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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책] 동북아와 동남아 경제개발의 두 길
<아시아의 힘>
[71호] 2016년 03월 01일 (화) 김태훈 economyinsight@hani.co.kr

김태훈 번역자

근대 들어 동아시아에서 진행된 산업화는 지역적으로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동북아의 경우, 일찌감치 유럽의 영향을 받아 산업화를 추진한 일본을 논외로 하더라도 식민지 시대를 거쳐 열악한 경제 환경에서 출발한 한국과 대만은 반 세기 만에 성공적으로 경제체제를 전환했다. 반면 국토와 인구, 부존 자원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동남아 국가들은 하나같이 미진한 성과밖에 거두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 이런 상반된 결과가 나온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됐다. 흔히 동북아와 동남아로 대별되는 지리적 요소를 내세우는 이론도 있고 인구나 교육, 정치제도 같은 사회적 요소를 내세우는 이론도 있다. 심지어 동남아 사람들은 더운 기후때문에 원래 게으르다는 속설도 폭넓게 퍼져 있다.

   
▲ <아시아의 힘> 조 스터드웰 지음 | 김태훈 옮김 | 프롬북스 펴냄 | 2만3천원

비즈니스 저널리스트 출신의 아시아 전문가인 저자 조 스터드웰은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산업화 과정을 조망해 성패를 결정지은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도출해낸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농업 생산을 극대화하는 토지개혁, 수출 규제를 토대로 한 산업 기반 구축, 사회적 자본을 산업부문으로 유도하는 금융 통제라는 세 요소가 필요하다.

경제체제 전환의 첫 번째 단계인 토지 개혁은 봉건적인 소작농 체제를 해체하고 농업부문을 가족농 중심으로 재편한다. 그에 따라 자발적·집중적 노동력 투하를 통해 소출이 증대하고 잉여 생산물이 발생한다. 이처럼 경제적 여유를 확보한 농업부문은 초기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제공하는 동시에 제품을 소비할 시장을 형성한다.

두 번째 단계에선, 수출을 지상 목표로 내세워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육성한다. 그러려면 정책자금과 제도적 지원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지렛대 삼아 수출을 독려해야 한다. 이때 패자를 걸러내고 승자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과정이 수반된다.

마지막으로 확고한 산업 기반이 구축될 때까지 정부가 금융부문을 긴밀하게 통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산업화를 이끌 동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동남아의 경우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해 귀중한 자본을 부동산 투기같은 비생산적 활동에 허비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 동북아 국가들은 국가적 전략에 따라 수출을 늘리는 데 금융부문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다.

이처럼 저자가 정리한 산업화 전략은 대단히 간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주인 빌 게이츠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이 책을 소개하며, 후진국의 경제개발과 관련해 어중간한 답이 아니라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고 치켜세웠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품었던 두 가지 중대한 의문, 즉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의 농업연구팀에 이 책을 일독하도록 권했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해법이 앞으로 아프리카 지원 사업에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성과를 거둘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한국 독자로서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자못 궁금할 것이다. 한국을 다룬 대목에서 자주 등장하는 박정희에 대한 저자의 전반적인 시각은 긍정적인 편이다. 비록 부정 축재를 빌미로 주요 기업인들을 모조리 구속하는 등 독재자로서 철권을 휘둘렀지만 일본으로부터 배운 산업화 전략을 추진력있게 밀고 나갔다는 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수출 규제와 금융 통제라는 측면에서 저자가 수립한 모델을 너무나 착실하게 구현한 인물이니 그럴 만도 하다. 반면 전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는 관료들에게 일본식 다도를 배우게 할 만큼 동북아식 개발 전략에 관심이 많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저지른 과오들 때문에 산업화에 실패한 지도자로 제시된다. 적어도 산업화의 관점에서 두 지도자는 성공과 실패의 범주를 대표하는 사례다.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은 저자가 주요 국가인 한국과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여행한 뒤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냉정하면서도 세밀한 필치로 쓴 답사기다. 나라마다 크게 다른 산업화의 풍경은 저자가 제시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생생한 증거로 활용된다. 특히 개발경제학자가 바라본 한국은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적 기획에 따라 부실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명운을 건 도박을 통해 고속도로와 제철소, 자동차공장 등을 건설해낸 성공적인 산업화 모델의 전형을 이룬다.

이 책은 경제사적 관점에서 개발경제학의 난제를 풀어내는 논고와 저널리스트로서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기행기가 결합된 형태를 지닌다. 두 부분은 서로를 보완하고 뒷받침하면서 이 책만의 독특한 강점을 형성한다. 경제개발 단계는 어떻게 진전되는지, 동북아와 동남아의 산업화가 왜 극명하게 분절된 양상으로 진행됐는지, 한국이 어떻게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는지, 그 이론적 배경과 역사적 양상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정보와 재미를 두루 얻을 수 있을 것이다.

skilled@enter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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