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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억’ 소리에 파묻힌 주주의 감시 목소리
‘3년차’ 맞은 등기이사 연봉공개제 점검
[73호] 2016년 05월 04일 (수) 권순우 economyinsight@hani.co.kr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149억원으로 ‘연봉 킹’ 등극…
성과 평가의 사회적 공론화 실종

사업보고서가 공시된 2016년 3월 말 상장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됐다. 제도 도입 뒤 세 번째다. 연봉인지 로또 당첨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액수로 샐러리맨의 박탈감은 더했다. 물론 연봉공개제 시행 3년째를 맞아 성과에 연동한 연봉 안착 등 긍정적 효과도 나타났다. 2018년부터는 ‘연봉 톱 5’ 순서로 공개 원칙을 바꿔 그동안 등기이사 명단에서 이름을 슬쩍 내린 재벌 총수들의 월급봉투도 볼 수 있게 된다. 연봉공개제 도입 취지에 맞춰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감시 기능이 부각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남의 월급은 항상 묘한 감정을 준다. 나보다 많으면 질투가 나고 너무 적으면 안쓰럽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매년 3월 말 상장기업의 사업보고서가 공시되는 날이면 그 사람이 공개된다.

올해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사람은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으로 149억5400만원을 받았다. 1년 전 93억8천만원보다 60% 올랐다. 연봉을 많이 받기로 유명한 삼성전자 일반 직원 평균 1억1천만원보다 140배 넘게 많다. 2014년 145억7천만원을 받아 ‘연봉 킹’을 차지한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IT·모바일 부문)은 100억원가량 급감한 47억9900만원을 받았다. 연봉이 3분의 1 토막 났지만 그래도 2위다. 3위 역시 삼성전자로 윤부근 사장이 36억9700만원을 받았다. 17년간 재직한 뒤 퇴직한 GS그룹의 서경석 전 부회장은 퇴직금 35억2300만원을 포함해 37억6200만원을 받아 4위에 올랐다. 삼성전자 이상훈 경영지원실 사장은 31억7700만원으로 5위를 차지했다.

   
▲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3월11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2015년 149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연합뉴스

누구나 월급을 많이 받고 싶지만 아무나 월급을 많이 받을 수는 없다. 월급을 주는 사람은 적게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월급을 주는 사람의 연봉은 얼마일까?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2015년 98억원의 보수를 받아 2014년에 이어 재벌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차로부터 56억원, 현대모비스로부터 42억원을 받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제일제당 회장은 81억원을 받아 두 번째로 많았다. 2014년보다 25억원 늘어났다. 제일제당은 “회사의 실적 호전으로 손 회장의 인센티브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 한진칼, (주)한진으로부터 64억1천만원을 받았다. 신동빈 롯데회장은 롯데제과·롯데케미칼·롯데쇼핑·호텔롯데 등 4개사로부터 58억원을 받았고, 구본무 LG 회장은 53억4800만원을 받았다. 보수 상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재벌 총수 일가 가운데 전년보다 보수가 줄어든 경영자는 거의 없었다.

돈이 없어 하루하루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현대상선 현정은 회장은 전년보다 60% 늘어난 45억3200만원을 받았다. 배임 횡령 및 탈세 혐의로 재판받는 조석래 회장도 44억800만원을 받았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지 성년후견인 지정을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41억원을 받았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 중 유일하게 보수를 공개하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20억3100만원을 받았고,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모비스로부터 24억7천만원을 받았다.
 
재벌 총수와 국회의 연봉 공개 ‘숨바꼭질’

재벌 일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이 공개된 것은 2014년부터다. 주주들이 경영진의 성과 보상을 평가할 수 있도록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등기이사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2013년 11월 통과됐기 때문이다.

개별 인사들의 보수를 공개하는 법안 개정에 많은 반발이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임원 개인별 보수를 공개할 경우 직장 내 위화감이 조성되고 사원과 임원의 연봉 차이에 따른 노사 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비난 여론 때문에 임원 보수가 하향 평준화될 경우 유능한 인재 영입이 어려워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개별 인사들의 보수가 공개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2013년 검찰에 구속돼 출근 자체가 불가능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01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구치소에 앉아서 일당으로 1억원 가까운 돈을 받은 셈이다. 몸이 안 좋아 구속 정지 조처를 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31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불법을 저질러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이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보수를 받았으니 여론이 좋을 리 없다. 최태원 회장은 보수를 전액 사회에 환원하고 이듬해 보수를 전혀 받지 않겠다고 밝혔고, 김승연 회장도 경영활동을 하지 못한 기간 동안의 급여를 전액 반납했다.

보수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재벌 총수의 꼼수와 그들의 보수를 공개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등은 연봉 공개를 안 하려고 줄줄이 등기임원직에서 사퇴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40개 대기업 집단 1356개 계열사 가운데 총수가 등기이사로 있는 회사는 7.7%로 보수 공개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3년의 11%보다 3.3%포인트 줄었다. 그러자 국회 정무위원회는 2018년부터 미등기 임원들도 보수 총액 상위 5위까지를 공개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원래 미등기이사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물론 보수 공개를 앞두고 등기이사직을 내던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보수 공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성과 따라 희비 엇갈린 연봉

보수 공개 제도는 대중의 ‘관음증’을 충족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아니다. 기업 경영자들이 회사 금고의 돈을 자기 주머니로 옮길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보수다. 이사회를 장악하고 본인 앞으로 마음대로 임금을 책정하면 이를 통제할 방법이 별로 없다. 임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배주주, CEO가 본인에게 충성하는 임원을 대상으로 거액의 보수를 줄 수도 있다. 보수 공개는 투자, 대출 등 남의 돈으로 운영되는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에게 경영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 대상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해마다 보수를 공개한다. 올해 박근혜 대통령의 연봉은 2억1200만원, 황교안 국무총리는 1억6400만원을 받는다. 대통령 보수를 공개하는 이유는 그 보수가 이해관계자,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16년 3월10일 서울 남대문로4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세청장 초청 정책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에도 현 회장은 2015년 연봉 45억원을 챙겼다. 연합뉴스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도 아니다. 미국은 상장사 최고경영자와 최고재무책임자, 최고 연봉자 3명을 포함해 5명의 연봉을 공개한다. 일본도 연 1억엔(약 13억원) 이상을 받는 임원의 보수를 공개한다. 영국, 독일은 금액과 관계없이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한다.

보수 공개 3년 만에 변화가 있었다. 재벌 총수의 보수보다 전문경영진 보수가 더 많아졌다. 재벌 총수 일가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보다 전문경영인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보수가 50억여원 더 많다. 성과연동형 보수도 일부 나타났다. 전년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던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이 지휘한 IM(스마트폰) 부문의 영업이익은 4.42% 감소했고, 신 사장의 보수도 145억원에서 48억원으로 급감했다. 연봉이 60% 늘어난 권오현 부회장이 이끄는 DS(반도체) 부문은 5.46% 늘었다.

금융권에선 연봉 공개를 둘러싸고 ‘회장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참모들의 ‘충성 경쟁’이 촌극을 빚기도 했다. 애초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연봉 킹의 ‘오명’을 쓰지 않도록 보수를 줄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회장은 보수를 12억200만원이라고 공시했다가 46억2천만원으로 수정했다. 신한금융은 “별다른 의도 없이 과거 양식대로 주석을 붙였는데 오해 소지가 있어 자진해 정정했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이 정정 공시하도록 작업한 배후로는 하나금융이 지목됐다. 한 회장이 정정하기 전까지 12억3600만원을 받은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최고 연봉자로 거론됐다. 이 때문에 신한금융이 정정하도록 하나금융이 금융감독원에 제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상장기업 보수가 공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정작 보수 공개의 당사자인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로또 당첨금보다 대기업 임원 보수가 많다는 비난과 보수 공개가 기업 가치를 훼손한다는 재계의 반발만 녹음기처럼 반복된다. 보수 공개 법안의 초안을 만든 금융 당국 관계자는 “누가 보수를 많이 받는지에만 관심을 두고 많이 받았다는 사실만 비난하는 여론이 일어나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보수 공개 법안을 제안한 것은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였는데 이해관계자들은 마치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적절한 성과 평가에 대한 사회적 공론의 장도 찾아보기 힘들다. 보수 공개는 재벌 총수와 기업 최고경영진의 보수를 어떻게 책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사회적 화두를 던진다. 일반 직원과 최고경영진의 임금 격차는 어느 선이 적절한지, 성과 측정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등 고민거리가 쌓여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성과보상제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 등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가 확대되고 사기업도 성과 평가를 통해 저성과자를 분류해야 한다는 노동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누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는 기업을 운영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고 당사자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저성과자를 평가하는 제도가 경영진이 노동자를 평가하는 방식이라면, 보수 공개는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재벌 총수 등 경영진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다. 누가 얼마를 받을 것인가? 보수 공개 제도는 더 많은 고민을 우리 사회에 안겨주고 있다.

progres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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