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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몬드 윤홍조씨 이야기
Editor’s Letter
[71호] 2016년 03월 01일 (화)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마흔 넘어 뒤늦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연습을 해도 늘지 않고 허우적거리기만 해서 하루는 강사에게 투덜거렸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가 대꾸했다. “자꾸 머리 쳐들지 마세요. 고개 들면 몸이 가라앉아요. 숙여야 뜨는 겁니다.” 그러면서 또 한 수 가르쳐주듯 툭 던졌다. “빨리 가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천천히 가야지 오래 갑니다.” 강사의 잠언과도 같은 몇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 물속에서뿐이겠는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고개 숙이고 천천히 사는 법을 잊은 것 같다. 막 어린이집에 들어간 네 살배기 조카도 아는 속담을 새삼 들먹이지 않더라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말이다. 운전기사에게 막말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국소만 골라 가격하는 향토기업 회장님, 승진에 지장받을까봐 작업 중 중상을 입은 하청업체 직원을 나 몰라라 하는 대기업 임원님, 제 자식 취직 좀 잘 봐달라고 여기저기 전화 넣는 의원님, 야구방망이로 제자를 폭행하고 인분까지 먹인 교수님…. 저마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으로 온갖 갑질의 추악함을 보여준 사례다.

이럴수록 사회적 지위나 은행의 현금 잔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으려는 이들이 빛나 보이는 법이다. 가만히 주위를 들여다보면 선한 의지를 갖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면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고 믿는 이가 많다. 그중 한 사람으로 윤홍조(30) 마리몬드 대표를 소개한다. 그는 기업 경영이 어떻게 세상을 살리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리몬드는 스마트폰 케이스, 가방, 모자 등 생활 소품을 만드는 회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만든 미술 작품이나 할머니들의 사연을 제품에 담아낸다. 윤 대표는 마리몬드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한 번이라도 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경제활동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셈이다. 할머니들의 사연을 제품에 담아 실어 나른 지 햇수로 4년, 마리몬드는 이제 반듯한 기업이 됐다. 2015년 매출 16억원에 7천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리고 번 돈의 대부분을 피해 할머니 돕기에 썼다.

겸손하게 아뢰자면 인생에서 속도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삶의 방향을 잘 잡을 필요는 있다. 방향이 올바르고 그 길로만 꾸준히 나간다면 느려도 언젠가 원하는 장소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윤 대표는 대학 초년 시절 우연히 할머니들의 그림을 접하고 자기 삶의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묵묵히 그 길로 걸어가 지금의 자리에 섰다. 마리몬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가 2010년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말을 사훈으로 쓴다.

“세상 사람들 모두 꽃 보면서 꽃 좋아하는 것처럼 서로 살았으면 좋겠다.”

김연기 부편집장
ykkim@hani.co.kr

*정남기 편집장의 안식월 휴가로 2016년 3월호 편집장 칼럼은 김연기 부편집장이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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