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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대통령의 전리품?
[국내이슈] 해체 위기 직면한 전국경제인연합회
[80호] 2016년 12월 01일 (목) 권순우 progres9@naver.com
권력의 사금고로 전락… 교도소 담장 위 걷는 전경련 회장직은 ‘폭탄 돌리기’
 
또 전경련이 사건의 조연으로 떠올랐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이란 권력을 조종해, 또는 공모해, 기업의 돈을 ‘시원하게’ 뜯어냈다. 역대 정권마다 비슷한 행태가 반복됐지만 그 질적 면에서 ‘역대급으로’ 후지다. 권력형 부패의 스토리는 항상 ‘돈줄’인 전경련이 있어야 완성된다. 후진적 정치 및 경제 구조가 빚은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지금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전경련은 똑같은 짓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제 전경련 해체는 선택 사항이 아닌 듯 보인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자경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역대급 기업인들이 함께하는 모임이 있었다. 막강한 그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전경련은 마치 마블코믹스(미국 만화책 출판사) 영웅들의 모임 ‘어벤저스’같이 느껴졌다.
 
2016년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기업의 모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해체 위기에 처했다. 어벤저스가 사실은 지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어벤저스 멤버들 돈을 뜯어서 악당들에게 바치고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뭐하는 집단일까.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자발적’으로 돈을 강탈당한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비선 실세가 기업들의 돈을 갈취해 사적 재단을 만들었는데, 그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 이승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라고 한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변명 한마디 못한다.
 
전경련이 법인세 인하, 산업용 전기료 인상 반대 등 기업의 이익만 대변하는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전경련은 기업 회원들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고, 재벌도 목소리를 낼 곳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경련이 회원사들의 돈을 갈취해 다른 곳에 상납하는 조직이라니.
 
한때 전경련 회장은 명예의 상징이었다. 비상근이라 월급은 물론 판공비도 없다. 오히려 회장이 되면 회비나 기부금을 더 많이 낸다. 재계 일반의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본인 기업의 사업 추진에는 제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경련 회장은 재계와 정치권의 관계를 조정하는 막중한 자리다. 재계의 총리, 재벌 중의 재벌, 대한민국 기업인의 대표다.
 
전경련은 1961년 설립된 경제재건촉진회(이후 한국경제인협회)를 기원으로 한다. 설립 목적은 “민간 경제인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설립된 순수 민간 종합경제단체로,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역대 전경련 회장은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자경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등 한국 기업 역사의 뼈대다. 전경련은 외자 도입 교섭단을 미국과 유럽 지역에 파견해 ‘민간 경제협력’의 장을 열었고 산업공단·종합무역상사 설립 등을 건의해 수출 주도형, 제조업 중심 경제에 기틀을 마련했다.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그들은 대한민국의 대외적 위상을 드높였다.
 
   
▲ 2016년 11월18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앞에서 전국사무금융노조 조합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전경련 해체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전경련은 스스로 존재 의미를 차버렸다. 연합뉴스
 
언제부터였을까?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의 상징인 전경련 회장직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전경련은 회장단 총회를 거쳐 임기 2년의 회장을 선출한다. 현재는 35대 허창수 GS 회장이 맡고 있다. 내년 2월이면 임기가 끝나는데 후임자가 없다. 허 회장은 2011년 조석래 효성 회장에게서 자리를 이어받은 뒤 세 차례나 연임했다. ‘식물 회장’이란 평가를 받는 허창수 회장이 장기 집권을 하는 이유는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같은 관변단체에 물주 역할이나 하고 회원사들의 돈을 갈취해 비선 실세에 상납하는 전경련 회장직을 누가 맡고 싶어 하겠는가. 자존심 문제도 있지만, 까딱 잘못했다가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주요 그룹 총수들은 다양한 이유로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했다. 2003년 손길승 SK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서 물러나자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회장에 올랐다. 강 회장이 특별히 원했다기보다 연장자라는 이유에서였다. 강신호 회장은 임기가 끝나기 전부터 연임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단은 승지원까지 찾아가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차기 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건희 회장은 끝내 회장직을 거절했고 강신호 회장은 연임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조석래 효성 회장은 비자금 사건과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허창수 GS 회장은 수차례 고사 끝에 2011년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내년 2월 임기의 허 회장은 정말 다시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경하게 밝혔는데, 후임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돌아보면 전경련은 시작부터 권력과 재벌의 뒷거래로 탄생한 조직이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은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자, 부정축재자를 처벌하기 위한 ‘부정축재처리법’을 공포했다. 부정축재자는 크게 공무원, 기업인, 학교재단으로 구분됐다. 이 중 기업 부정축재자로 이병철 삼성 회장 등 58명이 적발됐다.
 
군인들은 부정축재자들을 처벌하는 대신 권력에 굴종할 것을 요구했다. 표면적으로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을 요구했고, 뒤로는 정치자금을 상납하도록 했다. 풀려난 기업인들은 뒷거래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경제재건촉진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자들이 처벌받고 재산을 환수당하는 대신, 정권이 필요로 하는 자금과 용역을 제공하기로 약조한 결과물이 지금의 전경련이란 것이다.
 
 
전경련 회장은 ‘식물 회장’
 
1988년 5공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재단’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해재단은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순직자 자녀를 위해 만들어진 장학재단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장학재단의 역할은 얼굴마담이고 사실상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임기 후 돈줄이었다. 재단의 발기인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등이 포함돼 있었다.
 
청와대는 일해재단 모금에 기업들이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현대, 삼성그룹 등이 12억원을 부담하기로 했는데 그다음 규모인 국제그룹이 5억원을 냈다. 일해재단 초대 이사장인, 전두환의 대구공고 동기인 최순달은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에게 “아들은 미국 유학 가서 외제차 끌고 다니면서 나라를 위한 일에는 야박하다”며 면박을 줬다. 국제그룹은 이듬해 해체됐다.
 
5공 청문회에 선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은 일해재단에 대해 “강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며 있을 필요도 없다”며 “경제인들 스스로가 상호 협의 조정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주영 현대 회장은 작심한 듯 모금의 강제성을 폭로했다. 정주영 회장은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 그다음부터는 내기가 힘들어졌으나 안 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 2016년 6월2일 프랑스 국빈 방문 중 박근혜 대통령이 파리 르그랑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프랑스 비즈니스 포럼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바라보고 있다. 전경련은 권력의 사금고가 됐다. 연합뉴스
 
반복되는 정경유착의 역사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은 약 5천억원.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의미의 뇌물죄’가 적용돼 구속 기소됐다. 뇌물을 제공한 것은 또다시 그들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 8명이 포함된 기업인 35명은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전경련 회장단은 “음성적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전경련의 사과는 공허했다. 1997년 국세청 고위 관료가 이회창 대선 후보의 선거자금을 모금한 세풍 사건, 2002년 그 유명한 ‘차떼기’ 불법 대선 자금 사건에도 재벌들은 연루됐다. 최근에는 관변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도 돈을 대고 회원사들의 돈을 갈취해 비선 실세에게 갖다 바치는 데까지 이르렀다.
 
전경련 해체 목소리에는 진보, 보수가 없다. 보수적 성향의 국가미래연구원과 진보적 성향의 경제개혁연대는 전경련 해체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두 단체는 “회원사들에 오히려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발전에도 역행하는 전경련은 그 존립 근거를 잃었으므로 회원사들이 결단을 내려 전경련을 해산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단체는 아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가난했다. 공장도 기술도 인력도 없었고, 물건을 사줄 내수 시장도 없었다. 자본 집중을 통한 대기업 육성과 수출 중심의 산업정책이 한국 경제 기적의 원동력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부는 없는 자본을 집중해 산업정책을 펴야 했고, 기업은 그 자본을 받아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 투자를 단행해야 했다. 대기업의 모임 전경련은 그 연결고리로서 본연의 역할을 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국가주도형 산업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에 한국 경제는 너무 많이 성장했고, 산업들은 훨씬 더 고도화됐다. 전경련이 수행하던 긍정적 역할은 이미 수명을 다했고 부정적 역할만 남아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핵심 재벌 총수들은 전경련을 외면한 지 오래다. 창립 이후 최대 위기인 이 시점에 회장단 회의조차 열지 못하는 것이 전경련의 현실이다. 최근 <매일경제>가 전경련 회원사 40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경련에 가장 시급한 조처로 ‘전경련의 역할 재규정 및 조직 변화’를 92%가 꼽았다.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하고, 딱히 역할을 찾지 못하면 해체하는 게 그나마 전경련 역사에 누를 덜 끼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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