시와 상황이 전혀 달라 중국의 생산·수출 추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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