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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슈퍼맨이 배트맨을 만날 때…
‘황금알 낳는 거위’ 트랜스 미디어 전략
[74호] 2016년 06월 01일 (수) 문동열 economyinsight@hani.co.kr

영화와 만화, 드라마, 게임의 경계는 이미 오래전에 허물어졌다. 미디어 간 경계를 넘어 융합과 변신을 거듭하는 ‘트랜스 미디어’ 시대가 본격 도래한 것이다. 마블코믹스의 만화 작품에 기반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는 대표적인 트랜스 미디어로 꼽힌다. MCU가 가져온 비즈니스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하면서 트랜스 미디어는 최근 전세계 콘텐츠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도 트랜스 미디어 전략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몇 년 전부터 한국 극장가에 심심치 않게 보이는 ‘히어로 무비’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개봉해 흥행몰이 중인 <캡틴아메리카: 시빌워>는 개봉 첫날인 2016년 4월27일 하루에만 약 72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아 <명량>이 보유한 한국 박스오피스 사상 최다 오프닝 스코어 68만 명을 가볍게 누르고 기록을 경신했다.

슈퍼히어로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과 일전을 벌이는 히어로 무비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히어로 무비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등장한 미국의 대형 코믹스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마블(MARVEL)의 캡틴아메리카를 비롯해 마블과 함께 코믹스(만화) 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는 DC코믹스(DC Comics)의 슈퍼맨 시리즈 등 코믹스 원작을 실사화하면서 시작됐다. 1980년대에 전성기를 이룬 뒤 잠시 주춤했다가 2000년대 들어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등에 업고 매년 새로운 이야기로 극장가를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최근 히어로 무비들을 보면 달라진 것은 CG 기술에 힘입어 화려해진 영상만이 아니다. 같은 코믹스 히어로 한 명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코믹스 주인공들이 각자의 ‘차원’을 벗어나 한 공간에서 만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큰 특징이다. 예컨대 슈퍼맨과 배트맨이 한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다. 원작대로라면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는 여러 코믹스의 주인공이 때로는 협력해 상상을 초월한 적과 싸우거나 대립하며 갈등한다.

이런 차세대 히어로 무비의 기반에는 흔히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Marvel Cinematic Universe)나 DC유니버스로 불리는 이른바 ‘통합적 차원’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최근 히어로 무비를 관통하는 모든 상상력의 근원이자, 엄청난 부를 낳고 있는 마블과 DC코믹스 콘텐츠 비즈니스의 ‘빅 픽처’다.
 
세계관 공유로 무한 확장된 이야기들
 
   
▲ 2016년 4월 독일 베를린의 한 극장에서 열린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시사회에서 출연 배우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을 기획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는 대표적인 ‘트랜스 미디어’로 꼽힌다. REUTERS
MCU는 미국의 대표적 코믹스 업체인 마블이 가진 코믹스의 판권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단편만화, 드라마, 게임 등 모든 콘텐츠를 아우른다. MCU의 특징은 대부분의 영화나 만화, 드라마 같은 콘텐츠가 시나리오작가나 만화가, 감독 등 원작자에게서 시작하는 데 비해 모든 기획을 마블의 주요 프로듀서들이 참가하는 ‘위원회’에서 총괄한다는 점이다. 이 위원회는 MCU에 대한 모든 스토리 진행 플롯을 기획하고, 개별 단계의 프로젝트들은 감독에게 일임하는 방식으로 모든 제작을 관리한다.

이런 특이한 제작 방식 때문에 MCU에 의해 제작되는 모든 콘텐츠는 영화, 드라마, 단편만화, 게임 등 어떤 장르로 옮겨지더라도 동일한 기본 플롯을 공유한다. 그래서 각기 다른 콘텐츠이지만 그 내용이 연결돼 서로 다른 콘텐츠가 영향을 미치며 큰 줄기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러면서도 세계관을 공유하는 범위 내에서는 하위 프로젝트의 개별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원작자 한 사람이 만드는 세계보다 훨씬 더 풍부한 플롯을 가질 수 있다. 이로 인해 관객은 다양한 느낌의 히어로 무비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마블에 따르면 MCU가 제작하는 영화는 2028년까지 제작 기획이 잡혀 있다. 각 스토리와 작품들은 ‘페이즈’(Phase)라 불리는 스토리의 분기점에 따라 분류된다. 현재는 ‘페이즈 3’ 단계의 작품들이 개봉하거나 제작 중이다.

이 페이즈들은 시간에 따라 더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2008년 개봉된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MCU 영화들이 매년 한국 관객을 만나며 개봉 때마다 큰 흥행을 거두었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등이 한국에서 큰 흥행을 하며 <캡틴아메리카: 시빌워>를 제외하더라도 한국에서만 약 4천억원의 흥행 실적을 올렸다. 그중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2015년 개봉 당시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에서 개봉한 외화 박스오피스 2위를 달성했다.

전세계적으로는 <아이언맨> 개봉 이후 MCU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가 현재까지 개봉된 것만 13편에 이른다. 2015년 개봉된 <앤트맨>까지 전세계 박스오피스는 마블이 공식 발표한 금액만 해도 90억달러(약 10조원)에 이른다. 이 수치는 박스오피스만 집계한 것으로 여기에 캐릭터, 코믹스, 게임 등 다른 영역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MCU가 가져온 비즈니스 파급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세계 콘텐츠 시장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는 마블과 DC코믹스가 주도하는 히어로 무비의 이면에는 최근 콘텐츠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이른바 ‘트랜스 미디어’(Trans Media) 전략이 숨어 있다.

트랜스 미디어란 미디어 학자 헨리 젠킨스가 처음 만든 개념으로 저서 <컨버전스 컬처>에서 처음 소개됐다. 트랜스 미디어의 핵심 개념은 어떤 메시지나 이야기가 하나의 미디어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미디어를 통해 구현되면서 모든 것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확산하는 데 있다. 이 개념은 최근 많은 미디어나 콘텐츠 업계에 화두를 던진다. 비즈니스 면에서 볼 때 트랜스 미디어는 콘텐츠의 생산과 확산을 원작자가 통제하기보다 더 확대시키는 틀로 공개해 많은 제작자가 이 틀에 참여하게 하는 전략이다.

제작 측면에서 보면 트랜스 미디어는 기존 콘텐츠를 통합한 ‘또 다른 세계의 창조’다. 어떤 이야기라도 공간적 배경이 존재하고 공간적 배경의 규칙에 따라 이야기는 짜맞춰지게 마련이다. MCU 역시 각기 다른 원작에서 출발한 히어로들이 한 공간에 모인다는 대전제하에 ‘별도로 창조된 세계’다.

MCU에 숨은 ‘트랜스 미디어’ 전략

   
▲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도 트랜스 미디어 전략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가운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프랜차이즈가 최근 Mnet에서 제작 방송한 <프로듀스 101>이다. 연합뉴스
최근 해외에서는 콘텐츠 비즈니스를 포함해 여러 산업구조에 트랜스 미디어 전략을 적용하기 위한 담론이 다양하게 이뤄진다. 마블도 2000년대 중반 인터넷의 등장으로 출판시장이 침체하고 주력으로 삼던 코믹스 시장이 하향세에 접어들자, 공격적으로 영상시장을 공략해 성공적으로 ‘마블 체인’을 구축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헨리 젠킨스는 마블의 MCU처럼 개별적 콘텐츠를 하나로 묶어 브랜딩하거나 마케팅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프랜차이즈’라고 정의한다. 프랜차이즈는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하나의 콘텐츠만으로는 제공하기 힘든 많은 사용자 경험을 가능케 한다. 제작자 입장에서도 하나의 콘텐츠만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소비자보다 프랜차이즈를 통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를 한꺼번에 끌어당겨 수익을 극대화하는 매력이 있다.

이렇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드는 트랜스 미디어 프랜차이즈 전략은 모든 콘텐츠 제작자에게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프랜차이즈가 말처럼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프랜차이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다양한 분야의 멀티형 프로듀싱 조직이다. 마블의 ‘MCU 위원회’ 같은 이 조직은 자본력과 기획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방대한 판권을 조정하는 프로듀싱 능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프랜차이즈를 영속적으로 유지하려면 반드시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 현상 -편집자)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프랜차이즈는 오픈마인드 기반 협업 모델로 움직이는 전략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입장과 상황을 가진 제작자들을 한곳에 모아 프랜차이즈를 구성하기 위해 개별 제작자를 배려하고 이들이 프랜차이즈 성공을 위해 뛸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도 트랜스 미디어 전략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중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프랜차이즈가 바로 얼마 전 Mnet에서 제작 방송한 <프로듀스 101>이다. <프로듀스 101>은 서로 다른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들을 방송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한데 모아 시청자 참여 투표를 통해 선발된 인원을 프로젝트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형태다.

2016년 4월 최종적으로 선발된 11명으로 아이오아이(I.O.I)라는 프로젝트 걸그룹이 탄생했다. 현재 총 8개의 기획사가 모여 만든 I.O.I는 5월 데뷔 직후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수많은 걸그룹 난립으로 레드오션이라 불리는 아이돌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빠른 속도로 인기를 확대해가고 있다. 처음 이 기획이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은 서로 다른 기획사의 이해관계로 인해 프로젝트 성공이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강력한 프로듀싱 조직과 ‘국민 프로듀서’라 불리는 참여형 팬덤 도입, 개별적 이해관계의 합의를 바탕으로 개방적 협업 모델을 구축해 한국형 트랜스 미디어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런 사례들처럼 국내의 다른 콘텐츠 산업들도 개방된 마인드로 트랜스 미디어 전략을 도입한다면 조만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한국형 프랜차이즈가 등장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한류 유니버스’ 역시 볼 수 있을 것이다.

redbros@redbros.co.kr

* 문동열은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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