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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공기, 트위터 타임라인
[김국현의 IT 인문학]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김국현 economyinsight@hani.co.kr

김국현 IT칼럼니스트·블로그 '김국현의 낭만IT' 운영자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라는 조류가 신경 쓰인다는 사람이 많다. 사실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거슬릴 수도 있다. ‘스마트’라는 사탕옷을 입은 이 변화는 우리에게 강하게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스마트해짐으로써 사회 시스템의 신체로 기능하라는 동원 명령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한 신체가 되라”는 동원 명령
이 사회는 스스로 컴퓨터가 돼가고 있다. 그것도 완전한 컴퓨터가 돼가고 있다. 드디어 이 사회는 두 가지 현대적 컴퓨팅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를 계기로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를 발견한 것이다. 이 두 가지 현대적 컴퓨팅 능력이란 바로 ‘실시간성’과 ‘모듈화’다.
오늘날 스마트 풍조란 앞으로 변화될 사회 수준에 맞게 구성원이 스마트해져야 한다는 선동임을 우리는 신경 쓰임과 어딘지 알 수 없는 불편함으로 깨닫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머지않은 장래에 누구나 지금보다 더 편리한 방식으로 그 명령을 따르고 있을 것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우리 앞의 컴퓨터는 누르면 바로 반응이 오지만 ‘전자계산기’가 이런 실시간성을 확보한 것은 의외로 현대적 사건이었다.
졸저 <웹2.0 경제학>에서 현실의 완전한 대체재로서의 웹을 ‘이상(異相·理想)계’라는 중의적인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이 이상계가 현실을 하나하나 치환하고 대체해가며 현실의 제약을 풀어가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웹2.0’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2006년께의 웹에서는 물론 2010년의 오늘까지도 ‘완전한 대체’란 일어나지 않았다. 사회는 컴퓨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대체를 위해 동기화가 이뤄져야 하지만, 적잖은 격차가 시공간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리력 vs 기계의 정리력
물론 검색엔진과 포털은 현실의 모든 정보를, 그것이 디지털화될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흡수해 색인화하고 검색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했다. 웹이 준 충격이란 바로 이 흡수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 인터넷 기업의 영예는 이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이들도 그래봐야 배치 처리였다. 현실은 늘 시간차를 두고, 때로는 꽤나 뒤늦게 빨려 들어갔다. 구글의 로봇도 네이버의 손길도 사회의 모든 사태를 100% 관찰하고 흡수하는 일이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이들 정리자에게 처리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구글은 그 처리를 기계가 했고, 네이버는 사람이 했다. 어쨌거나 발생한 정보의 사태를 받아와서 정리할 여유가 늘 있었다. 그렇게 정리된 세상의 정보를 그간의 모든 질서를 초월해 유통시킨다. 그 과정에서 방해되는 것은 하나둘 붕괴됐다. 정보는 흡수되면 괴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만인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네이버’는 한국이라는 작은 닫힌 계에서라지만 인간의 정리력이 기계의 정리력을 이길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소중한 실증 자료다. 그러나 인간의 정리력이란 선형적으로 증가시킬 수 없기에 언어와 문화를 넘나드는 열린 계에서 기능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도 노출했다.
그런데 여기에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세계화된 서비스가 지역 사용자 전원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한낱 잡담 게시판이나 사진첩이라고 생각했던 이 서비스의 정체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이 서비스가 탄생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이다. 사용자를 이용하는 일의 효과와 가능성은 ‘지식iN’과 같은 사용자 참여형 서비스에서 목격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플랫폼화, 즉 알고 보면 사용자조차 거대 서비스의 모듈이 돼버린 이 사태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개개인이 정보의 신호를 처리하는 모듈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사태, 이 사회가 확보한 두 번째 현대적 컴퓨팅 능력이란 바로 이 모듈화다.
   
트위터의 퍼블릭 타임라인

 
네크워크의 주민에 동화되기
RT(리트윗·특정인의 발언을 때로는 의견과 함께 재전송하는 일)니 @(특정인을 언급하거나 혹은 특정인에게 답변할 때 쓰는 기호)니 마치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괴이한 명령어를 익히는 일에서부터, 네트워크의 주민에 동화되기 위한 사회성을 습득하는 일까지, 상당한 학습량을 소화하며 ‘스마트’해질 각오가 필요하다. 사실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참여는 이와 같이 초기 학습 부하가 꽤 된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현대적 고독에서 벗어나는 대가로 우리는 링크와 RT와 @를 구사하며 스스로를 이 사회를 위한 정보처리 모듈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경쟁하듯 ‘팔로워’(Follower)를 늘려봐도 늘어나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추종자’가 아니라, 나를 앞세워 정보를 흡수하려는 또 다른 정보처리 인자들이라는 점은 좀처럼 인지되지 않는다. 팔로워와 트윗이 늘어날수록 우쭐해지지만, 이 회로의 다목적 스위치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에 기뻐하고 있을 뿐이다. ‘팔로우 더 뉴스’(Follow the News)라는 숙어에서 알 수 있듯, 그저 뉴스에 귀기울이는 이들이 팔로워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가능성이 큰 참여자는 각광을 받으며 팔로워가 늘어나지만,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신속한 정보 유통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한 줄과 흡사한 140자의 처리량은 우리에게 목적을 부여한다. 그것은 바로 직설적 명령 처리, 즉 시답잖은 의견이 배제된 정보의 유통이다. 140자의 정보에는 참여자 나름의 감정이 살짝 개입돼 한층 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정보가 되어 흡수가 쉬운 형태로 파급된다. 연예인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1인칭의 엔터테인먼트 정보를 직접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고, 정치인은 현장의 보도되지 않는 정보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은 셈이다. 참여자는 이 사실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과업을 수행하고 만다. 그렇게 사회적 수요에 따라 팔로워는이리저리 몰리게 된다.
시대의 공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는 수많은 일상이 교차하며 인간의 손으로 수집한 현실이 이상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내가 신뢰하는 스위치들은 제 각각의 판단으로 삼라만상의 정보를 껐다 켜가며 걸러준다. 포털의 획일화된 첫 페이지나 검색엔진의 텅 빈 검색창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곳에는 있다. 바로 나를 둘러싼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곳에 있다
지금도 이 나라 어디선가 100만여 명의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이 사회를 위한, 아니 바로 나를 위한 정보처리에 자발적으로 탐닉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밀어닥칠 변화의 규모에 서늘해진다.
지금까지 국산 소셜 네트워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위에 흐르는 정보들은 충분히 일상적이었고 때로는 실시간으로 갱신됐지만 그 결정적 차이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세계적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를 현대적 컴퓨터로 만들어내기 위해 정보처리 모듈로서 인간 동원령을 과감히 내리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기꺼이 모듈이 된 이들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며, 오늘도 타임라인에서 서로를 느끼며 왁자지껄 신이 났다. 포스퀘어(Foursquare)와 같은 위치 기반 소셜 네트워크로 나의 위치라는 존재의 좌표까지 헌납하며 현실을 재구축한다. 중요한 점은 그들의 표정이다. 이용되고 있음에도 어느 때보다 즐겁고 또 충족감을 느낀다. 비관론자가 수익 모델을 궁금해하며 이 서비스들의 영속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걱정할 동안, 오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소셜 네트워크와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어엿한 초월적 컴퓨터가 돼가는 이 사회의 모듈로 기꺼이 기능하며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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