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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슈] ‘제네시스의 이름으로’ 명차의 문 연다
고급차 독자 브랜드 선포한 현대·기아자동차
[68호] 2015년 12월 01일 (화) 정남기 economyinsight@hani.co.kr


고급차 시장에서 현대 이름표 떼고 제네시스로 승부…
2020년까지 ‘G시리즈’ 6종 라인업

현대·기아자동차가 현대가 아닌 ‘제네시스’라는 독자 브랜드로 글로벌 고급차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연 800만대의 차를 판매하는 글로벌 업체인 만큼 더 이상 프리미엄 시장의 진입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망은 비교적 밝다. 이미 성능과 품질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남은 과제는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차별화된 제네시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고객의 인식을 바꾸는 과정이다. 이번 승부수가 통한다면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서 크게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남기 편집장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5년 11월 초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제네시스’를 고급차 브랜드로 독립시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제네시스를 고급차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10년 가까이 준비를 해왔다. 현대차 제공

2015년 현대·기아자동차는 그다지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중국, 유럽 등 각국의 자동차 시장이 크게 위축된 탓이다. 실제 2015년 1~10월 판매 실적을 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 감소한 645만여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현대차가 400여만대, 기아차가 245만여대다. 물론 판매 부진은 현대·기아차만의 현상이 아니다. 경기 불황의 영향으로 전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실적이 좋지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눈에 띄는 차종이 있다. 미드 럭셔리급 세단 ‘제네시스’다. 현대·기아차는 2014년 한해 동안 미국에서 제네시스를 1만9천여대 팔았다. 그러나 2015년에는 1~9월에만 1만9146대를 팔아 전년 기록을 이미 넘어섰다. 판매량 기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3.4% 증가했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딱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동급의 벤츠 E클래스가 -32.9%, BMW5시리즈가 -13.6%, 아우디 A6/S6이 -0.6%, 렉서스 GS가 -0.1%의 판매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제네시스의 판매량은 단연 두드러진 기록이다. 판매량만 보더라도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에 이어 동급 3위에 올라 아우디 A6/S6, 렉서스 GS, 캐딜락 XTS, 테슬라 모델S 등 쟁쟁한 브랜드들을 모두 제쳤다. 기대 이상의 좋은 실적이다.

큰 폭의 성장이 가능했던 요인은 무엇보다 뛰어난 성능과 품질이다. 제네시스는 2008년 미국 시장에 처음 선보인 이후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을 제치고 품질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2009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아시아 대형차로는 최초로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됐고, 2014년 출시된 2세대 제네시스는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가 실시한 충돌시험에서 29개 항목 모두 만점을 기록했다. 고급차의 기본 요건인 안전성에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실제 고객들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었다. 무엇보다 기본 주행 능력이 탁월하다. 안락한 승차감과 강하고 부드러운 주행감은 물론이고 고속 주행 때도 소음과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제네시스 보유자의 제품 만족률이 98%에 달하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성능과 품질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수준의 성능과 품질 이미 검증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현대·기아차가 제네시스를 고급차로 독립시켜 독자 브랜드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요타가 렉서스를 고급차 브랜드로 독립시켜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프리미엄 시장에 새롭게 진출해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서 한 단계 도약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연 8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글로벌 톱 5위의 자동차 회사가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한때 5.1%를 기록했다가 4%대에 머물러 있는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고급차 시장에 진출해야 할 필요성이 큰 상황이다.

특히 지금은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기름값은 하락하고 경제는 좋아지는 상황이어서 미국 고객이 고급차로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대·기아차에는 바로 지금이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의 적기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미국에서 현대차 구매자의 평균 가계소득은 8만달러를 넘는다. 값싼 차를 선호하던 예전의 고객이 아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독자 브랜드의 고급차 출시를 위한 객관적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2015년 11월 초 국내 기자간담회에 직접 참석해 제네시스 독자 브랜드 구축을 발표했다. 2015년 12월 국내에 출시될 초대형 럭셔리 세단인 EQ900(G90)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6종의 라인업을 갖춰 현대차가 아닌 제네시스의 이름으로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합류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으로 제네시스 브랜드의 이름은 모두 ‘G시리즈’로 통일된다. 구체적인 라인업은 중형 세단 G70(2017년 하반기 출시), 기존 2세대 제네시스 대형 세단 G80, 초대형 세단 G90, 중형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고급 스포츠카형 쿠페로 이뤄질 예정이다. 데이브 주코브스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로스앤젤레스(LA) 모터쇼에서 라인업이 모두 갖춰진 뒤인 2020년에 G시리즈 차량을 연 4만대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 2015년 12월 국내에 출시될 EQ900(G90). 제네시스 브랜드로 출시되는 G시리즈 차량은 G90을 비롯해 G70, G80 등 6종으로 라인업이 갖춰질 예정이다.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는 ‘인간 중심의 진보’(Human-centered Luxury)를 브랜드 방향으로 제시했다. 기존 고급차 고객들이 역사와 전통, 희소성과 배타성을 중시했다면 뉴 럭셔리카의 고객들은 나만을 위한 독특한 경험, 외부 세상과의 연결성, 실용적인 라이프스타일, 소셜네트워크 활용 지식공유를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사람을 압도하는 중후한 차량보다는 차량을 이용하는 경험이 사람의 생활을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들어주느냐를 중요한 척도로 삼았다”고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말했다.

독자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공을 위한 첫번째 관문은 내년 상반기에 미국 시장에 출시될 G90이다. G시리즈의 최상위 전략 차종인 만큼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G90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전, 안락함, 동적인 주행 성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안전을 위해 일반 강판보다 10%가량 가볍지만 강도는 2배 이상 높은 초고장력 강판 비율을 대폭 늘렸다. 또한 후측방 추돌회피 지원시스템을 도입해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그리고 안락함을 위해 완벽에 가까운 소음, 진동 차단 기술을 탑재했다는 것이 현대기아차 쪽의 설명이다. 차음글라스 사용은 물론 주요 부품에 흡·차음재 사용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휠 내부에 소음기 역할을 하는 공간을 만들어 원천적으로 소음과 진동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람다 V6 터보 엔진 등을 장착해 기존 럭셔리 세단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고속주행감과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또한 2세대 제네시스에 적용돼 호평받았던 전자식 상시 4륜 구동시스템 H-TRAC를 적용해 악천후에도 뛰어난 주행 성능을 구현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자율주행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고속도로주행지원(HDA) 시스템이 관심을 끈다. 이 시스템의 구체적인 기능은 3가지다. 차간거리 유지, 차선 유지, 제한속도에 맞는 구간별 자동 속도 조절기능이다. 졸음이나 전방주시 태만 같은 운전자 부주의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속도, 차선, 차간거리 등에 신경 쓰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반응이다. 성능과 품질이 이미 고급차 대열에 들어섰다 해도 고객의 이미지 속에는 아직 고급차로 각인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G90의 전신인 에쿠스는 미국 시장에서 거의 팔리지 않았다. 고급차 이미지 구축 작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G90 출시를 계기로 기존 에쿠스 브랜드는 사실상 제네시스에 통합된다. 미국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한 제네시스의 이름으로 재탄생하기 때문에 일정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G90은 2016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선을 보인 뒤 상반기에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때 2세대 제네시스가 쌓아온 고객의 신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제네시스가 고급차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고급차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감성적인 고객 접근, 가격 책정을 포함한 적절한 마케팅 전략, 대중차와 구별되는 차별화된 서비스, 차량 잔존 가치 유지를 위한 노력 등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이 빛을 보기까지는 최소한 3~4년이 필요하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내야 고급차 대열에 올라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렉서스(LEXUS)의 사례를 참고해볼 만하다. 도요타는 1984년 플래그십 넘버원(No.1)이란 뜻의 렉서스 개발 프로젝트 ‘F1’을 출범시킨다. 1985년 시제품이 만들어졌고, 1989년 LS400과 ES250 두 차종을 출시한다. 렉서스의 특징은 값이 비교적 싸면서 품질이 좋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가진 차였다. 특히 고급차 고객은 브랜드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품질력의 우위만 가지고는 다가가기 힘들다고 판단해 도요타는 완전히 다른 브랜드를 출시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낮은 가격으로 접근해 많은 구매자들을 확보하고, 입소문을 만들어냈으며, 이를 통해 다른 고객들의 구매를 유도했다.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 먹히자 신속하게 가격을 인상했다. LS400은 초기에 3만5천달러의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했지만 6년에 걸쳐 차값을 5만2천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렉서스는 차에 대한 ‘신뢰성’을 부여하는 데 광고와 마케팅을 집중했다. 동시에 판매망을 도요타와 완전히 분리시켰다. 엄격하게 선발한 대리점들을 통해서만 차를 팔았다. 그리고 잠재적인 고객군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렉서스가 오늘날 미국에서 고급차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된 이유다.


지금이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 적기

   
▲ 2014년 3월 미국 뉴욕 모터쇼에서 제네시스가 차량 반쪽의 부품이 공개된 채 전시돼 있다. 제네시스는 2015년 미국에서 팔리는 미드 럭셔리급 차량 중에서 판매량 3위를 달리고 있다. REUTERS

제네시스의 경우 성능과 품질 면에서는 렉서스 이상이다. 오랫동안 프리미엄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기에 기존 2세대 제네시스만으로도 유럽과 일본의 고급차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과거 렉서스와 비교할 때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처음 출시되는 차량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차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2월 출시할 G90은 한층 업그레이된 차종이다. 현대기아차는 G90의 완벽한 품질 구현을 위해 2015년 8월부터 난코스로 악명 높은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뉘르부르크링 서킷의 노르트슐라이페 코스에서 하루 600km 이상 주행 시험을 매일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제네시스란 브랜드를 고급차의 상징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콘셉트, 이미지, 디자인, 판매 방식, 애프터서비스(AS) 등 무형의 요인이 고급차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중고차 가격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패션계의 명품이 그러하듯이 차량을 구입하고 3~4년 뒤 차값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면 고급차라고 할 수 없다. 고객이 새롭게 진입한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을 구입할 때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가장 초점을 둬야 할 대목은 디자인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디자인 면에서 제네시스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현대·기아차는 푸조, 아우디,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의 디자인을 맡아온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했다. 2017년 하반기에 출시될 중형 럭셔리 세단 G70부터 시작해 기술과 디자인 면에서 본격적인 차별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새로 영입한 루크 동커볼케의 지휘 아래 제네시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현대·기아차의 숙원인 고급차 시장 안착은 훨씬 빨라질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다만 판매 채널을 분리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이다. 초기에는 현대 고객과 접점을 공유하고, 중·장기적으로 판매 채널을 분리해갈 계획이다.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이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글로벌 차원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만큼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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