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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슈] 기업의 ‘호위무사’로 전락한 벼슬아치
전관에겐 너무 달콤한 ‘사외이사 세계’
[75호] 2016년 07월 01일 (금) 노현웅 economyinsight@hani.co.kr

연봉 6천만∼7천만원 받고 총수 일가의 ‘거수기’ 노릇…
기업 감시 본연의 몫은 뒷전

검사에서 변호사로 옷을 갈아입은 뒤 전관의 힘을 발휘해 수백억원을 벌어들인 의혹을 사고 있는 홍만표 변호사 사건은 비단 법조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에도 전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관행이 뿌리 깊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외이사 상당수가 4대 권력기관 등 관료 출신으로 채워진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투명한 기업 경영을 담보하려는 취지로 도입된 사외이사제도가 오히려 기업이 안으로 곪게 하는 장치로 변질되고 있다. 전관들의 무분별한 기업 영입을 막는 규제와 더불어 기업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

노현웅 <한겨레> 기자

한국 소비자에게는 손목시계로 유명한 일본의 정밀금속 가공 대기업 세이코그룹의 중심 계열사 ‘세이코 인스트루먼트’ 이사회는 2006년 11월 하토리 주니치 당시 회장을 긴급 해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하토리 회장이 창업주 일가인 점을 감안하면 이사회가 ‘대반란’을 일으킨 셈이었다. 긴급 해임안 추진의 중심엔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았던 노고 순지, 오노 하루오라는 2명의 사외이사가 있었다. 하토리 회장 시절 사외이사로 임명된 이들은 사내 의견 청취와 기업 실적 분석 끝에 자신들을 선임한 회장을 해임하는 쪽이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오너 중심 경영진의 전횡과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제의 긍정적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2016년 6월13일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 ‘낙하산’ 사외이사는 기업을 멍들게 한다. 연합뉴스
한국 기업문화에서 이런 사외이사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줄줄이 열린 2016년 3월 각 기업들은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 적격성 논란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현대중공업 주주총회는 애초 예정일이던 3월22일에서 사흘 뒤로 연기된 3월25일 열릴 수 있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이 사외이사로 선임될 예정이었지만, 정책금융기관장 출신인 민 전 행장의 이력을 두고 ‘독립성’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결국 민 전 행장이 이사직 자진 사퇴 의견을 밝혀 홍기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대신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 과정에 주주총회가 사흘이나 연기된 것이다.

천문학적 부실 규모를 은폐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도 ‘낙하산’ 사외이사 논란을 빚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검사 출신인 조대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내정했는데, 조 변호사는 조선업계와 아무런 업무적 연관성을 갖지 못한데다, 박근혜 정부 싱크탱크로 불린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참여 및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해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로 평가됐다. 2000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사외이사로 선임된 30명 가운데 18명은 관료 또는 정치권 출신이었다.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측근 출신 이영배씨는 여전히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이사로 남아 있다. 부실경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엄중한 시국에 추가 ‘낙하산’을 내려보내려 했던 것이다. 조 변호사는 논란이 일자 사흘 만에 사외이사 후보 자격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삼성·두산·네이버·현대산업개발·신한금융지주 등 상당수 대기업에서 사외이사 선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독립성·전문성 등 개인적 자질에 대한 시비부터 ‘관피아’ 또는 ‘낙하산’ 논란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30대 그룹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 38%

사외이사 논란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어떤 직종 출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사실 사외이사 역할은 ‘거수기’로 굳어진 지 오래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2015년 30대 그룹 180개 계열사의 이사회 의결 내용을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들의 안건 찬성률은 99.6%였다. 사외이사가 단 한 건이라도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전체 4001개 안건 중 17건에 불과했다. 5천만원에 이르는 평균 기본급에 회의수당 등을 합쳐 연 6천만∼7천만원의 보수가 사실상 ‘이름값’으로 지급되는 셈인데, 과연 어느 직종의 누가 그 ‘열매’를 따먹느냐는 것이다.

사외이사 자리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의 승자는 ‘관료’인 것으로 보인다. 2016년 3월 시이오스코어가 밝힌 자료를 보면, 국내 30대 그룹 소속 사외이사 609명 가운데 관료 출신은 235명으로 38.6%에 달했다.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4명은 ‘관피아’라는 얘기다. 다음은 186명을 차지한 학계로 전체의 30.5%에 이른다. 재계 인사 및 기업인은 97명(15.9%), 언론인은 25명(4.1%), 공공기관 출신은 24명(3.9%)이었다.

관료 가운데에도 ‘권력기관’의 독식 현상이 심각했다. 검찰·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감사원 등 4대 사정기관 출신이 132명으로 관료 출신 사외이사 235명 가운데 절반이 넘었다. 법원·검찰이 69명, 세무 공무원 41명, 공정거래위 17명, 감사원 5명 순이다. 사정기관을 제외하곤 청와대 58명, 기획재정부 17명, 금융감독원 4명 순으로 사외이사 배출이 많았다. 기업들이 어느 기관에 신경 쓰는지 짐작할 수 있는 통계 수치다.

실제 2016년 새로 사외이사에 선임된 얼굴들을 보면, 고위 관료와 권력기관 중심 인사가 많았다.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삼성중공업),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GS건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두산인프라코어),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한화생명),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오리콤) 등은 10대 그룹 계열사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판검사 출신 중에서는 박용석 전 대검찰청 차장(롯데케미칼), 정병두 춘천지검장(LG유플러스),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현대중공업),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두산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 위원장(두산중공업), 이승호 전 부산지방국세청장(현대모비스), 김영기 전 국세청 조사국장(현대건설) 등도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국내 30대 그룹의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중은 미미하나마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다. 2016년 기준 관료 출신 사외이사는 같은 기관이 2013년 전수조사한 자료와 비교하면 18명 감소했다. 전체 사외이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1.5%에서 38.6%로 2.9%포인트 떨어졌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전체 사외이사 62명 중 관료 출신이 20명(32.3%)이었다. 두산(64%)과 CJ(62.1%), OCI(61.5%), 동국제강(60.0%) 등에서 관료 비중이 높았다. 이어 신세계(52.6%), 롯데(51.7%), 효성(50%)이 절반을 넘었고 현대차(48.9%), 대림(42.9%), 현대백화점(42.1%), SK·현대중공업(40%)도 30대 그룹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문제는 관피아 등이 사외이사로 변신해 따먹는 과실의 대가를 국민이 치른다는 것이다. 사외이사제도는 본래 기업 경영을 감시해 투명한 기업 환경을 만들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이런 도입 취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 첫 번째 대가다. 두 번째 대가는 정부나 감독기관의 로비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들어 고위 공직자나 판검사 등이 퇴직 뒤 대형 로펌이나 기업체 사외이사 등으로 활동하다, 다시 정무직 고위 관료로 재선임되는 ‘회전문’ 인사가 잦아지면서, 사외이사제도가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보험’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외이사 선임이 법조계 등 사정기관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관예우’ 관행과 맞물릴 때는 법 집행과 기업 감독 활동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 홍만표 변호사가 2016년 6월2일 전관 로비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전관 로비는 법조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를 무마하는 대가로 수억원을 받은 의혹과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2011년 8월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뒤 줄곧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아왔다. 홍 변호사의 사외이사직은 2011년 11월 이수그룹 핵심 계열사로 인쇄회로기판을 만드는 이수페타시스에서 처음 시작됐다. 2015년 3월부터는 범LG그룹 계열 기업들의 사외이사를 맡았다. 여행사 레드캡투어와 엘지전자 등이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법률, 금융 분야 출신은 전문성이 높아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선호하는 직종이다. 물론 인적 네트워크도 무시하기 어려운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사외이사 선임에서 외부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선임 방식의 근본적 개선을 촉구한다. 현재 경영진 입맛대로 아무 제한 없이 추천되고 있는데, 다양한 기업 구성원한테 사외이사 추천권을 넘기자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조합이나 직장협의회 등에 사외이사 추천권을 넘기는 등의 대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또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이 겸직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해 논란이 일자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 3월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하는 한편, 2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경우 업무 관련성 판단 기준을 담당 업무뿐만 아니라 소속 기관 전체 업무로 확대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사외이사 선임과 ‘관피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 진행되는 것이다.
 
사외이사 선임 방식 전면 개정 필요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사외이사 보고서’에서 “사외이사 자격 요건 강화 말고도 선임 방법 개선, 정보 공개 강화, 사후 책임 추궁 강화 등의 개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많다. 국제투명성기구가 2016년 초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체코와 함께 27위에 올랐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등 6개국에 불과했다. 제프리 소넨펠드 미국 예일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위대한 이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정과 규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사외이사가 기업 경영의 주체로 인식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기업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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