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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경제] 인종갈등=백인결집… 트럼프 ‘활짝’
미 대선, 흑백갈등의 정치공학
[76호] 2016년 08월 01일 (월) 윤희웅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 대통령선거를 불과 넉 달 앞두고 돌발 악재가 터졌다.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 인종차별 반대 시위 중 흑인의 백인 경찰 조준 사격 사망으로 미국은 혼란스럽다. 이 혼란은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중 누구에게 악재로 작용할까. 최근 흑백갈등을 둘러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가 살며시 미소짓는 듯하다. 그는 일부 백인의 내면에 잠재된 반흑인 정서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흑백갈등을 적극 부추기고 있다.

   
▲ 경찰의 흑인 사살 사건에 항의해 열린 미국 뉴욕의 시위 도중 한 흑인이 경찰을 향해 “날 똑바로 봐”라고 소리치고 있다. 흑백갈등은 도널드 트럼프 지지층의 결집을 돕는다. REUTERS
흔히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우리 대선에 출마했던 허경영 후보에 빗대기도 한다. 기이한 언행이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보면 이는 잘못된 비교다. 허 후보는 2007년 대선에서 0.4%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대선 출마 자체에 의미를 둔 인물인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최종 후보 2인 중 하나로 실제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좌충우돌, 허세, 비합리성 등이 미디어를 통해 한국에 집중적으로 전달되는 까닭에 우리는 트럼프의 한 단면만을 보고 있다. 또 미 대선의 결정권자인 미국인들의 시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힐러리와 트럼프 중 누가 더 강한 미국을 만들 것인가, 누가 더 신뢰할 만한가 등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지속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힐러리 후보를 위협하는 공화당 후보로 미국에선 ‘정상적 대선 후보’다. 워싱턴의 전통적 정치 스타일이 아닌 대중에게 더 잘 먹히는 독특한 스타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그중 하나가 미국에서 사회적 금기인 흑백갈등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흑백갈등을 부각하며 백인과 흑인을 전략적으로 ‘갈라치기’하고 있다.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와 미네소타에서 잇따라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 사건이 발생했고, 항의 시위 중 댈러스에서 경찰관 5명이 죽고 7명이 다치는 보복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이를 놓치지 않고 “미국은 분열된 나라”라며 “버락 오바마 당선 이후 흑백갈등이 더욱 심해졌다”고 흑백갈등을 부추겼다. 상당한 백인들이 트럼프의 주장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때 단순히 캠페인의 승리와 시대적 요구보다는 역사적 의미가 더 부각됐다. 1863년 떨리는 손으로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서에 서명했고,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과 함께 워싱턴 평화대행진이 있었다. 그로부터 45년 뒤 흑인이 미국인들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 직위를 얻었다. 흑인 차별의 최종적 해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더 이상 미국 사회에서 흑백갈등은 핵심 이슈로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높게 형성됐다. 하지만 흑백갈등 이슈는 계속되고 있다. 미 대선을 앞둔 지금은 다시 제1의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미국인은 정말 인종 문제에 별 변화가 없었다고 보는 걸까.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오바마 집권 이후 미국인 34%는 ‘흑백 인종 문제가 개선됐다’고 답했고 25%는 ‘악화됐다’고 답했다. 수치상 개선 응답이 좀 높지만 흑인과 백인을 구분해보면 상당한 인식 차이가 나타난다.

흑인은 ‘개선됐다’는 응답이 51%로 ‘악화됐다’는 응답(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백인은 오히려 ‘악화됐다’는 응답을 더 많이 내놨다. 백인 중에선 ‘개선됐다’는 응답이 28%였지만, ‘악화됐다’고 답한 비율은 이보다 더 높은 32%였다. 백인 3명 중 1명은 오바마가 집권한 뒤 오히려 흑백 인종 관계가 나빠졌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흑인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시도가 백인에게 반감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이 지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집권하고 나서 차별이 개선됐다는 생각을 흑인들이 하고 있지만 사회적 차별이 아예 없어졌다고 보는 건 아니다. 법·제도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차별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편견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현실 속 흑인 차별은 여전

퓨리서치센터는 특정 상황에서 흑인이 백인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흑인들의 공감도는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경찰을 상대할 때 84%, 법정에서 75%, 대출받을 때 66%, 일터에서 64%, 상점이나 식당에서 49%, 투표할 때 43%로 나왔다. 특히 이번 흑백갈등 사건의 원인인 백인 경찰의 차별적 대우에는 84%가 공감했다. 백인 50%도 이를 인정했다. 이 정도면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실제’라고 할 수 있다. 법정에서도 더 의심받고 더 중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흑인 75%가 이에 공감했고, 백인 43%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과연 미국에서 흑백갈등이 소멸될 수 있을까. 흑인 43%는 흑백평등을 앞으로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반면 백인 78%는 이미 이뤄졌거나 이뤄질 거라고 답했으니, 인식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잦아들 것 같지 않은 흑백갈등이, 미 대선에서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선 미국 전체 통합 요구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흑인과 이민자에 우호적 시각을 보여온 힐러리에게 유리할 것이란 시각이 있다. 반면 흑인들의 과격성에 대한 백인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백인을 대변하는 트럼프가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실제 흑백갈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뒤 실시된 일부 조사에서 트럼프의 상승 현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특정 정당 고정 지지 경향이 약한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인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주 등에서 트럼프가 약진하고 일부에선 힐러리에 뒤지던 판세에 변화가 나타났다.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는 백인 비율이 훨씬 높은 곳이다.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 확산이 백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트럼프 지지를 강화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혹자는 ‘브래들리 효과’를 거론하며 트럼프의 득표율이 사전 조사보다 선거에서 더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한다. 브래들리 효과란 사전 조사에서 앞서던 흑인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는 백인 유권자들의 백인 선호 본심이 드러나기 때문에 낮은 득표율을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번 흑백갈등이 불거지기 전 백인들 상당수는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실제보다 더 과도하게 다룬다는 데 동의하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백인 41%가 이에 동의했다. 특히 백인 중 공화당 지지 성향자 59%가 동조했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 백인이고 그중에서도 공화당 성향자 아닌가. 트럼프가 믿는 구석인 것이다.
 
waymaker@opinionlive.co.kr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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