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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와 문화계 지원금
[Culture & Biz] 정부의 문화계 지원은 왜 필요할까
[83호] 2017년 03월 01일 (수)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전모가 하나씩 드러났다. 문화예술인을 상대로 정권과 코드가 맞으면 국가 지원금을 몰아주고, 비딱하면 삭감하거나 배제하는 식으로 블랙리스트가 활용됐다. 지원금을 무기로 문화예술인의 창작 활동에 국가가 개입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문화예술인들에게 돈을 지원하는가. 아니 정부가 공공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문화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가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른 것이다. 공공재적 특성을 지닌 문화산업은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커다란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한류’가 대표적이다. ‘푼돈’이더라도 정부의 지원금이 공정하게 지급돼야 하는 이유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소문으로만 돌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설마 그런 게 진짜 있을까 싶었는데, 작성자와 관련자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구속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하나의 리스트로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을 할 때엔 그 쓰임새가 분명 있었을 터다. 블랙리스트의 용도는 ‘문화사업 관련 국가 지원금을 중단하고 영화나 방송 출연에 제한을 두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으로 하여금 정부와 견해를 달리하는 문화예술인 및 단체에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터다. 하지만 그보다도 ‘도대체 정부에서 지원하는 돈이 얼마나 되기에 이런 걸 만들까’하는 의혹을 품었을 사람들도 꽤 있지 않았을까. 여기서 더 나아가 ‘문화예술인들한테 왜 돈을 지원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먼저 지원 규모를 살펴보면 2016년 경영공시 기준으로 문화예술진흥기금 사업비가 2200억원으로 가장 크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확하게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사업과 일반 사업을 갈라내는 것은 어렵다. 문화예술인의 창작이나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뿐 아니라, 해외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지원하는 사업, 번역을 지원하는 사업, 티켓 구매를 지원하는 사업, 문화시설이나 행사를 지원하는 사업들도 모두 섞여 있기 때문이다. 예술창작 지원사업으로 구분된 예산만 보면 대략 270억원인데, 이외에도 예술인들이 몸담은 사업들이 조금씩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회원들이 2017년 2월9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대회의실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집단소송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예술인 지원금 연 500억원 규모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콘텐츠 산업 육성비는 700억원 규모다. 그런데 여기에서 영화 투자 펀드 출자금, 영화산업 관련 일반사업비 등을 제외하고 영화제작 지원비만 가르면 160억원 정도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사업비는 대략 325억원인데, 대부분 우수 도서를 선정해 책을 구입하거나 출판 지원을 해주는 사업들이다. 출판사에 1천만원씩 지원하는 출판제작 활성화 사업비는 총 15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수 도서로 선정해 책을 사서 보급하는 예산이 가장 커서 170억원 내외인데, 책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이 가운데 문화예술인 비중이 얼마나 포함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폭넓게 잡아도 문화예술인에게 지원할 수 있는 지원금 규모는 연간 500억원(270억원+160억원+15억원+α) 내외일 것으로 보인다. 어떤 대기업이 승마 선수 한 명을 위해 선뜻 쾌척한 4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이 돈들이 사업별로 지원되는 단위를 보면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 수준이 대부분이다. 하나의 사업에 천만원 단위 넘게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렵다. 더 많은 창작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대학교수들이 수주해서 진행하는 각종 연구 용역 과제비들과 비교해도 지원 금액이 낮은 편이다. 
 
그런 ‘푼돈’이라도 왜 문화예술인에게 지원하는가, 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사람마다 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가치는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문화예술인 지원금과 관련해 ‘나는 정말 이해할 수도 없는 이상한 시를 쓰는 사람이 내가 낸 세금으로 얼마간의 지원금을 받고 있더라. 난 그 돈이 정말 아깝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피력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충분히 이해는 간다. 
 
정부가 문화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문화계에 공공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는 문화경제학이 태동하면서부터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사실 간단치가 않다. 문화경제학자 데이비드 트로스비는 이에 대해 세 가지 문제가 발생 가능하다고 보았다. 첫째로 사회가 문화나 예술에 무관심할 경우이다. 이때에는 정부의 문화계에 대한 보조금이나 지원금은 합리적인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그 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데 왜 불필요한 돈을 지원하느냐는 것이다. 
 
문화는 ‘공공재’ 시장 실패 보완 필요 
둘째로 문화계 지원을 사회가 동의하더라도 정부의 선정 기준과 국민들의 선호 문제는 또 충돌할 수 있다. 내가 만났던 분 역시 이런 범주에 해당한다. ‘문화계를 지원할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나 사람에게 주는 건 싫다’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조금이나 지원금이 특정 개인이나 기업체의 사적 이익 취득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다. 최근 국정 농단 사건에서 나타난 일련의 모습들은 이런 가능성이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문화경제학의 많은 문헌들은 숱한 논란을 거쳐 정부가 문화계를 지원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에 따른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문화산업은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외부경제를 낳을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공공재’적 특성을 지닌다는 점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한류’가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이 ‘한류’라는 가치는 직접 생산한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다. <모나리자>라는 그림 덕에 수많은 관광객에게 장사를 할 수 있는 프랑스 국민들 역시 문화라는 ‘공공재’ 덕을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긍정적인 외부경제를 발생시키지만 문화상품은 시장에서 제대로 거래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상품을 제대로 소비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안목, 경제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높은 수준의 ‘정보’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보를 다 갖기 어려워 시장의 기능이 실패하는 영역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지원금으로 돌아오면, 문화예술인 개인별로 지원되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종사자들의 형편이 넉넉해 지원금을 받을 필요성이 크지 않거나, 지원 대상이 너무 많아서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지원하기 위해 금액을 쪼갰을 가능성이다. 대략 심증은 있지만, 확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 소설가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 작가에게 최근의 블랙리스트와 관련, 전업 작가들이 느끼는 지원금에 대한 생각과 수입 수준 등을 확인해봤다. 
 
최근 모리 히로시라는 일본 소설가가 쓴 <작가의 수지>에 따르면 그는 약 20년간 소설 90편을 포함해 책 278권을 내서 1400만 부를 팔아 수입 15억엔(약 150억원)을 거뒀다고 하더라. 한 해 평균 8천만엔 정도 번 셈이다. 400자 원고지 1장당 4천~6천엔, 인세는 책값의 8~14%라고 하던데 한국 작가도 비슷한가? 
 
택도 없는 소리다. 한국의 출판시장은 일본과 견줄 수 없다. 일본은 작은 책이라도 무조건 사보지만 우리는 책을 사보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글을 좀 쓰는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계로 많이 빠져서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인세는 책값의 10% 수준이지만 1만5천원짜리 책 3천 권을 팔아야 450만원이다. 이걸 매해 내는 소설가도 거의 없다. 1만 권을 팔 수 있는 소설가는 열 명도 되지 않는다. 소설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 인천공항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2016년 7월 공항 출국장의 ‘한류 스타 디지털 체험존’을 찾아 배우 송중기 모형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류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정부의 문화산업 지원은 커다란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연합뉴스
 
그럼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나? 모리 히로시도 책 외에 다양한 기고료, 강연료 등을 밝히던데. 
웬만한 소설가라면 대학에서 강의를 많이 한다. 한 학기에 강의 3개 정도 하면 최저생계비 비슷해진다. 그래서 생계를 짊어진 남자 작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전임 자리를 잡으려 노력한다. 사보에 기고도 하는데 원고당 20만원 정도라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나마 김영란법으로 사보도 많이 줄었다. 그래서 많은 소설가들이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교양책을 낸다. 책 판매 부수도 조금 높고, 문화 강좌나 학부모 강좌와 같은 소소한 강연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데에서 강연당 20만원 안팎을 받는다. 수백만원을 받는 전문 강사들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물론 유명 작가들은 예외다.
 
그렇다면 각종 창작지원금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나? 
워낙 돈이 귀한 동네라 지원금이 꽤 요긴하다. 단 몇 달이라도 다른 생각 없이 책만 쓸 수 있는 여유를 주니까. 아르바이트로 허덕이다 장학금 한 번 받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지원금도 지난 정권 이후 많이 줄었다. 
   
역시 심증이 맞았다. 사정이 이런지라 더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나눠주기 위해 1인당 지원금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 맡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분야가 바로 문화산업인 듯하다. 기반이 사라지면 그때는 아무리 지원해도 싹이 살아나기 어렵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 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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