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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주인’ 자각, 정치를 바꾼다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사회 주류층 거부로 표출된 ‘촛불 민심’
[81호] 2017년 01월 01일 (일) 윤희웅 waymaker@opinionlive.co.kr
최순실 사태는 국정 농단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 기득권 내부의 속살이 생생하게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 허울의 권위가 대중에게 낱낱이 드러났다. 사회 기득권층은 국민을 존중하지 않으면 주권자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걸 인식하고 반성해야 한다. ‘촛불’은 대중이 주인이라는 인식을 굳건히 했다. 이를 거부하는 권위는 그 무엇이 되었든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표결 전날인 2016년 12월8일, 사회 각계각층에선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서울대 교수 791명의 시국선언문 발표도 있었다. 시국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국회가 탄핵안을 통과시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킨 뒤 정국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해 여러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지만 서울대 교수들의 규모가 가장 컸다. 11월26일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소속 서울대 교수 70여 명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일동’이라는 깃발을 들고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집결해 ‘전국교수연구자 비상시국회의’가 주최한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집회에 참여한 것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높은 위상과 무관하게 대중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회 상층 구조에 속한 이른바 엘리트 집단이 정의를 외치는 행위가 매우 이례적이었음에도 촛불 국면에선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그 배경에 최순실 국정 농단이 단지 특정인에게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곪아 있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 계층과 주류 집단, 이른바 내부자 세계 전체의 문제라는 대중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촛불 민심은 몇몇 인물들의 처벌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간 은밀히 자행돼온 낡은 국정 운영 방식과 사회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분노였기 때문에 이들의 시국선언도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부정 입학과 관련해 이화여대 교수들이 보인 청문회에서의 거짓말 퍼레이드는 교수도 믿을 게 못 된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그래도 교육 영역은 다른 분야보다 원칙적이고 투명하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무너져버렸다. ‘교수’에게서 으레 따라붙던 ‘권위’라는 단어를 분리해버렸다.
 
촛불 국면에서 대중은 ‘스스로 주인’이 되었다. 누구에게 이끌리지도 않았다. 어디에 종속되지도 않았다. 집회 참가자는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였다. 과거 집회에는 지도부가 있었고, 이들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팔로어가 동원되는 양상이었다. 집회에서 주류로 받아들여졌던 세력도 정작 이번 촛불집회에선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이들의 발언에 참가자들의 호응은 약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2016년 12월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도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 시민들은 촛불집회를 계기로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신념을 확고히 했다. 연합뉴스
 
대중의 ‘주류 거부’ 촉발한 대통령
이 현상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길거리 응원에서 나타났다. 주도 세력이 뚜렷할 경우 집회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주도 세력이 보이지 않을 때 집회는 질적·양적으로 수준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질적으로 보자면 주도 그룹이 없을 때 오히려 평화적이었고, 양적으로 보자면 더 규모가 확대됐다. 매 주말 보여준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와 비폭력적이고 질서 있는 모습 역시 주최 쪽은 존재하지만 참가자가 주류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류에 대한 대중의 거부 정서는 누구보다 대통령이 촉발했다. 우리 사회의 주류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은 대통령인데 이번 사태에서 주류로서의 대통령은 철저히 부서졌다.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신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즐긴 박 대통령에 대해 소통이 부재하다는 비판은 있었지만 가볍다는 지적은 없었다. 나름 ‘권위’를 인정해주는 기류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은 분노의 직접 대상이 되었다.
 
주류를 상징하는 또 다른 집단은 대기업과 재벌, 그리고 재벌 총수들이다. 하지만 촛불집회에서는 ‘재벌도 공범이다’ ‘재벌 총수도 구속하라’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재벌들은 청와대의 강요에 못 이겨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냈다. 특혜를 얻고자 또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자 어쩔 수 없이 돈을 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문회에 나온 총수들은 하나같이 대가를 바라고 낸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과거에도 재벌 총수들이 간혹 국회에 불려나왔지만 이렇게 허약하고 부실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았다. 한 전직 대통령은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만 권력을 넘겨받은 재벌 총수들은 그에 맞는 위엄과 기개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대중은 정치권보다 기업에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기업은 국민의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대기업이 보여준 낮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문회에서의 부실한 모습은 그간 막연히 갖고 있던 한국 대기업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대기업 총수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해당 기업들의 미래가 걱정되기도 할 정도였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주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흔들리게 되었다.
 
대중의 거부는 또 다른 주류인 국회를 향했다. 최순실 사태로 궁지에 몰린 여당에 비해 야당들은 매우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이해관계를 따지며 서로 엇갈린 행보를 보이자 대중은 가차 없이 비난했다. 탄핵소추안의 국회 의결 전엔 여의도 국회를 둘러싸고 ‘실력 행사’를 했다. 이는 다수의 여당 의원들이 탄핵소추안 찬성표로 기울어지게 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대중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 본인의 정치적 생명이 단절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이어지게 한 것이다. 단지 국회에 대한 요구를 넘어 대중이 직접 이들의 행동을 강제한 것이다.
 
일선 공무원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장관과 고위직들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대중도 고위 공무원이라고 하면 능력뿐 아니라 사명감에서도 남다를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몇몇은 아이들 소꿉장난의 역할놀이처럼 인선이 되었다. 위기 상황에 대통령을 만나지 못해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청문회에선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또 하나의 주류가 대중에게서 거부당하는 순간이었다.
 
검찰도 예외일 수 없다. 투철한 공명심을 바탕으로 국가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조직으로 이해하고 싶지만 조사를 맡은 검찰이 조사 대상 앞에서 겸손히 손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대중은 경악했고, 허위와 위선의 집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최순실 사태는 권력 농단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 기득권 내부의 속살이 생생하게 보인 사건이기도 하다. 내부자들의 은밀한 거래로 포장됐던 허울의 권위가 대중에게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사건은 국민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주권자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됨을 사회 기득권이 인지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국민을 철저히 외면하던 낡은 방식들과 결별하고 새 시대를 여는 전환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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