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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더 쓸쓸한 가을
[79호] 2016년 11월 01일 (화)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대학생들과 사진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 수가 많은 편이라 모둠을 만들어서 진행한다. 5년 전 첫 수업을 할 때 모둠의 이름을 1조, 2조, 3조… 이런 식으로 정하려다 뜬금없이 번호에 따라 서열이 구분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나다라도 그렇고 ABCD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꽃이름, 동물이름, 색깔 등으로 매 학기 바꿔가며 이름을 붙이도록 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토론해 ‘개불알꽃조’ ‘호랑이조’ ‘버건디조’ 등으로 이름을 지어왔다.

이번 학기엔 시인 이름으로 하기로 했다. 잠깐 논의할 시간을 주었더니 두보, 리바이(이백의 중국 발음)…. 신선했다. 총 34명 중에 중국 학생이 10여 명 있으니 자기 모둠의 중국 학생을 배려한 모양이다. 백석과 기형도와 이상이 나왔다.

다음 수업 땐 각 시인의 시 하나를 자발적으로 골라 와서 낭송하라고 했다. 날씨가 완연히 쌀쌀해졌다. 창밖으로 햇살이 뉘엿뉘엿 들어오는 가을날 오후 두보의 ‘춘망’을 학생의 목소리로 들었다. 백석조는 ‘여승’, 이백조는 ‘우인회숙’, 기형도조는 ‘질투는 나의 힘’, 이상조는 ‘거울’을 각각 낭송했다. 해당 시를 듣고 떠오른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해오라고 했다. 학생들은 분명히 당황했으나 자못 상기된 얼굴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쓸쓸함을 사진으로 찍어오려면 무엇을 담아야 할까? 내가 정해둔 정답이란 것은 없다. 다만 어떻게 찍으면 표현이 잘되는지 거들어줄 뿐이다.

“국파산하재…”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학생들이 두보, 이상, 백석, 기형도의 시 중에서도 굳이 쓸쓸함과 연민과 고독이 묻어나오는 시를 고른 것은 모두 가을이 깊어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2016년 10월11일 국회의원 정운천씨가 국정감사 중에 “청년 10만 명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오지로 보내자”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가만 생각하니 이백조가 고른 ‘우인회숙’에서 “천고의 시름을 씻어버리려 내리 백병의 술을 마신다…”라는 도입부도 딱히 즐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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