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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시민정치
[Trend] 참여민주주의 구현할 ‘시빅테크’
[85호] 2017년 05월 01일 (월) 알렉산드라 뤼테로 economyinsight@hani.co.kr
온라인 통한 법안 토론, 예산 논의 확산... 소수의 특정 계층 운동이란 한계
 
시민이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정치에 참여하는 시빅테크(Civic Tech)가 대의민주주의 위기의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선 시빅테크를 기반으로 한 주민참여예산, 온라인 청원, 주민소환 관련 온라인 플랫폼이 잇따라 생겨났다. 파리시 예산 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빅테크가 정착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참여 인원이 많지 않고 참여자의 다양성에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운영 주체의 열악한 재정도 풀어야 할 숙제다. 여하튼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기술의 진화는 계속될 것이다.
 
알렉산드라 뤼테로 Alexandra Luthereau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우리는 21세기를 사는 시민이지만 대의민주주의라는, 15세기에 개발된 제도가 잘 운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젠 ‘인터넷 시대에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이자 데모크라시 OS(DemocracyOS)의 창시자인 피아 만치니의 강연 내용 중 일부다. 데모크라시 OS는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치 플랫폼으로 오픈소스소프트웨어(OSS·저작권이 있으면서도 소스코드가 공개돼 누구나 복제, 사용, 변경, 재배포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편집자)다.
 
‘시빅테크’(Civic Tech)는 2013년부터 미국에서 사용된 단어로, 프랑스에는 2년 전 처음 등장했다. 시빅테크는 다양한 형태의 시민 참여 플랫폼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체인지닷오아르지(Change.org)나 위사인잇(WeSign.It) 같은 온라인 청원 플랫폼과 주민참여예산 플랫폼이 있다. 이 밖에 텔마이시티(TellMyCity)나 플루이시티(Fluicity)처럼 주민소환 및 지역문제 알림 플랫폼이 있고, ‘파를르망 에 시투아얭’(Parlements & Citoyens)처럼 의원이 법안 초안을 제안하면 주민들이 의견을 개진해 공동으로 법안을 완성하는 플랫폼도 있다. 정부의 공공정보 공개 사이트(data.gouv.fr)도 있다.
 
시빅테크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워낙 다양하고 이질적인 분야의 인터넷 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이 시빅테크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디지털·혁신 담당관실은 2016년 가을에 열린 제1회 프랑스 시빅테크 포럼을 계기로 프랑스의 시빅테크 사이트 및 앱 현황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50여 개의 사이트와 앱이 존재한다.
 
시빅테크는 시민 책임, 민주적 참여, 정부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개발된 플랫폼과 모바일 앱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 이해하면 공공기관 후원 사이트나 시민단체 사이트뿐 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개발한 플랫폼도 시빅테크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플랫폼이나 앱이 악셀 르메르 전 디지털 담당관이 선언한 것처럼 정말 민주주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 온라인 청원 등 시민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정치에 참여하는 시빅테크(Civic Tech)가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페인의 시빅테크 ‘디사이드 마드리드’ 회원들이 2016년 10월 마드리드에서 교육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이용자 부족과 다양성의 한계
데모크라시OS 프랑스 지부 회원인 발랑탱 샤퓌에 따르면, 현재 시빅테크는 전세계적으로 아직 걸음마 단계다. 물론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파리시 주민참여예산 투표에는 10만 명 넘는 시민이 참여해 시 예산의 5%에 해당하는 5억유로(약 6100억원)의 예산 편성을 결정했다. 참여 주민 수로 보나 편성된 예산 금액으로 보나,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주민참여예산이다. 또한 2015년 악셀 르메르가 발의한 디지털 공화국 법안 온라인 시민 공청회에는 2만1300명이 참여해 8500건이 넘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특히 디지털법에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도박을 명시적으로 구분하는 조항이 삽입된 것은 온라인 시민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의 연합 ‘자유와 디지털 관측소’에 따르면, 실제 반영된 제안은 온라인 공청회 당시 최다 득표한 제안이 아니었다. 따라서 시민이 직접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온라인 공청회라는 형식은 주목할 만하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별로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치학 박사 로이크 블롱디오는 “온라인 청원 플랫폼을 제외하면 시빅테크 분야에서 가장 알려진 플랫폼이라도 이용자가 많아야 수만 명에 그치다보니 민주주의제도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시빅테크의 잠재성과 기대에 비춰볼 때 실망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시빅테크의 또 다른 한계는 이용자가 주로 도시 주민이고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시빅테크 리더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2016년 파리시가 주민참여예산 투표를 진행할 때 서민 거주 지역 주민들의 투표 참여를 높이기 위해 각 구청과 사회복지센터에 투표소를 마련한 것도 이런 문제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파리시장은 구의회에서 주민들을 직접 만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덕분에 모든 연령층이 투표에 참여했고, 서민 거주 지역 투표자도 1만3천 명에 이르렀다. 1만3천 명은 총 투표자 수의 15%에 해당한다.
 
온라인 청원 사이트 ‘위사인잇’의 창시자 바키 유수푸는 “시빅테크가 중립적 기술이 아니고 개발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시빅테크 플랫폼 개발자가 서민층이나 농민층과 어떤 관련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만든 시빅테크 플랫폼도 이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 시빅테크의 문제점은 언론과 정부에서 띄워주는 시빅테크 플랫폼 개발자의 대다수가 같은 학교, 같은 직업 출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다양성 부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시빅테크의 또 다른 문제는 시빅테크 소프트웨어가 자유롭게 사용·복사·배포·수정이 가능한지, 아니면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한지 여부다. 이는 경영모델이 영리 추구가 목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와 관련 있다. 많은 시빅테크 옹호자들은 유료 소프트웨어는 투명성과 비영리 추구라는 민주주의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 ‘시민의 시선’은 민주주의가 탄생 초기부터 시민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투명성과 공직 진출의 형평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고 분석하며, 동일한 원칙을 시빅테크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 프랑스 파리시는 주민참여예산 투표를 할 때 서민 참여를 높이기 위해 구청이나 사회복지센터에 투표소를 마련했다. 2016년 6월 파리시 한 사회복지센터에서 시민이 투표하고 있다. REUTERS
 
오픈소스 vs 시빅 비즈니스
이 경우 어떻게 시빅테크를 유지할 것인가? 자원봉사자로만 시빅테크 플랫폼을 운영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위사인잇은 자원봉사자 200명으로 운영되고 그중 5명은 거의 상근 봉사자들이다. 위사인잇은 연간 16만유로(약 1억9400만원) 정도의 이용자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반면 복스닷오아르지(Voxe.org)는 최근 민간기업으로 등록해 두 가지 상업활동을 개시했다. 그중 하나는 콘텐츠 관련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관련 활동이다. 이 사이트 공동창시자 레오노르 드 로케페이가 말했다. “상업활동으로 나오는 수익을 플랫폼 개발에 재투자한다. 상업활동을 시작한 건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영향력을 키우고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국 기업 체인지닷오아르지는 기업과 비정부기구(NGO)가 후원하는 청원을 유료로 전환했다.
 
메이크닷오아르지는 플랫폼 운영팀이나 이용자들이 제기한 문제를 기반으로 정치적 안건을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세계적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디저(Deezer)의 전 최고경영자(CEO) 악셀 도체즈가 만든 이 사이트는 여론조사 앱 ‘거브’(Gov)와 유사한 형태로, 2016년 160만유로(약 19억4천만원)의 기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사실 메이크닷오아르지와 거브의 경영모델은 취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론을 연구한 다음 그 결과를 상업화하는 것이다. 메이크닷오아르지는 투명성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강조한다. 매 분기 파리정치대학(Sciences-Po)에 플랫폼 알고리즘 감사를 맡기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발랑탱 샤퓌를 비롯한 시빅테크 운동가들은 이 기업들이 시빅테크를 내세우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 이 기업들은 오픈소스가 아닌 유료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의 진짜 목적은 시민들에게 참여와 행동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는 시빅테크가 아니라 ‘시빅워싱’(Civic-washing), 즉 마케팅 목적으로 시민운동을 활용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기술로 돈을 벌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이 기술은 시빅테크가 아니다. 시빅테크는 기본적으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자료가 왜 수집되는지, 어디에 저장되는지, 운영 모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바키 유수푸의 설명이다.
 
방법론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시빅테크가 참여민주주의의 부활이라는 애초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시빅테크가 지금의 걸음마 단계를 넘어 더 광범위하게 보급된다고 해도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로이크 블롱디오 박사는 “누구나 모든 주제의 논쟁에 참여하기 원치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경우에 따라 물리적 또는 지적으로 논쟁 참여가 불가능한 사람이 있고, 그저 단순히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뽑은 대표를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파리12대학의 스테파니 보이시크 교수에 따르면 시빅테크는 민주주의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행 민주주의제도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시빅테크는 단지 신기한 발명품일 뿐일까? 기본적으로 시빅테크는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정치인 불신을 극복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시빅테크에 호의적인 것은 이 기술이 상징하는 표현 형태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빅테크는 어떤 목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거나 특정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정보 제공과 시민 참여의 도구다.
 
   
▲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부 장관이 2017년 4월12일 서울 동대문에서 열린 국제해킹방어대회 ‘코드게이트’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대만의 시빅테크 기반 사회운동인 ‘해바라기운동’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연합뉴스
 
시민운동에서 탄생한 시빅테크
시빅테크는 세계 도처에서 발전하고 있지만 그것의 탄생과 보급은 나라마다 다르다. 각국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시빅테크는 시민사회의 저항 과정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시민 로비 플랫폼인 ‘메우 리우’(Meu Rio)는 브라질 지도층의 대규모 부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탄생했고, 대만의 ‘해바라기운동’(국민당 정권이 중국과의 서비스 무역협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 대학생들이 가슴에 해바라기를 달고 나와 의회를 점거한 사회운동 -편집자)도 중국의 언론 장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됐다. 해바라기운동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이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오드리 탕이 대만의 디지털부 장관이 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스페인에선 과거의 활동가들이 자치단체장으로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현재 스페인의 많은 도시에서 사용하는 주민참여 예산 플랫폼 등 여러 오픈소스 플랫폼을 개발했다.
 
Alternatives Economiques 2017년 4월호(제367호)
Les Civic Tech veulent soigner la démocratie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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