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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Editor’s Letter
[70호] 2016년 02월 01일 (월)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윌리 로먼은 나이 예순셋의 세일즈맨이었다. 평생 외판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회사에 헌신하며 살인적인 경쟁의 늪을 헤쳐왔다. 이제 늙고 지쳐 본사 근무를 원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해고 통지서뿐이었다.

“저는 이 회사에서 34년을 일해왔는데 지금은…. 오렌지 알맹이만 쏙 빼먹고 껍질은 내다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짐작했겠지만 윌리는 1930년대 대공황기 한 가장의 비극을 그린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회사에서 내몰리고 설 자리를 잃은 윌리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80여 년이 흐른 지금, 현실 속 대한민국엔 윌리의 삶보다 더 끔찍한 비극이 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현대중공업 하청기업 노동자 이운남, 기아자동차 해고노동자 윤주형,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양우권, 하이디스 노동자 배재형…. 정리해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 20명 이상이 해고와 비정규직 신변을 비관해오다 자살을 선택했다.

2015년 말 구조조정의 광풍이 이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희망퇴직’이란 허울을 쓰고 이뤄진 구조조정은 기업 규모, 업종, 연령을 불문하고 전방위로 이뤄졌다. 주로 40대 이상 중견 노동자에게 향했던 해고의 칼날은 두산인프라코어처럼 갓 입사한 20~30대 직원까지 노렸다. 이런 판국이라면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윌리가 생겨날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비극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저성과자 찍어내기’가 법으로 보장받는다면 비극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미 일자리는 한겨울 뚝뚝 떨어지는 수은주처럼 떨어져나갔다. 2015년 한 해 금융권에서만 5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지금처럼 살림살이가 팍팍한 때에 제 발로 회사를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말이 좋아 희망이지 사실상 반강제로 회사를 떠나야 하는 해고나 다름없다. 상당수 기업들이 희망퇴직을 쉬운 해고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최근 한 온라인 취업 포털이 직장인 134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고용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언제 윌리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윌리의 아내는 남편이 해고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식들 앞에서 남편을 감싼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큰돈을 번 적도 없고,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김연기 부편집장
ykkim@hani.co.kr

*정남기 편집장의 안식월 휴가로 2016년 2월호 편집장 칼럼은 김연기 부편집장이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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