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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마이크론의 차세대 메모리 야심
[Business] 차세대 메모리 ‘3D크로스포인트’ 베일을 벗다
[85호] 2017년 05월 01일 (월) 신기섭 marishin@hani.co.kr
첫 발표 1년8개월 만에 인텔 상용 제품 공개... 시장, 디램 대체 가능할지 주목
 
컴퓨터의 핵심 메모리 디램과 저장장치 SSD를 모두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 ‘3D크로스포인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과 마이크론이 2015년 7월 공동 발표한 이 제품은 그동안 허풍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 이 제품이 왜 주목받는지,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따져본다.
 
신기섭 편집장
 
기업들이 야심작을 발표할 때는 공개 일자 선정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다. 노출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의 행태는 이상하다 못해 비밀스럽기까지 하다. 미국 인텔은 금요일인 2017년 3월19일 자사 홈페이지에 조용히 보도자료 하나를 올렸다. 주말로 접어들면 독자는 물론 기자들의 관심도 덜 받는 걸 모를 리 없는 기업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이날 발표한 제품은 인텔과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이 2015년 7월 공동개발 사실을 처음 공개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3D크로스포인트(Xpoint)’의 첫 상용 제품이다. ‘옵테인 P4800X’라는 이름의 제품은 데스크톱컴퓨터나 서버 컴퓨터에 확장카드 방식으로 꽂아 쓰는 375기가바이트(GB) 용량의 저장장치다. 발표와 동시에 극히 일부 사용자에게 먼저 제공된 뒤 2017년 2분기(4~6월) 중 1520달러(약 170만원)에 본격 시판할 예정이다.
 
‘차세대 반도체’가 드디어 판매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세간의 주목을 피하듯이 공개한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하지만 2년여 동안 두 회사가 3D크로스포인트를 다룬 태도를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두 회사는 제품 개발이 무르익기도 전에 성급하게 발표한 인상을 준 뒤 지금까지 2년 가까이 상세 정보 공개를 꺼렸다. 그래서 허풍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말부터 특허 문제 때문에 공개를 꺼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이 반도체가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에도 추측만 무성하다.
 
   
▲ 미국 인텔이 다음 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야심차게 개발하는 ‘3D크로스포인트’의 첫 상업용 제품. 인텔은 컴퓨터 확장카드 형태로 꽂아 쓰는 이 제품에 이어 디램처럼 연결해 쓰는 제품도 준비하고 있다. 인텔 제공
 
3D크로스포인트의 정체는?
3D크로스포인트는 컴퓨터의 주기억장치인 디램(DRAM)과 하드디스크를 밀어내고 핵심 저장장치로 떠오른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의 중간 성격을 지닌 메모리다. 이 메모리의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디램과 SSD의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컴퓨터의 작동 과정을 요리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디램은 조리대(또는 도마)에 해당하고 SSD(또는 하드디스크)는 음식을 넣어두는 찬장(또는 냉장고)에 해당한다. 요리를 하려면 찬장에서 재료를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요리를 해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편하게 작업하려면 조리대가 넓어야 한다. 컴퓨터로 말하면, 디램 용량이 커야 한다. 찬장이나 냉장고의 용량이 아무리 넉넉해도 조리대가 좁으면 불편하다. 조리대에서 처리한 재료를 옆으로 치워두고 다른 재료를 조리대에 올려 처리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컴퓨터 작업도 비슷하다. 디램 용량이 클수록 작업 속도가 빠르다. 디램의 작동 속도가 SSD나 하드디스크보다 월등히 빠른 덕분이다. 대신 값이 비싸다. 게다가 전원을 계속 공급해주고 일정 시간마다 자료를 갱신시키지 않으면 자료가 모두 사라진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다 채 파일로 저장하기 전에 정전이 발생하면 작성하던 문서가 날아가는 것이 디램의 이런 특성 때문이다. SSD는 디램에 비해 값이 싸고 전원이 끊어져도 일단 기억된 데이터는 안전하다. 하지만 작동 속도가 디램에 비해 한참 느리다. 그래서 최신 개인용컴퓨터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적은 용량(보통 8~32GB)의 디램과 많은 용량(128~512GB)의 SSD를 갖추고 있다. 비용과 효율을 고려해 둘의 용량을 배분한 것이다.
 
3D크로스포인트는 두 가지를 대체·통합할 만한 특성을 지녔다. 첫째, 작동 속도가 디램보다 느리지만 SSD에 쓰이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이하 낸드 메모리)보다 월등히 빠르다. 둘째, 가격이 디램보다 훨씬 싸고 장차 낸드 메모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셋째, 디램과 달리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가 계속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SSD를 대체하되 디램과 비슷한 기능을 겸할 수 있는 제품에 가깝다.
 
인텔이 이번에 발표한 P4800X의 값은 용량 1GB당 4달러(약 4800원) 수준으로, 전문가용 SSD 제품(GB당 1달러)의 4배 정도이지만 대용량 디램(GB당 10달러)보다는 60% 정도 싸다. 작동 속도는 작업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데, 인텔은 작업에 따라 최고급 SSD보다 2.5~77배 빠르다고 주장했다.(이 속도 차이는 자료를 주고받는 속도보다 자료 전송 명령에 반응하는 지연 시간 차이, 곧 레이턴시 차이에서 온다고 한다.)
 
이번에 공개된 성능은 2015년 애초 두 회사가 주장한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 당시 두 회사는 낸드 메모리보다 최대 1천 배 빠르고 수명도 1천 배 더 길며, 집적도는 디램의 10배에 이를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속도가 낸드 메모리의 100배, 수명은 3배가 될 거라고 말을 바꿨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당한 성능인 것은 분명하다.
 
   
 
3D크로스포인트가 주목받는 이유
실제 사용 현장에서 검증이 필요하지만, SSD보다 4배 비싼 반면 작업 속도가 몇십 배 빠르면 전문적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구미가 당길 만하다. 특히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고성능 서버를 쓰는 기업들의 눈길을 끌 만하다. 고성능 서버는 일반 컴퓨터보다 월등히 많은 용량의 디램과 SSD를 갖추고 있다. 개인용컴퓨터보다 몇백 배 많은 디램을 설치해 사용하는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란 것도 있다. 이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기능을 디램에 모두 올려놓고 작업하는 것이다. 필요한 재료 전체를 조리대에 올려놓고 요리하는 격이어서, 하드디스크나 SSD에 의존하는 데이터베이스보다 월등히 빠르다. 인텔이 주요 공략 대상으로 노리는 분야다. 실제 중국의 텐센트와 알리바바 같은 인터넷 기업, 델EMC나 레노버 같은 컴퓨터 관련 기업이 이 제품에 관심을 보였다고 인텔이 밝혔다. 휼렛패커드는 2018년 SSD 구입량의 5~10%를 3D크로스포인트로 대체할 계획이라는 말도 나온다. 3D크로스포인트가 전문 분야에서 인기를 얻으면 고성능 SSD 제조업체들이 가장 먼저 타격받을 여지가 있다. 전세계 기업용 SSD 시장은 한국 삼성전자와 미국 인텔·마이크론 외에 전통적 하드디스크 업체인 시게이트와 웨스턴디지털, 일본 도시바 등이 이끌고 있다.
 
3D크로스포인트가 두 번째로 노리는 분야는 디램 반도체다. 인텔은 이번에 발표한 제품을 디램 보완용으로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도 발표했다. ‘인텔 메모리 드라이브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는 3D크로스포인트를 디램 캐시메모리(임시저장 메모리)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쓰면 속도는 디램만 쓸 때보다 느려지지만 데이터 처리 용량은 크게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3D크로스포인트로 디램을 완전히 대체하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인텔은 현재 성능을 50% 정도만 향상시키면 디램처럼 작동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에 확장카드 형태로 꽂아서 쓰는 이번 발표 제품과 달리 디램 소켓에 바로 연결하는 메모리 모듈(DIMM) 형태의 제품을 2018년에 내놓는다는 게 인텔의 계획이다. 도현우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3D크로스포인트 기술을 채용한 메모리 모듈이 나오면 디램 시장이 잠식당하는 흐름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3D크로스포인트가 디램을 대체하면 디램 업체들의 타격이 상당할 전망이다. 세계 디램 시장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지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될 만한 업체는 삼성전자다. 삼성은 디램과 SSD 두 분야에서 세계 1위다. 3D크로스포인트가 성공하면 두 분야 모두에서 타격 입을 수밖에 없고, 자칫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마이크론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의 대응에 주목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차세대 메모리 상용화 시도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전한다.
 
디램과 SSD를 동시에 노리는 3D크로스포인트는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반도체 관련 업계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게 이 점이다. 인텔과 마이크론의 기술 수준을 정확히 판단해야 다른 업체들의 대응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대표격인 디램은 1966년에 처음 등장했고, SSD에 쓰이는 낸드 메모리는 1989년에 나왔다. 이후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메모리 반도체가 상용화한 적은 없다. 2015년 7월 인텔과 마이크론이 26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상업용 메모리를 발표한 것이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은 그동안 학계에서 연구하는 단계에 머물렀다. 미국 휼렛패커드를 비롯한 몇몇 기업이 이 가운데 유망한 기술의 상용화를 연구했고 일부는 특수 용도로 판매되고 있지만, 전면적 상용화를 선언한 것은 인텔과 마이크론이 처음이다.
 
차세대 메모리는 흔히 ‘비휘발성 메모리’(NVRAM·전원이 끊기면 정보가 날아가는 디램과 달리 계속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라고 통칭된다. 이 가운데 많이 연구된 것이 ‘위상 변화 메모리’(PCM 또는 PRAM)다. 이 메모리는 열을 가하면 결정질 상태로 바뀌는 칼코게나이트 유리의 특성을 이용한다. 결정질 상태에선 전기저항이 낮고 그렇지 않으면 전기저항이 높은데, 이 각각의 상태를 1과 0으로 간주해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 기술은 미국 회사 ECD가 1999년 상업용 개발을 시작했고, 인텔과 마이크론은 이 회사와 직간접적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전자, 인텔, 마이크론, 에스티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도 관련 기술을 선보인 적 있다. 이 기술의 난점 중 하나는 안전성이다. 결정질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인텔과 마이크론이 이 기술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두 회사는 위상 변화 메모리보다 확장성이 뛰어난 새 기술을 썼다 고만 할 뿐, 자세한 기술 내용에는 침묵하고 있다.
 
   
▲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왼쪽)가 2017년 2월8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 내 반도체 공장에 7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인텔은 디램 같은 메모리 반도체를 대체할 다음 세대 반도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AP 연합뉴스
 
메모리 반도체 업계와 일전 예고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인텔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 기술을 갖췄다는 점이다. 반도체 웨이퍼(원반 형태의 반도체 원재료)는 인텔과 마이크론의 합작사인 ‘아이엠 플래시 테크놀로지’(IFT)가 미국 유타주에 세운 공장에서 생산하는데, 정식 제품 발표 단계까지 왔다는 것은 제조 공정상의 난점을 극복했다는 뜻이다. 남은 과제는 불량률을 낮추는 것이다. 불량률을 줄여야 값을 내릴 수 있다.
 
인텔이 정식 제품을 발표한 것과 달리 마이크론은 퀀트엑스(QuantX)라는 이름으로 2017년 말까지 제품을 내놓겠다고만 밝혔다. 마이크론은 대용량 메모리에 집중해 인텔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다음 세대 반도체를 2017년 중에 개발할 거라고 밝힌 바 있다. 2단계부터 독자 노선을 가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아직은 단순 추측에 불과하다.
 
인텔과 마이크론이 결국 차세대 반도체를 놓고 경쟁하리라는 것만큼은 거의 분명하다. 두 회사가 원천 기술을 공유하지만 제품 개발과 판매는 따로 진행하는 데다 두 회사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지점은 컴퓨터 마이크로프로세서(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인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에 본격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인텔이 결국 마이크로프로세서와 3D크로스포인트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업계 전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인텔의 야심작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많은 사용자가 3D크로스포인트 제품을 검증할 2017년 하반기 이후 서서히 확인될 것이다.
 
참고 자료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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