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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현금 사라지면 ‘빅브러더’ 탄생할까
현금 없는 사회가 의미하는 것
[68호] 2015년 12월 01일 (화)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현금을 사랑하지만 그들은 소수다. 대부분은 편리성이란 이유로 현금을 멀리한다. 그 자리를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이 대신하는 추세다. 스웨덴·덴마크 등에선 이런 일이 현실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금이 사라지고 난 뒤다. 현금이 사라지면 모든 전자거래는 은행에 일일이 기록된다. 이는 모든 국민이 은행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커피 한잔에 2천원. 싸다. 신용카드를 내는 게 쑥스러워 현금으로 지급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다. 열이면 열 카드로 결제한다. 편리함이 현금 사용을 밀어낸다. 2014년 말 기준으로 5만원권 지폐 회수율이 25%에 불과하다는 소식이다. 2013년에 비해 반 토막 수준이다. 현금에 대한 애정이 과도하다. 현금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사용의 편리성 때문에 현금을 멀리하는 반면 현금의 익명성을 사랑해 그 뒤를 졸졸 좇는다. 한쪽에서는 현금이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금고에 고이 보관해야 할 귀중품이다.

물리적 화폐에 대한 공격이 가장 심한 곳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이다. 스웨덴이 선두 주자다. 크레디스위스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어디를 가든 무엇을 사든 스웨덴의 상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본다고 한다. “우리는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 커피 한잔을 사든, 바에서 맥주를 마시든 결제는 이미 디지털로 처리된다. 거리의 신문팔이조차 모바일 카드리더기를 갖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 덴마크에서도 벌어진다. 결제의 40%가 단스케(Danske) 은행의 애플리케이션 ‘모바일페이’(MobilePay)를 통해 이뤄진다. 점점 더 많은 상점이 물리적 화폐를 받지 않는다. 덴마크 은행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는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 비전’이라고 주장한다.

의외지만 ‘무현금 사회’에 대한 실험이 가장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곳은 아프리카 지역이다. 이유가 있다. 이 지역의 주민 중 은행 계좌를 갖고 있는 비율은 30%가 채 안 된다. 신용카드 보유율은 더 낮다. 반면 휴대전화는 대부분 갖고 있다. 디지털 결제 실험의 최적지라 할 수 있다. 이는 바로 현금 없는 삶에 대한 실험이다.

케냐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의 돈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엠페사’(M-Pesa)를 통해 움직인다. 이뿐만 아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일이 속속 현실화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에서는 생체 인식 ID카드가 등장했다. 마스터카드 작품이다. 물론 이 카드는 결제 카드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현금 대체

   
▲ 신용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일상화되면서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모바일 결제를 하고 있다. REUTERS

인도는 한발 더 나아갔다.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도는 중앙집중화된 투표자 등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13억명에 육박하는 인구 전체를 상대로 신원식별 및 생체인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전자결제 시스템을 이 데이터베이스에 결합시키려 한다.

인도는 중국과 더불어 현금과 금을 유독 좋아하는 나라다. 모든 결제액의 5% 정도만 전자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선진화된 도시인 델리에서조차 모든 구매의 70% 이상이 현금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유쾌할 수는 없다. 지하경제의 만연으로 세수 확보는 물론 정책 효율성까지 위협받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은 ‘무현금 사회’가 된다. ‘현금’은 물리쳐야 할 악이다.

세계는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든 현금 없는 사회, 즉 ‘무현금 사회’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신용카드에 이어 삼성페이를 비롯한 각종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현금을 몰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현금 없는 세상이 의미하는 것은 정확히 뭘까. 또 기득권은 왜 이런 세상을 만들려는 걸까. 그 해답에 접근하려면 은행의 탄생부터 얘기해야 한다.

현대의 화폐·자산 거래 시스템은 르네상스 시기 메디치가(家)에서 기원한다. 이때 처음으로 은행이 탄생했다. 메디치 가문은 파괴적 혁신가이자 급진적 사상가였다. 당시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을 발견해냈고 그것을 현실화했다. 메디치가는 예금자와 차입자를 중개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예금자가 가진 초과 자본을 그것이 필요한 차입자에게 수수료를 받고 연결해주는 방식을 현실화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발상이다. 은행이 하는 대표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사회의 수많은 부채를 한 은행의 중앙장부(ledger)에 기록함으로써 은행가는 강력하면서 중앙집권화된 신뢰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은행의 전문화된 중개 서비스 덕으로 과거엔 서로를 신뢰할 수 없어 비즈니스를 꺼린 이방인들이 이젠 마음놓고 거래를 한다. 예금자는 차입자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돈을 빌려주고 차입자 역시 누구의 돈인지 모르면서 안심하고 돈을 쓴다. 모두 은행이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메디치가의 혁신이 세계를 바꿔놓았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이들이 만든 뱅킹 시스템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다. 은행은 중앙집중화된 신뢰 시스템을 만들면서 그 핵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결국 은행은 매우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은행이 없으면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되면서 세계경제는 한층 더 은행의 중개 기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은행이 깊숙한 금고에 보관한 장부는 한 사회의 부채와 지급을 추적할 수 있는 필수 수단이다. 또 오늘의 은행은 경제를 움직이는 금융 트래픽을 관리하는 기능도 한다. 금융거래를 하고 싶으면 은행과 거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은행업은 궁극적으로 지대추구(rent-seeking·별다른 노력 없이 돈을 불려나가는 행위) 비즈니스다. 이들은 조세와도 같은 수수료를 부과해 이득을 챙긴다.

오늘의 경제는 은행에 예속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이 활동을 멈추면 경제 시스템은 일시에 붕괴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어떻게 실물경제를 파괴시켰는지 기억하면 한층 이해가 쉬울 것이다. 실물경제가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 금융이 실물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시대가 되었다. 은행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그런데 은행은 한발 더 나아가려 한다. 모든 공식적인 거래를 전자화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은행의 힘은 극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모든 거래는 민간이 운영하는 상업은행에 낱낱이 기록된다. 지금까지는 현금 거래를 통해 이를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금이 없어지는 순간 인류의 상업적 거래 전체는 은행의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남는다. 은행 감시의 망령이 오고 있다.


현금의 익명성은 척결해야 할 악인가

   
▲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는 은행의 중개 기능을 무력화하는 ‘무현금 사회’를 꿈꾼다. REUTERS

그뿐만 아니다. 무현금 사회에서 우린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현금 거래에는 중개인(intermediary)이 필요 없다. 당연히 중개인에게 일정한 몫을 떼어줘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무현금 사회’가 되면 은행이나 기타 금융 중개자가 우리의 모든 거래에서 일정한 몫을 떼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우리의 결제 행위에서 수집된 막대한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정보를 판 적이 없고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중개인이 수집한 정보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현금은 중앙은행의 위험한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 하지만 무현금 사회가 되면 중앙은행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대의 중앙은행은 마침내 금단의 영역이던 ‘마이너스 금리 정책’(NIRP·Negative Interest Rate Policy)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전에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 일단 현금을 없애야 한다. 현금이 존재하는 한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채택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금자들이 은행에서 돈을 빼내 중앙은행의 힘이 미치지 않는 비밀스런 금고에 보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을 피할 수 없다. ‘무현금 사회’는 이에 대한 초석이라 할 수도 있다. 무현금 사회에서 뱅크런은 불가능하다. 예금자들은 기껏해야 다른 은행으로 계좌를 옮기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원하는 대로 우린 일방적으로 끌려가야만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격도 있다.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의 시도다. 이들도 무현금 사회를 꿈꾼다. 하지만 그 방식과 이유는 기득권 집단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이들은 은행의 중개 기능을 무력화하는 분권화된 데이터베이스를 꿈꾼다. 돈의 익명성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들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기득권 집단(정부와 은행)과 싸워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무현금 사회는 불가피하다.

분명 편리성도 중요하다. 다만 프라이버시, 익명성 등도 이 못지않게 소중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보이지 않을’ ‘관찰되지 않을’ 자유를 원한다. 하지만 정부와 은행은 강력한 동맹을 맺고 이를 앗아가려 한다. 무현금 사회는 완전한 통제와 감시를 가능하게 한다. 21세기 어느 순간, 우리는 24시간 감시에서 풀려날 수 없는 수인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편리성은 잔인한 대가를 요구한다.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 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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