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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숟가락, 그 가벼운 힘
[곽윤섭 기자의 '포토 인']
[86호] 2017년 06월 01일 (목)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글·사진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영도대교가 공식 명칭인 ‘영도다리’의 도개행사를 보려면 ‘유라시아대륙의 종점 마을’이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유라리광장’으로 가야 한다. 부산 중구 남포동에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영도다리 근처에 형성된 점바치 골목이 있던 곳이다. ‘점바치’는 점쟁이의 사투리다. 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란민들 사이에 “혹시라도 헤어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하는 일이 많았고, 나중엔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이 영도다리에 가면 혹시 만날까 기대감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심리를 따라 운명을 점쳐주는 점집이 늘어나면서 점바치 골목이 형성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든 가운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하루 한 번 다리가 올라가는 도개행사가 끝나고 유라리광장은 다시 한산해졌다. 광장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손에 든 플라스틱 숟가락이 눈을 찔렀다. 벤치엔 간소한 도시락, 아래쪽엔 가방이 보인다.
 
성철 스님 어록 중에 “누구라도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108배를 할 수 있고 108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3천 배도 할 수 있다”가 있다.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또 세간에 우스개로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어쩐다”라는 말이 있다. 충남 논산 훈련소 시절에 절대 잃어버리면 안되는 지급 품목으로 M16 소총만큼 중요하다고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던 것이 숟가락이었다.
 
다시 한국전쟁 시절을 이야기하면 피란민이 꼭 챙기고 다닌 항목에 숟가락이 빠질 수 없었다. ‘밥숟가락을 놓았다’는 ‘세상을 등졌다’는 말의 은유적 표현이다. 한국인에게 숟가락은 식사 도구 이상의 의미로 통용된다. 금수저·은수저·흙수저를 논하는 수저계급론에서 실제 흙수저를 쓰는 사람은 없으니 플라스틱 숟가락이야말로 가장 밑바닥 계층의 숟가락이다. 저토록 가벼운 숟가락이 간신히 매달려 있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아니다. 초여름 부산 바닷가의 햇볕은 매우 따가웠다. 이 남자는 노숙자가 아니라 잠시 조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차마 그의 얼굴을 찍을 수도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플라스틱 수저의 운명은 ‘점바치’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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