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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선수, 남자와 겨루면 유독 약해
[Analysis] 남녀 작업 성과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84호] 2017년 04월 01일 (토) 앨리슨 부스 등 economyinsight@hani.co.kr
일본 경정 기록 분석... 과학·공학 분야에서 남녀 격차 해소에 참고할 만
 
경쟁이나 위기에 대응하는 태도 차이가 남녀 임금 등 노동 성과의 격차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앨리슨 부스와 야마무라 에이지 교수의 글은 일본의 경정 대회 결과를 분석한 것인데, 여자 선수는 여자 선수끼리 경쟁할 때보다 남자 선수와 할 때 더 기록이 나쁜 경향이 있었다. 반면 남자 선수는 여자 선수와 경기할 때 더 빨랐다. 이 결과는 남녀 혼성으로 경기할 때 남녀 모두 사회적 성별(젠더) 정체성을 의식하는, 남녀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는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처럼 남자가 수적으로 많은 환경에서 남녀가 경쟁하는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_VoxEU.org
 
앨리슨 부스 Alison Booth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경제학 교수
야마무라 에이지 山村英司 일본 세이난가쿠인대학 경제학 교수
 
경제 발전 단계와 무관하게 대부분의 경제는 임금 등 노동 성과에서 상당한 남녀 격차를 보여준다. 이 격차가 경쟁이나 위기에 대응하는 태도에서 남녀가 다르기 때문인지를 확인하려는 연구가 늘고 있다. 남녀의 경제적 선호 차이가 타고난 것인지, 남녀가 처한 환경에 따른 차이인지를 놓고 경제학자들은 아직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남녀 차이가 타고난 게 아니라면 노동 성과 차이를 줄이는 데 정책이 기여할 수도 있다.
 
남녀의 선택이 경쟁 상대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한 몇몇 실험적 연구가 있다(2003년 유리 그니지 등의 연구, 2004년 그니지와 알도 루스티키니의 연구, 2011년 무리엘 니데를레와 리세 베스터룬의 연구 등). 2003년 그니지의 연구에선 경쟁 상대의 성별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것이 확인됐다. 이런 차이가 타고났는지 길러졌는지를 확인하는 후속 연구도 있었다. 연구 결과는 교육을 통해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2009년 그니지 등의 연구, 2012년 앨리슨 부스와 패트릭 놀런의 연구).
 
여성은 왜 남성과 경쟁할 때 성과가 저조한지 조사하기 위해,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활동 결과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일본에서 성행하는 경정 대회 자료다. 경정, 곧 돈이 걸린 보트 경주는 기본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고 승리하면 큰돈이 들어온다. 함께 시합하는 선수들을 무작위로 결정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특정 성별의 선수들끼리 겨루는 조합과 남녀가 섞여서 겨루는 조합이 만들어진다. 시합 당일 선수들이 사용하는 배와 엔진도 무작위로 배정된다. 남녀 선수들의 경쟁 조건도 차이가 없다.
 
   
▲ 남녀 격차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경정 대회를 분석한 결과, 여자 선수들은 여자끼리 겨룰 때보다 남자들과 섞여 경기할 때 기록이 나빴다. 일본 아마가사키 경정장에서 선수들이 코너를 돌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무작위로 남녀가 겨루는 일본 경정
일본에는 전국에 24개 경정 경기장이 있고, 각 경기장에선 일주일에 나흘씩 경기가 열린다. 선수들은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경기에 참가한다. 각 경기는 12개 조로 나눠 진행되고 한 조에 6명이 출전한다. 경정 경기장은 대형 인공 연못 같은 곳이며 600m 원형 코스가 있다. 선수들은 이 코스를 세바퀴 도는 1800m 경기를 벌여 승부를 가른다.
 
전체 경정 선수 가운데 여성은 약 13%다. 경기 규칙이 철저한데 이를 어기면 실격된다. 승리하면 보상이 아주 크고, 보상금은 관람자들이 내기하는 돈에서 나온다. 연평균 수입은 하위권 선수가 500만엔(약5천만원), 상위권 선수가 3300만엔(약 3억3천만원) 정도다.
 
경기 과정을 심판들이 꼼꼼히 감시하고 규칙을 어긴 선수에게는 엄한 처벌이 내려진다. 규칙을 어긴 선수는 경기 참여 기회를 잃음에 따라 소득이 주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경기에 이기려면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 돈이 강력한 동기 유발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규칙을 지키게 만드는 동기와 상충하는 요인이 있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레인을 바꾸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7개 경정장에서 벌어진 경기 18개월치에 대한 상세 자료를 분석했다. 남녀 선수가 섞여 경기할 때와 같은 성별의 선수들끼리 경기할 때 결과가 어떻게 나왔고, 선수들이 택한 경기 전략이 어떻게 다른지 따졌다. 분석 자료는 각각의 선수가 참가한 전체 경기의 기록과 작전 정보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여자 선수 기록 1만5천건 이상, 남자 선수 기록 12만7천건 이상이라는 방대한 기록을 검토할 수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학자들이 분석한 그 어떤 자료보다 많다. 남자 선수가 월등하게 많기 때문에, 남녀가 섞여서 벌이는 경기 대부분은 남자 다수와 여자 소수로 구성된다(이는 과학·기술·공학·수학 연구 현장에서 여성이 처한 환경과 비슷하다).
 
   
▲ 일본 경정 선수들이 ‘출발 구역’을 지나고 있다. 경정은 규정과 벌칙이 엄격해서 남녀의 위험 회피 성향 차이 등을 연구하기에 좋다. 위키피디아 제공
 
3가지 가설 검증 시도
우리는 분석에 앞서 3개의 가설을 세웠다. 가설1은 “여자 선수는 여자끼리 경기할 때 더 빠르게 질주하고, 남자는 여자와 섞여 경기할 때 더 빠르게 질주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 밑에 깔린 것은 뭘까?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사회의 행동 규범은, 개인이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할 때 정체성(자아의식) 상실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여성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덜 공격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면, 여자 선수들은 이런 행동 규범을 남자와 섞여서 경기할 때 더 충실히 따르게 된다. 남자 선수와 섞여 경기하는 상황이 여자 선수에게 자신의 성별 정체성 인식을 더 강하게 일깨우기 때문이다.
 
가설2는 “여자 선수가 남자보다 덜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이는 여자끼리보다는 남자와 섞여 경기할 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한 건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위험 회피 행동에서 남녀 차이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걸 확인한 연구가 있다. 여학교 학생들에게 노름을 하게 한 결과, 그들은 남학교 또는 남녀공학의 남학생들과 비슷한 행동을 했다. 여학교 학생들은 남녀공학 여학생들과 꽤 다른 행태를 보였다(부스와 놀런의 2012년 논문 ‘위험한 행동에서 성별 차이’).
 
경정은 보트를 몰아가는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라 좋은 위치를 차지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경기에 유리한 안쪽 레인으로 바꾸는 게 좋지만, 레인 변경에는 대가가 따른다. 엄격한 규칙을 위반해 실격할 위험이 크다. 남자들이 더 자신감에 넘치고 위험을 덜 회피한다면 공격적 전략을 더 자주 구사할 것이다. 경정에서 공격적 전략에 해당하는 것이 레인 변경이다.
 
경정 규칙 때문에 공격적 성향의 선수들은 규칙 위반 판정을 받아 실격할 확률이 높다. 가설2가 맞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간 가설을 생각할 수 있다. 가설3은 “남녀가 섞여서 치르는 경기에선 여자 선수가 규칙 위반으로 실격할 여지가 덜하다”는 것이다. 경정 출발은 레인 변경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플라잉 스타트 방식’이다. (선수들은 배를 정박한 상태에서 이동 신호가 나면 코스를 한 바퀴 돌면서 레인을 고른다. 한 바퀴를 돈 뒤 모두 각자의 레인에 있어야 한다. 이 상태에서 전속력으로 출발 구역을 향한 뒤 출발 구역을 1초 안에 벗어나야 한다. 시계가 0을 가리켰을 때 뱃머리가 출발 구역 앞에 있어도 실격이고, 뱃머리가 출발 구역 끝에 채 도달하지 못해도 실격이다. 아래 그림 참조 -편집자)
 
   
 
여자 선수, 남자와 경기하면 약해져
먼저 남자 선수가 다수인 경주에서 남녀 선수의 성적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여자 선수의 경기 기록이 여자들끼리 겨뤘을 때보다 나빴다. 반면 남자 선수의 기록은 남자들끼리 겨뤘을 때보다 좋았다. 경기 중 위치까지 종속변수로 고려해도 결과는 같았다. 가설1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남녀가 섞여서 대결할 때는 남자 선수들이 공격적 전략, 곧 레인을 바꾸는 전략을 더 많이 쓴 것도 확인했다. 레인을 바꾸다가 규칙 위반으로 실격할 위험을 덜 회피한 것이다. 반면 여자 선수들은 공격적 전략을 덜 썼다. 이는 가설2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규칙을 어겨 실격하는 비율은 남녀 차이가 없었다. 이는 가설3을 뒷받침하지 않는 결과다.
 
우리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위기 회피와 자신감에서 남녀 차이가, 경쟁이 치열하고 규칙을 어기면 벌칙을 받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대응 방식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성별 정체성도 작용할 것이다.
 
첫번째 결과가 특히 흥미롭다. 여자 경정 선수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종목을 선택했고 경쟁에 능숙한 사람들임에도, 남자들 틈에 섞여 겨룰 때보다 여자들끼리 경기할 때 기록이 더 좋았다. 다른 결과들이 흥미를 끄는 점은, 첫 번째 결과가 작동하는 기제를 조사하는 데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는 분석 결과를 상세히 논한 논문에서 남자 선수들이 공격적이지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실격 위험과 상대 선수의 상태를 고려해 경솔하지 않게 경기하는 점을 지적했다.
 
남녀가 섞여 겨루는 경정에서 남녀 비율은 심하게 불균형하다. 제비뽑기로 남자들 틈에 배정된 여자 선수는 보통 남녀 5 대 1 상황에서 경기한다. 4 대 2의 상황도 드물다. 이런 남녀 불균형 상황이 남녀 모두에게 성별 정체성을 상기시킨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또 성별 정체성 인식이 동성 간 경기와 혼성 경기에서 나타난 성별 행동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라는 성별 정체성이 남자 선수들에게 여자에게 지면 불명예스럽다고 느끼게 함에 따라 이를 피하려 더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다른 행동을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중 하나는 소수자란 사실이 여성의 작업 성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다. 이에 대한 후속 연구를 기대한다.
 
번역 신기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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