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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슈] 20대 희망퇴직이 기업의 미래다?
현실화된 구조조정 한파
[70호] 2016년 02월 01일 (월) 이성기 economyinsight@hani.co.kr

눈앞의 실적 개선 위한 ‘나쁜’ 구조조정 횡행…
노사 상생의 해법 모색에 머리 맞대야

2015년 말 신입사원마저 감원 대상으로 올렸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두산인프라코어 사건’은 2016년 불어닥칠 구조조정의 파고를 예고하는 듯하다. 기업 구조조정은 올 한 해 우리 경제를 위협할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기업의 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내수는 부진한데 새로운 성장동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유가 하락, 중국의 경기 침체 등 대외 요인도 불안하다. 차입금의 이자도 못 버는 한계기업은 점차 늘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구조조정의 방향이다.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사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방식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인건비를 낮춰 실적을 좋게 보이려고 구조조정에 손대고 있다. 아울러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부담을 떠넘겨 열악한 중소기업부터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현상도 눈에 띈다.

이성기 <이데일리> 기자
 
“퇴직이 미래다” “구조조정이 미래다”….

2015년 말 두산그룹의 기업광고 문구인 “사람이 미래다”를 패러디한 글이 온라인에서 봇물처럼 쏟아졌다. 주요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취업난을 뚫고 갓 입사한 1~2년차 정규직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시키면서다. ‘20대 명퇴’ 논란으로 여론이 들끓었고 급기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신입직원에 대한 희망퇴직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에서 희망퇴직한 사람은 생산직과 사무직에서 2015년에만 1500명이 넘는다.

   
▲ 두산인프라코어가 2015년 12월 입사 1~2년차 신입사원을 ‘희망퇴직’군에 올려놨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두산그룹이 서울 중앙대에서 연 취업박람회에서 참가자들이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 슬로건을 배경으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계 은행인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역시 2015년 특별퇴직을 신청한 1천여 명의 임직원을 심사해 최종 특별퇴직 961명을 확정했다. 전체 임직원 5182명의 19.5%에 해당하는 규모로, 5명 중 1명이 회사에서 짐을 싼 셈이다. 2016년에도 금융권의 감원 한파는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에서 신한은행이 2016년 처음으로 만 55살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하면서 은행권의 감원 바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잿빛 가득한 2016년 경제 전망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희망퇴직’이란 말이 이젠 일상적인 단어가 되다시피 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희망퇴직, 명예퇴직은 연례행사처럼 됐다. 말이 좋아 ‘희망’이지 노동자에게는 반강제적인 해고나 다를 바 없다. ‘희망퇴직’ ‘명예퇴직’ ‘특별퇴직’ 등 갖가지 이름으로 단행된 인적 구조조정으로 2015년 금융권에서만 일자리 5만 개가 줄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2016년에 일자리를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글로벌 경기 불황 이후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고, 정부 역시 앞장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실업 사태와 지역 경기에 치명타를 가져온다. 하지만 기업의 휘청거림이 국가적 위기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끊임없이 대두되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제조업은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경쟁력을 잃어가고, 금융·정보기술(IT)·서비스 업종은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이어지는데다 기술 발전에 따른 자동화와 무인화로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 현실이다.

기업 간 사업 구조조정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의 ‘빅딜’이다. 삼성은 방위산업 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매각했다. 인력 7천여 명이 오가고 매각·인수 가액만 1조8500억원이 넘는 초대형 거래였다. 재벌그룹 간에 이런 ‘빅딜’이 이뤄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의 일로, 2015년 단연 산업계의 ‘빅이슈’였다. 더구나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기업 스스로 빅딜 합의에 이른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재계에선 비주력 부문을 정리해 IT·전자·금융·바이오 등의 성장 부문에 주력하겠다는 삼성그룹의 의지와, 방산과 유화 부문에서 외형을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한화그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인력 감축과 사업 재편을 포함한 기업의 구조조정은 미국의 금리 인상, 저유가, 중국 경기 침체 등 대외 불안 요인까지 겹치면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 3년 연속 빌린 돈의 이자만큼도 벌지 못한 ‘한계기업’이 전체 1700여 개 상장기업 중 240곳이나 된다.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면 한계기업은 3만 곳 이상에 이를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상위 20대 그룹 계열사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업체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공기업을 제외한 대기업 상위 20곳 가운데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부실징후 기업 비율이 2010년 25.6%에서 2014년 37%로 10%포인트 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자보상비율이 100%가 안 된다는 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 비용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세계 경기 악화로 수출 지향적인 대기업의 상황이 중소기업보다 더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준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기업 집단 내부에 심각한 부실화 문제가 있다”며 “대기업 구조조정이 신속히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칫 기업이 도산하는 사례가 발생할 경우 금융권으로 위기가 번질 위험마저 다분한 셈이다. 금융권의 수장들이 너나없이 신년 화두로 ‘선제적 위기 대응’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사 상생 바탕으로 선제적 대응 나서야

문제는 구조조정의 본령이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해 경쟁력 있는 사업구조로 재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인력 감축에 치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인력 감축 외에 자산 구조 건전화, 신규 사업 진출, 전략적 제휴,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높여야 하지만 단기간에 인건비를 줄여 눈앞의 위기를 벗어나거나 실적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박사는 “급박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기보다는 기대만큼 흑자가 덜 났다고 해서 구조조정을 한다든가 이런 차원에서 인력 감축이 이뤄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정리해고를 하기 전 단계로 ‘희망퇴직’이다, ‘명예퇴직’이다 하는 형식으로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 강제로 사표를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력과 인건비 감축에만 초점을 두는 근시안적 구조조정은 근본적인 위기 해결책이 아닌 만큼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구조조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1997년 외환위기 때 과감하게 계열사들을 매각해 부채비율을 1300%에서 200%로 줄인 한화그룹, 사업 단위를 대폭 줄이고 주력 산업에 집중해 위기를 넘긴 효성그룹은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 도요타자동차는 노사 상생의 고통 분담으로 알뜰 경영을 실현해 2010년 대규모 리콜 사태 위기를 극복하고 업계 1위로 다시 올라섰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전문가들은 소수의 대기업이 전체 경제를 이끌고 가는 국내 경제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중소·하청 기업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위기가 오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며 “구조조정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중소기업만 쓰러지게 되니 정부가 (중소기업 피해 방지를 위한) 기준을 만들어 강제성을 띠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시행하는 구조조정이 아닌 선제적이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필상 교수는 “사후 처방식이 아닌 상시 처방으로 바꿔야 할 때”라며 “지배구조가 효율적인지, 인력 구조는 생산적인지, 재무구조는 건전한지, 기술력이 뛰어난지 수시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그때마다 처방하고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창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실기업을 엄밀하 실사해 옥석을 가려내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처럼 회사와 노조의 신뢰와 협력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꼽힌다. 도요타는 2010년 대규모 리콜 사태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4610억엔(약 4조7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그룹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회생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지만 경영진은 제일 먼저 이사 수를 절반 이상 줄이는 등 위기 극복을 위해 솔선수범했다. 이후 임금 동결과 보너스 삭감 등 노조의 협력이 뒷받침됐고, 하이브리드 등 신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신흥국 매출 비중을 50%까지 확대해 세계 1위 자리 탈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노사의 고통 분담과 알뜰 경영, 선택과 집중, 성장동력 발굴 등이 맞물린 결과 도요타는 위기를 극복하고 화려한 부활을 이뤄냈다.

전문가들은 결국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열쇠는 선제적 대응과 노사 협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남창우 연구위원은 “자구 노력이 이뤄진 기업은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기업 부실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민관·노사정 협력을 바탕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생과 경제력 집중 해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이필상 교수는 “위기시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더라도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노사 공감대를 형성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소·벤처 기업이 영역을 갖추고 대기업과 상생하면서 위기를 함께 이겨내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bey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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