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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경제] 민심 외면하다 대선 후보 외주화
황혼기에 접어든 한·미 보수정당의 닮은꼴
[79호] 2016년 11월 01일 (화) 윤희웅 waymaker@opinionlive.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정통 공화당원이 아니다. 트럼프는 그동안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수차례 당적을 옮겼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공화당의 승리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당장 주요 정책 이슈를 놓고도 트럼프는 공화당의 전통적 당론과 이견을 보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화당이 트럼프 같은 정치인을 대선 후보로 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인구학적으로 백인이 점차 소수그룹으로 축소됨에도 유연하게 변화하지 못하고 당이 대중과 유리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다 대선이라는 숙제가 떨어지자 부랴부랴 외부의 대중적 인기를 끄는 정치인 트럼프를 채용한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이를 꼭 빼닮은 보수정당이 있다. 바로 새누리당이다.

 

괴이하게 흘러가는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선 ‘공화당의 종말’ 논의가 제법 많다. 깊은 터널 속에 들어온 것 같은 현 공화당의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적절한 유연성으로 지지층을 유지하거나 특수한 환경에서 대중의 신뢰를 얻어 집권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역량을 보유하지도,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편적 대중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첫 번째 징후는 무엇보다 당내 대중성 있는 정치인의 부재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주자 등극에서 보듯, 당내 주류 인사들 중 대중의 열광을 받는 인물이 없다. 트럼프는 정통 공화당원이라고 볼 수 없다. 그의 이력을 보면 정치적 정체성이 뚜렷했다고 보기 어렵다. 정당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트럼프는 젊었을 때 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었지만 1987년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999년 개혁당(Reform Party)으로 옮겨 2000년 대선에 출마하려다가 경선에서 탈락했다. 2001년 다시 민주당으로 들어가 2009년까지 있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다시 공화당으로 옮겼고, 이후 잠시 무소속으로 지내다 2012년 공화당에 복당해 2016년 대선에 출마했다. 설사 트럼프가 승리하더라도 이를 공화당의 승리라고 부르긴 어렵다.

어지러운 과거를 갖고 있고,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제 불능의 인물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정당이 최종 후보로 불가피하게 낙점해야 했다. 이른바 ‘대선 주자를 외주화’한 것이다. 내부에 더 강력한 후보가 있었다면 이를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그런 후보를 보유하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다. 지지자들 인식을 보면, 이질성이 매우 높아 하나의 정치그룹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화당이 오랜 역사에서 중시해온 자유무역의 필요성은 민주당과 핵심적 차별 요소였지만, 이에 대한 공화당원들의 의견은 이제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자유무역이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는지에 대해 같은 공화당원이지만 트럼프 지지층과 반대층의 의견이 현저하게 갈렸다. 트럼프 지지자의 50%는 ‘나쁘다’고 답했고, ‘좋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반면 공화당원이지만 트럼프 반대자의 55%는 ‘좋다’고 답했고, ‘나쁘다’는 응답은 20%뿐이었다.

이민자에 대한 시각도 통일되지 못했다. 설문조사 업체 서베이몽키에 따르면, 공화당원이면서 트럼프 지지자 중 76%는 ‘이민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반(反)이민자 정서가 분명했다. 하지만 공화당원이면서 트럼프 반대자 중 61%는 ‘이민자 수를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혀 노골적인 반이민자 성향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있다. 공화당의 주요한 가치를 이루는 사안에서 공화당원들의 생각이 분산되는 것이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6년 10월3일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유럽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차기 대선 후보로 반 총장 영입에 나섰다. REUTERS

암울한 미 공화당의 미래

공화당의 앞날이 어둡다는 주장의 근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인구 특성 변화에 공화당이 전혀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2014년 조사를 바탕으로 전망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미국 어린이 인구의 절반은 비(非)백인계가 된다. 2044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유색인종이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인이 소수그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층의 구성 변화를 살펴보면 오히려 순수 백인으로 더 집중되고 있다. ‘미국 선거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선거에서 백인 투표자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었으나 공화당 투표자의 백인 비중은 과도하게 높은 상황이다. 1948∼60년 백인 투표자 비율은 95%가 넘었지만 2012년 선거에선 73%까지 낮아졌다. 그럼에도 공화당 투표자 중 백인 비율은 여전히 9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인종적 편중이 심하고, 선거인구의 특성 변화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외에 공화당이 ‘비대한 코끼리’처럼 더위에 지쳐 전진하지 못하는 지표는 많다. 지지층 중 65살 이상의 증가율은 실제 전체 인구 중 노년층의 증가율보다 훨씬 더 높다. 전체 지지율은 높아지지 않고 있으니 지지층이 폭넓게 형성되기보다 특정 연령대에 치우쳐 있음을 의미한다. 또 백인 중 저학력층의 전체 인구 중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나, 공화당 투표층 중 이들의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공화당의 모체인 휘그당이 노예제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내부 분란이 일고, 개혁파 위주로 재창당되면서 공화당이 만들어졌다. 이후 에이브러햄 링컨은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이 됐다. 역사적으로 흑인들의 지지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 정당이었지만 갈수록 유색인종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백인들의 정당’이 되어가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식적으로 비교할 수 없으나, 보수정당의 황금기가 저무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대한민국의 새누리당이다. 미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대선 주자를 외주화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정당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당내 주류 인사 중에서 대선 주자가 부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대중성을 지닌 인물이 없는 것이다. 특정 세력이 외부 인사를 끌어들이더라도 이를 막아낼 인물도 없다. 이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서 절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사실상 새누리당 소속의 보수 후보가 된 셈이다. 여당으로서 지난 9년의 위상을 누려왔지만 결국 다음 대선 후보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는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의 지지층 구성은 미국 공화당 못지않게 좁아지고 있다. 지난 대선이 끝나고 실시된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을 연령별로 보면 20대에서 30% 수준은 유지됐다. 50대 61%, 60살 이상에서 63%였다(한국갤럽, 2013년 1월14~18일). 하지만 지금은 20∼40대는 10%대에 불과하고 60살 이상에서만 50%를 넘을 뿐이다(한국갤럽, 2016년 10월11~13일). 고령층 편중이 심해지는 것이다. 고령층 증가로 현실에서의 위상 약화 속도는 다소 더디겠지만 지속가능성 차원에선 심각한 문제를 보이고 있다. 단지 연령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에서도 영남 지지도가 낮아지고 있지만 오히려 영남 편중성은 강화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두 차례 보수정권을 거치면서 보수 정치세력이 심판받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대중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지만 대중의 기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미국의 ‘비대한 코끼리’처럼 감각을 잃은 듯 보인다. 어두워지는 시기에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려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보수정당 숲속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까.

waymaker@opinion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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