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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층 아우르기, 반기문의 과제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반기문은 제3지대에서 날개를 펼 수 있을까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윤희웅 waymaker@opinionlive.co.kr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본격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반 전 총장의 첫 번째 과제는 ‘보수 꼬리표’를 떼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보수의 기반이 크게 흔들리면서 세를 불리려면 중간층을 아우르는 전략이 불가피하다. 이른바 ‘제3지대 세력화’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정치 현실을 고려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잠재적 대선 주자들의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힌 탓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현실정치의 난관을 뚫을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

 
   
▲ 대선 경쟁에 본격 뛰어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흔들리는 보수층 대신 중간층을 잡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반 전 총장(가운데)이 2017년 1월16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유엔군 전몰용사 묘역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인자를 용납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보수 진영의 대중성 있는 인물의 부재를 불러왔다. 지금 거론되는 대선 주자들을 보면 야권 인사에 비해 여권 인사 수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이후 줄곧 보수의 유일한 후보였고, 2012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박 후보의 위상은 견고했기 때문에 다른 인물이 부상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대중이 호응할 만한 후계 정치인을 용인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정치적 힘이 세지려 하면 바로 ‘정치적 응징’을 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에게도 그랬고,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도 ‘배신’의 딱지를 붙여 힘을 뺐다.
 
과거 전임 대통령들이 끊임없이 후계자를 만들려고 한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후계자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정치적 힘을 얻는 여당 정치인은 필연적으로 현재 권력인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면서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려는 박 대통령으로선 내부의 도전 요소는 일단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존재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 전 총장을 진즉부터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보수의 대중성 있는 인물이 없는 게 별로 걱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들어와 보수의 후보가 되면 인물 부재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은 국내에 있지도 않고 당장 정치권에도 없으니 현직 대통령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에게는 최상의 카드였을 것이다.
 
바로 그 반 전 총장이 귀국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보수의 카드로 인식돼온 반 전 총장의 제1과제는 ‘보수 꼬리표’를 떼는 것이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본인을 표현하며 단지 보수 정체성만 지니고 있지 않음을 강변한다. ‘촛불집회에도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최순실 국정 농단을 의식한 듯 ‘지도자의 실패가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고도 했다.
 
애초의 예상은 귀국하면 보수정당에 입당하거나 연대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거리를 두고 있다. 오히려 야권 인사들을 적극 만나려고 한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과 연대 논의도 흘러나온다. 일련의 발언과 행보는 ‘나를 보수의 울타리에 가두지 말라’는 것이다. 보수 후보 타이틀로는 한계가 크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보수 기반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순실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었다. 2016년 1월 둘쨋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응답자 1005명 중 보수라고 답한 사람은 328명, 중도는 323명, 진보는 229명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이 있은 뒤 2017년 1월 둘쨋주 조사에선 응답자 1007명 중 보수 285명, 중도 276명, 진보 355명이었다. 비율로 보면 보수층은 33%에서 28%로 줄어들었다. 반대로 스스로를 진보라고 밝힌 사람은 크게 늘었다.
 
보수 성향 정당의 지지율도 새누리당 12%, 바른정당 9%인데 합하면 20%를 겨우 넘긴다. 한때 40%를 안정적으로 넘기는 황금기를 구가했지만 지금은 반토막이 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보수 성향 후보들의 지지율도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기문 20%, 황교안 5%, 유승민 3%로 이들을 합해도 30%를 넘지 못한다(한국갤럽, 2017년 1월 둘쨋주).
 
보수층 자체가 줄었고 결집도도 이완됐다. 시기가 지나면 일정 부분 복원되겠지만 ‘보수 정치세력이 평가받는 국면’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수 기반이라는 ‘비빌 언덕’이 지금 부실한 상황이니, 반 전 총장으로서는 비빌 언덕을 중도까지 넓히려는 전략 수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행보에 발맞춰 이른바 ‘제3지대’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당과 제1야당을 제외한 세력들을 규합해 단일 후보를 내려는 시도다. 개헌과 연합정부 등을 매개로 느슨하지만 연계하자는 것이다. 독주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를 견제하는 성격도 있다. 현 구도가 고착화하면 후발 주자들과 군소 주자들은 대권 기회 자체가 소멸될 수 있는데, 제3지대 세력화는 구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세력들이 호응하고 있다.
 
제3지대를 통한 세력화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첫째, 물리적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3월 초에는 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5월이 되기 전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대선을 준비해온 여러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짧다. 단지 공감대만으로 일이 순조롭게 풀릴 수는 없다.
 
둘째, 대권 주자들의 자기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녹록지 않다. 국민의당의 안철수 전 대표,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새판짜기에 몰두하는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도 대권 의지가 매우 강하다. 제3지대로 모여 지지율이 가장 높은 인물을 선뜻 지지하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2018년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한 정당은 존재감을 잃고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기 더욱 어려워진다.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도 초반부터 제3지대를 적극 추진할 수 없는 이유다.
 
셋째, 각 주자와 각 세력을 조율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가 없는 점도 문제다. 과거 야권 단일화의 경우에는 시민사회 원로 등 권위 있는 조정자가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 3지대에 관심 있는 세력들은 이질적이어서 이들 모두에게 공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정체를 찾기 어렵다. 논의만 무성하거나 부분적으로 제3지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반 전 총장의 섣부른 제3지대 행보는 애초 지지 기반인 보수층의 거부감을 살 여지도 있다. 야권 인사들과 연대하거나 이들과 연대를 위해 보수 정체성을 약화할 경우 강경 보수층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강경 보수층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새누리당이 일단 독자 후보를 낼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반 전 총장으로의 보수층 결집이 제약될 수 있다. 과거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중도화 전략에 반발해 보수 성향의 이회창 후보가 뒤늦게 나와 15% 득표한 사례도 있다.
 
보수 후보지만 중간층을 아우를 계획을 들고나온 반 전 총장은 과연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지 않고 새로운 루트를 개척할 수 있을까.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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