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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슈] 총수는 ‘감탄고토’, 정부는 ‘미봉책’
'해운발 쓰나미' 한진해운 침몰의 책임론
[79호] 2016년 11월 01일 (화) 권순우 progres9@naver.com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의 몰락은 총수 일가의 무능과 무책임이 얼마나 큰 사고로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회사가 멀쩡할 때는 자산을 제멋대로 나눠먹고는, 회사가 휘청댈 때는 ‘발뺌’과 ‘먹튀’의 처세술을 발휘했다. 특히 피해 회복을 위한 조 회장 일가의 불성실한 태도는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몬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이런 후진적 기업지배구조 못지않게 부실기업을 처리할 때마다 정부가 바람을 잡아 일부 채권 은행이 ‘독박’을 쓰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한국형 기업구조조정 관행도 비판을 사고 있다. 한진해운은 육상 직원을 절반만 남기고 나머지 직원을 정리해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먹이사슬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일반 직원들에게 우선 불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직원 1428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고, 주주 5만3695명이 1500억원의 손실을 입었으며, 회사채 투자자들도 1조2천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십수조원에 달하는 화물의 발이 묶였고 하청업체와 하역업체, 유류업체, 용선주, 은행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런 피해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다 나와서 전문성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막대한 피해를 입혀놓고 변명이 ‘가정주부라서 그랬다’라니. 믿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 재벌의 민낯이다.
 
‘가정주부’ 최은영 회장이 한진해운을 맡게 된 건 한진가의 며느리라는 유일한 이유 때문이었다. 2006년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별세하자 최 회장은 지분을 물려받아 얼떨결에 회장이 됐다. 모든 기업이 금융위기를 맞아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2009년, 최은영 회장은 2대 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추격을 벗어나기 위해 지주사 설립 등 경영권 방어에 몰두한다.
 
   
▲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2016년 9월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석에 앉아 있다. 최 회장은 ‘가정주부’ 발언으로 비판을 키웠다. 연합뉴스
결국 한진해운이 조양호 회장에게 넘어간 것은 2014년,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큰아버지의 미덕일까, 조양호 회장은 제수와 조카들을 빈손으로 내보내진 않았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사옥과 자회사 3곳을 받았다. 한진해운이 운영만 되면 돈이 나오는 평생 먹거리였다. 그렇게 한진해운의 알토란 같은 자산이 회사 밖으로 유출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시장 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재산을 나눠갖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조 회장은 2016년 9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수십조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외국 선사들의 저가 공세에 사기업으로서 경쟁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며 한진해운을 지원하지 않은 정부를 탓했다. 회사는 망가져도 조양호, 최은영 회장은 회사에서 수백억원을 받아갔다. 조씨 일가가 황폐하게 만든 기업을 왜 국민이 도와줘야 할까.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일 뿐이다.
  
한진해운 몰락의 서막
2014년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을 인수한 뒤 대한항공을 통해 수조원을 쏟아부었고 8분기 동안 흑자를 기록했다. 해운업 경기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와중에 한진해운은 건실해 보였다. 2015년 11월 해양수산부는 비공식적으로 한진해운에 현대상선을 인수해줄 것을 타진했다. 한진해운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거부했지만, 현대상선 정도는 떠안을 수 있을 만큼 건실해 보였다는 방증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3분기까지 글로벌 해운사 영업이익률 기준 5위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2016년 4·13 총선이 끝나고 기업구조조정이 본격 시작될 것으로 봤다. 기업이 퇴출되고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는 구조조정은 여론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어떻게든 총선 이후로 미룰 것이라는 경험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4·13 총선이 끝나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2015년 말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는데 지금 다시 상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개막을 선포했다.
 
2015년 3분기까지 2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밝힌 한진해운의 결산 장부는 처참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어렵다고 스스로 고백한 4분기 결산 이후에야 장부를 볼 수 있었는데 3분기까지 정리해야 할 채무를 대부분 결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강도 높은 자구 계획을 요구했지만 한진해운은 답이 없었다.
 
2016년 4월24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는 청와대에서 서별관회의를 열었고 한진해운의 자율협약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냈다. 한진해운의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때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진해운은 다음날인 4월25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포기 각서가 포함된 자율협약(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채권단과 유동성 지원 및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포괄적 협약을 맺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는 방안 -편집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업은행은 자율협약 신청서에 퇴짜를 놨다. 최소한의 노력도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최은영 회장은 자율협약 신청 며칠 전 한진해운 주식 96만 주를 팔아 손실을 회피했다. 국민적 분노가 한진해운을 감쌌다.
 
한진해운은 자구 노력보다 정부를 압박하는 방법을 택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산업은행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며 “자금 지원이 없을 경우 단기간 내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으며, 산업은행을 비롯한 모든 채권자가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협박을 한 것이다.
 
채권단은 2016년 5월 자율협약을 개시하며 용선료 인하와 회사채 채무 재조정을 조건으로 달았다. 대우조선, STX조선은 별다른 조건 없이 지원해주고 해운사에만 유독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 것은 한국형 기업구조조정 모형,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의 한계 탓이다. 한국형 구조조정의 특징은 은행이 손실을 떠안고 나머지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모든 채권자의 동의를 받는 대신 몇몇 은행만 동의하면 되니 신속하게 진행된다. 은행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이면에서 경제관료의 압력이 동원된다. 또 중소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는 손실을 입지 않기 때문에 연쇄 도산을 막을 수 있다. 기존 거래 관계도 유지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적 원리인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의 모체다.
 
고도성장기에는 경제관료들이 은행을 압박해 자금을 투입하고 경기가 회복되길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회생이 됐다. 하지만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기업의 자금조달 방식이 다양해지자 이 방식은 작동하지 않았다. 한진해운의 전체 채권 규모는 2016년 3월 말 기준으로 총 5조1천억원인데 금융권 여신은 7천억원에 불과했다. 은행이 신규 자금을 넣어봐야 한진해운 회생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채권자들 빚 갚아주는 데 쓰인다. 특히 상거래채권으로 분류되는 용선료(해운사가 배를 빌리며 선주에게 내는 이용대금 -편집자)는 2016년에만 9289억원을 지급해야 하고, 앞으로 5조5487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당장 외상값을 갚으려고 해도 6500억원이 필요하다. 그중 6천억원은 고스란히 해외로 나가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 ‘조건부 자율협약’이라는 벼랑 끝 전술이다. 용선료와 회사채의 재조정은 한진해운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스스로 해결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래서 은행이 용선주와 회사채 투자자에게 같이 빚을 줄여주지 않으면 같이 죽겠다는 선전포고가 ‘조건부 자율협약’이다. 같은 조건부 자율협약을 진행한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에 차질을 빚자 산업은행 정용석 부행장은 해외 선주에게 말했다. “다음 미팅은 법원에서 합시다.” 이 말은 법정관리로 가자는 뜻이다.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의 조건을 ‘거의’ 충족했다. 회사채 투자자들로부터 채무 재조정 동의를 얻었고 용선료 협상도 도장 찍기 직전까지 진행됐다. 최종적으로 한진해운의 발목을 잡은 것은 ‘외상값’이었다. 한진해운이 갚지 않은 외상값은 6500억원에 달했고, 2016년 예정된 액수만 최소 1조원이었다. 한진해운은 스스로 마련해야 할 외상값을 정부가 내주기만 바랐다. 한진해운의 최종 자구안은 2016년 8월25일 산업은행에 접수됐다. 최소 1조원이 필요하지만 4천억원만 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조양호 회장의 사재 출연도 사실상 없었다. 다음날 구조조정 총책임을 맡은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이 기자실을 방문해 한진해운이 제시한 자구안을 낱낱이 공개했다. 한진해운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 2016년 10월3일 경남 통영 욕지도 남쪽 40㎞ 지점 공해에서 한진해운 해상연합노조 집행부가 회사 법정관리로 운항을 중단한 5300TEU급 컨테이너선 파리호 선원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다에 표류한 11조원의 화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한진해운 선박은 하역비를 마련하지 못해 항만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다 위를 떠다녔다. 화물을 내리려면 그동안 밀린 하역비를 갚아줘야 했으나 돈이 없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간이 흐르고 화주들의 아우성은 점차 커졌다. 정치적 압력을 받은 정부는 전방위로 압력을 행사했고 조양호 회장과 최은영 회장, 대한항공, 산업은행이 1600억원을 토해냈다.
 
그럭저럭 물류 대란은 해소되는 듯 보이지만 이런 원칙 없는 구조조정은 특혜를 낳는다. 한진해운으로부터 빚을 받아야 할 채권자가 너무나 많다. 영세한 국내 중소 하청업체들도 있다. 그런데 물류 대란 아우성에 못 이겨 해외 항만 업체에만 빚을 갚아줬다. 속으로 웃은 것은 외상값을 받은 해외 항만업체와 화물을 내려 손실을 피하게 된 삼성전자 등 대형 화주, 월마트를 비롯한 미국 수입업자들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모두 피해를 보고 있음에도 그들은 물류 대란이라는 여론을 등에 업고 고통을 피해갔다. 항만에 들어선 한진해운의 선박은 화물을 내리자마자 용선료를 떼인 용선주, 유류대금을 떼인 정유업체 등에 의해 억류됐다.
 
한진해운 퇴출은 해외 해운사들에는 희소식이었다. 글로벌 해운 시장은 물동량, 일감을 둘러싼 의자 뺏기 싸움이다. 한진해운이 퇴출되자 글로벌 선사들은 너도나도 한진해운의 일감을 뺏기 위해 달려들었다. 금융 당국은 현대상선을 통해 한진해운의 자산을 인수해 일감 유출을 막으려 했지만, 의지만 있었을 뿐 제대로 된 준비는 없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한진해운 법정관리 영향 및 대책’ 자료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퇴출될 경우 물동량의 62.8%가 외국 선사에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해운 수입 손실 7조7천억원, 항만 부가가치 1152억원 등 총 8조원이 넘는 손실이 예상된다. 국부 유출이 눈에 보이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행동하는 주체는 없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재벌의 민낯과, 아직도 고도성장기의 꿈에 젖어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 드러났다. 능력과 상관없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재벌은 위기가 닥쳤을 때 너무나 무력했다. 경제관료들이 뒤에서 조종하고 은행 돈을 투입해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는 구조조정 방식은 고도성장이 멈추고 자금조달 방식이 다양해진 기업 환경에서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기업구조조정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도 갈 길이 멀다. 기업이 망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좀비 기업’을 연명시키려면 막대한 국민의 돈이 들어간다. 또 좀비 기업은 멀쩡한 기업과 출혈경쟁을 벌이며 산업생태계 자체를 파괴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지원하면 한다고, 지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구조조정 국면에 혼란만 가중하고 누군가에게는 특혜를 주는 결과를 만든다.
 
혹독한 기업구조조정에 가려 관심받지 못했지만, 한진해운 사태를 보면 좀더 속도를 내야 하는 부분은 미래 성장동력 육성이다. 철강, 조선, 해운, 석유화학 등 대한민국을 그동안 이끌어온 주력 산업들은 중국의 추격을 받으며 점차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 힘겹게 버티고는 있지만 과거와 같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갈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을 정리하는 동안 또 다른 쪽에선 그 빈 공간을 메울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2017년에는 한진해운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킬 대우조선해양의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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