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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어묵 세계화로 100년 기업 만들 것”
‘어묵 신화’ 쓰는 박용준 삼진어묵 관리실장
[70호] 2016년 02월 01일 (월)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박용준 삼진어묵 관리실장은 아버지 대신 회사를 맡아 매출을 4년 만에 25배 늘린 30대 3세 경영인이다. 그는 ‘어묵은 비위생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부산 영도에 어묵베이커리와 어묵체험관을 열었다. ‘어묵고로케’ 같은 신제품도 개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11년 20억원이던 매출이 2014년 210억원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50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2013년 50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350명으로 늘었다. 가업을 그대로 물려받기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키워낸 점을 인정받아 2015년 7월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경영 3세가 말하는 비전과 창의경영’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박 실장은 “이제 시작”이라며 “어묵의 세계화를 추진해 할아버지께서 세운 삼진어묵을 100년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김연기 부편집장

   
▲ 박용준 삼진어묵 관리실장(오른쪽)과 부친인 박종수 대표가 2015년 12월 부산 영도구 봉래시장 삼진어묵 본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묵베이커리, 어묵체험관 등 회사 운영에 큰 변화와 혁신을 주었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나.

기존 베이커리 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빵집에 가면 친절한 서비스로 여러 가지 빵을 고객이 원하는 만큼 고르고 계산한다. 어묵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종류의 어묵을 만들어 고객에게 기존 반찬으로만 먹던 어묵에서 탈피해 다양한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부터 이어온 전통과 어묵에 대한 기성세대의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 그리하여 어묵베이커리와 역사관, 체험관을 오픈하게 되었다.

이같은 실험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는가.
확신보다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어린 시절 따끈한 어묵을 먹었던 추억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추억과 함께 어묵은 고단백질 식품으로 요즘 트렌드인 건강식품에도 적합하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부산어묵’이라는 지역적 특색과 함께 성공한다면 어묵이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등 주변 사람들의 반대는 없었나.
가장 큰 반대를 하신 분은 부모님이다. 기존 공장을 잘 맡아주길 바라셨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원하지 않으셨다. 긴 시간 어묵을 만들었고, 어묵업계의 어려움을 몸소 겪으신 분들이라 반대는 당연했다. 어묵업계의 다른 사장님들이나 우리 공장 직원들 역시 만류했다.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기존 어묵공장에서 볼 수 없었던 기획자와 디자이너를 채용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큰 틀을 잡고 팀을 이뤄 하나씩 만들어나갔다. 어묵에 대한 열정을 보이자 부모님도 두꺼운 마음의 문을 점차 열었고 조언과 도움을 주셨다.

백화점에도 잇따라 진출했다. 입점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뚫었는가.
당시 백화점에서는 지역의 대표 먹거리를 유치하기 위한 식품 전쟁 중이었다. 삼진어묵은 부산 영도본점 베이커리 사업의 성공으로 그들의 눈에 들었고, 백화점 팝업스토어 진행을 통해 그 가능성을 서로 보았다. 이후로는 진출 어려움보다 입점 제안에 따른 선택의 어려움이 더 컸다.

부산에만 어묵 생산 업체가 수십 곳이 있다. 삼진어묵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삼진어묵의 사무직 평균연령은 29살이다. 젊음을 통해 오래된 어묵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싶었다. 물론 전통도 중요하다. 하지만 전통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고 그에 맞는 옷을 입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함께하며 나아가는 삼진어묵의 젊은 생각이 바로 큰 경쟁력이다.

히트상품인 ‘어묵고로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어묵베이커리 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어묵을 개발하던 중, 기존 반찬용에서 벗어나 간식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제품을 생각했다. 어묵고로케는 구내식당에서 돈가스가 나왔는데 어묵도 돈가스처럼 빵가루에 튀기면 맛있을 것 같다는 직원들의 이야기에서 착안해 어묵반죽에 갖가지 소를 넣고 빵가루를 입힌 뒤 튀겨 만들었다. 직원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좋았다. 그래서 어묵고로케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100% 수제 어묵을 강조한다. 수제 어묵은 일반 어묵과 뭐가 다른가.
수제 어묵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마케팅적 접근에서 기존 어묵의 값싼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 최상의 어육과 장인들이 만드는 어묵이라도 시중에서는 그냥 어묵이었다. 이 점을 탈피하려 20~30년 경력의 어묵 장인들이 만드는 고급 수제 어묵을 지향했고, 그에 맞는 최상급 어육과 높은 함유량으로 기존 반찬용 어묵과 비교되는 고급 어묵 상품을 만들고 싶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만들 것”

해외시장은 어떻게 개척하고 있는가.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을 대상으로 현지 조사를 하고 있다. 단순히 수출로 매출 증대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의 어묵 열풍을 느낀 주변국에서 많은 제의를 해와 해외시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묵이 ‘부산어묵’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어느 국가에 수출하고 있는가.
직접적으로 수출하고 있지는 않다. 유통 전문 회사를 통해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일본·미국 등에 수출한다. 보통 일본·미국 내 한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어묵이 유통되고 있다.

해외시장의 반응은 어떤가.
해외박람회를 통해 시식행사 등을 하고 있다. 중국, 일본, 동남아권에서는 어묵이 비교적 친숙한 식품으로 관심받고 있다. 유럽에선 맛살 등이 고단백질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해외시장 계획을 하고 있다.

원래 꿈은 무엇이었나.
회계학 전공을 마치고 미국에서 막 회계사로 사회생활을 하려고 했다.

공인회계사의 꿈을 접고 사업에 참여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2010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잠시 귀국했다. 당시 인사차 어묵공장을 들렀는데 직원들이 걱정 많은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세와 어묵공장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생계 걱정이었다. 미국에 가서도 직원들의 얼굴과 부모님의 걱정이 떠올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걱정들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께서 세우신 어묵공장과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래서 2011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유학 경험이 회사를 경영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
전공과 관련된 회계 등 기술적 부분 외에 자신감을 얻고 사고방식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당시 오랫동안 정형화된 어묵업계 유통 구조에서 어묵베이커리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젊은 생각이나 유학 시절 해외 식품업계를 접하며 얻은 아이디어가 도움이 되었다.

귀국 뒤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가장 처음 느낀 것은 무엇인가.
회사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은 오래 일하신 영업상무님을 도와 영업일을 배우는 것이었다. 일단 무엇이든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상무님과 동행하며 기존 어묵시장에 대해 배웠다. 그때 본 것은 어묵업계의 어두운 측면이다. 대기업에 밀린 지역의 중소 어묵업체들은 포장마차 한 곳과 거래하기 위해 10원이라도 깎으며 가격경쟁을 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환경을 보니 암울함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변화의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1953년부터 어묵을 만들어왔다. 회사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가.
해방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묵을 만드신 할아버지와 대기업의 진출로 중소 어묵업체의 위기를 겪으며 이어오신 아버지,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힘든 시기를 극복해 지금의 나에게까지 왔다. 대중의 많은 관심 속에 어묵시장이 새로운 변화를 겪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생각한다.

   
▲ 부산 영도구 삼진어묵 체험관에서 외국인들이 어묵을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직원 모집에 인재가 대거 몰렸다. 회사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나.

한 직원의 말이 생각난다. 명절날 친척들이 모여 이야기할 때면 어묵공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그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명절에 어린 조카부터 친척들이 삼진어묵 얘기 하는 것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 회사 자랑을 이것저것 했단다.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부터 회사의 달라진 위상을 몸소 느끼고 있다.

2013년 이후 매출이 급신장했다. 비결이 뭔가.
당연히 어묵베이커리의 성공이다. 기존 어묵시장은 어묵공장에서 거래처로 납품하고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구조였다. 어묵베이커리를 통해 어묵공장과 소비자가 바로 만남으로써 제품의 품질과 가격 등에서 이익을 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출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 같다.

2016년 매출 목표는 어떻게 되는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시장을 선도해나가는 입장에서 계속적인 성장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은 없는가.
어느 정도 위기감은 항상 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계속 변화할 수 없다.

2015년에는 주목받는 3세 경영인으로서 선배 기업인들 앞에서 강연도 했다. 무엇을 강조했나.
전통 제조업체로 공급자의 시각이 아닌 소비자 입장으로 다가간 점을 주로 말했다.

최근 재계에서는 3세 경영인에게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같은 3세 경영인으로서 어떤 자세가 중요하다고 보는가.
일에 대한 욕심이다. 나도 단순히 가업을 잇기 위해 돌아왔다면 어묵베이커리 등 새로운 사업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편찮으신 관계로 어묵공장을 맡아 직원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게 하겠다는 욕심으로 새로운 사업에 몰두했다. 나아가 국내를 대표하는 어묵회사가 되겠다는 새로운 욕심이 생기고 지금은 어묵의 세계화라는 더 큰 욕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 많으니 이것저것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욕심이 곧 열정과 꿈이 되는 듯하다.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 경영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목표와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할아버지가 시작한 삼진어묵을 100년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가는 정직한 기업이 되고 싶다.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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