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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정책이 대통령 만든다
[Finance] 대선과 고용 정책
[85호] 2017년 05월 01일 (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일자리 확대 정책은 선거 공약의 단골 소재가 됐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와 영국 유럽연합 탈퇴도 결국 유권자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기대가 승패를 갈랐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자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수긍하는 최대 현안이자 과제다. 일자리 정책이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이유다. 민간기업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든,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대하든,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국가의 성장을 담보하는 길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장미 대선’이 왔다. 이 땅의 민초들이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만들어낸 역사다. 그렇게 봄이 시작되고 있다. 과거로 퇴행하는 세계에서 한국은 일단 희망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린 이 소중한 기회를 헛되이 할 수 없다. 지켜내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의 성찬에 속아서는 안 된다. 외려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책무가 우리에겐 있다. 그것이 합리적 이성을 가진 투표권자가 해야 할 일이다.
 
선거의 본질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여도 사실 투표권자의 ‘이익’에 누가 부합할지 가리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다. 이익이란 결국 대부분의 경우 경제적 욕망으로 정의된다. 선거의 본질은 ‘먹고사는 문제’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혹자는 옳고 그름, 선악 판단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하나, 가치판단이 선거의 대세를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늘날 치러지는 대부분의 선거는 ‘누가 더 나를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좋은 선거란 어쩌면 각자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충실한 한 표를 던질 때 완성될 수 있다.
 
2016년 세계의 흐름을 가른 중요한 선거가 몇 개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는 투표와 미국의 대통령선거다. 결과는 의외였다. 명성이 높은 여론조사 전문기관들도, 신뢰성으로 무장한 언론도 결과 예측에 실패했다. 그 이유를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매체와 전문기관들은 대중의 욕구를 파악하는 데 무심했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대중의 생각과 그 어려움에서 파생하는 그들의 분노를 읽는 데 무관심했다. 실패는 당연했다.
 
   
▲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와 미국 대통령선거는 일자리를 잃은 유권자들의 분노가 승패를 좌우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2016년 6월 런던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통과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REUTERS
 
일자리 잃은 사람들의 분노
브렉시트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대중의 박탈감을 자양분으로 이루어졌다. 먹고사는 것의 토대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대중은 분노했다. 소득 불평등 심화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이른바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계층, 즉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처한 노동자 집단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 이들은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린다. 그 결과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안정성’이란 보호막을 잃고 내팽개쳐졌다. 이들이 이례적인 선거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 정치경제학자 니컬러스 에버스탯의 <일 없는 남성: 미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란 책이 있다. 책은 미국이 처한 노동시장, 나아가 일자리 위기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이 책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용시장은 적어도 경제학적으론 ‘완전고용’에 가까운 그야말로 봄날이다.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이다.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진실은 뭘까? 참혹한 상황이다. 미국 남성 핵심생산인구(25~54살) 중 무려 1천만 명이 일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지도 않는다. 그래서 실업률 통계에서도 빠진다. ‘완전고용’은 허구의 언어다.
 
이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남성의 민간 노동시장 참여율은 6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호황기냐 불황기냐에 상관없이, 인플레이션이냐 디플레이션이냐와 무관하게, 공화당 집권기냐 민주당 집권기냐에 관계없이 그래왔다. 눈에 띄는 점은 이 현상이 2009년 이후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년 백인 남성들의 ‘절망 사망’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 중 미국만의 독특한 추세라는 게 놀랍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7년 3월25일치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경제적 충격이 미국엔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란 제목으로 미국과 다른 선진국을 비교했다.
 
“학위가 없는 미국 노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재정적 고통을 받아왔다. 최근엔 그들의 근심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게 발견됐다. 미국 중년 백인 남성의 사망률은 1998년까지 20년 동안 매년 약 2%씩 하락했다. 그러나 1999〜2013년 사망률은 다시 증가했다. 놀라운 것은 유럽에선 전체 중년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연 2% 정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2013년 미국 중년 백인 남성 사망률은 스웨덴의 2배에 달했다. 자살, 약물남용, 알코올중독 등이 원인이었다.”
 
에버스탯은 그 원인을 ‘일자리’로 적시했다. 자유무역과 기술 진보는 저숙련, 특히 제조업 분야 노동자들의 기회를 앗아갔다. 사회 변화 또한 원인 중 하나다. 경제적 삶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저숙련 백인 남성들은 결혼보다 불안정한 동거를 하는 경향이 깊어졌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가정과 커뮤니티, 전통적 생활 구조를 포기했다. 그리고 일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지 않게 되었다. 홀가분함은 얻었다. 하나, 어려움에 빠졌을 때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절망도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됐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에버스탯의 책을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소개하며 냉정한 예측을 했다. “기술로 인한 일자리 파괴는 단순한 미래의 우려가 아니다. 그것은 두 세대 동안 우리와 함께해왔다. 현재 추세라면 2050년쯤엔 25~54살 미국 남성 중 25%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도 상당히 과소평가됐다고 본다. 기술은 일자리를 파괴할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지속돼온 교육 효과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무노동이 기혼 남성보다 미혼 남성에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결혼율 감소는 노동력 퇴출을 높일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인구가 증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생산 연령 남성의 3분의 1이 노동인구에서 제외된다는 서머스의 말이 옳다면 미국은 노동인구 증가로 발생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술의 진보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노동인구가 줄어도 말이다.
 
문제는 이 성장의 과실이 자본가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놓는다면 일자리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핵심 생산가능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정치인들은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즉 20세기 후반에 인류가 향유했던 생산성과 노동인구 증가라는 경제적 이상향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 그렇게 대중을 현혹한다. 교육제도를 바꾸고 기업을 성장시키고 국외로 나간 기업을 자국에 다시 불러오고, 심지어 보호무역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 일자리는 충분할 거라 강조한다.
 
   
▲ 일자리 문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수긍하는 최대 과제인 만큼 고용 정책이 이번 대선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2017년 3월 서울 중구 서울고용센터 취업지원과에서 시민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본가에게 집중되는 성장의 과실
하지만 과거의 성과가 미래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인구의 추세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미국 남성의 일자리 붕괴는 국가의 위기가 될 것이다. 낮은 삶의 질, 경제적 불균형 가속화는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다. 남성의 일자리 이탈로 인한 곤경은 단순히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위기, 도덕적 위기이기도 하다. 성인 남성의 가족 부양 기능이 약화되면서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일자리에서 이탈한 남성은 전통적인 부양자에서 피부양자로 전락하고 있다. 무기력하게 부인, 여자친구, 부모, 혹은 정부의 복지에 기대어 살고 있다. 이것이 오늘 미국의 현실이다.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최근 통계청은 2025년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2%를 차지할 거라 발표했다.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빈곤에 허덕일 것이다. 현재도 혼자 사는 35~64살 중·장년층의 10%는 주거 취약 가구 빈곤층으로 조사됐다. 결혼율, 출산율 또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상위층 10%가 전체 부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을 너무 닮아가고 있다.
 
한국이 무엇으로 성장하겠는가. 노동 인구는 점차 줄고 참여율 또한 하락세다. 고용률이 조금 올랐다고는 하지만 서비스업이 주도하고 있다. 안정적 일자리를 찾지 못했거나 잃은 사람들이 절망의 자영업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기술 진보로 인한 생산성 증가의 과실은 소수 자본가의 몫이 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이 성장하면 자연스레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 강조한다. 아니다. 일자리가 늘지 않아도 성장이 가능한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오늘을 이끌 리더는 일자리를 책임져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에 맡겨 두면 자연스레 해결될 거란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든 민간기업에 채찍을 들든 말이다. 그것이 국가의 성장을 담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개인의 절망을 막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봄날의 선거다. 투표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누가 일자리를 만들어낼지, 누가 우리 배를 불려주고 등을 따뜻하게 해줄지 밝은 눈으로 선택할 일이다. 각자가 배불러야 한국의 미래도 있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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