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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특집] 감자칩에서 소주까지 단맛에 물들었나
소비 트렌드의 탄생과 진화- ① 맛과 향의 혁신적 파괴
[63호] 2015년 07월 01일 (수) 홍대선 economyinsight@hani.co.kr

 

   
 

선도 업체가 이끌고 후발 업체 따라오면서 새 시장 창출…
허니버터·클라우드·순하리

감자칩에서 분 단맛 열풍이 소주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스낵업체들이 달달한 꿀맛으로 재미를 봤다면, 소주업체들은 달콤한 유자 향으로 흥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짠맛이 강한 과자나 쓴 소주보다 달고 부드러움을 원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겨냥한 것이 적중했다. 특히 젊은 층과 여성층의 호응이 뜨겁다. 선도 업체가 바람을 일으키고 후발 업체들이 따라붙어 전체 시장을 키우는 모양새다. 다만 새로운 맛과 향을 찾는 추세가 트렌드로 굳어질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안다. 

홍대선 부편집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하면 소주를 가장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소주가 ‘독한 술’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소주 특유의 강하고 쓴맛보다 과일 향을 풍기는 부드러운 단맛이 나는 소주가 오히려 인기다. 유자 과즙과 향을 넣은 롯데주류의 ‘순하리 처음처럼’(이하 순하리)이 단맛 소주 열풍에 불을 지폈다.

2015년 6월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원효로2가의 ㅅ편의점. 30대 중반의 손님이 소주를 사러 왔다가 발길을 돌렸다. 가게 주인은 “요즘 부쩍 순하리 소주를 찾는 분이 많은데 진열하기 무섭게 동이 난다. 언제 다시 입고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말 롯데주류가 선보인 순하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소주계의 허니버터칩’으로 불린다. 알코올 도수 14도, 용량 360㎖로 유자 과즙과 향을 첨가한 순하리는 출시 두달 만에 1천만병이 팔려나갔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먼저 선보인 순하리는 SNS와 블로그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5월21일부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판매가 확대됐는데 일부 매장에선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다. 제과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 현상과 비슷하다. 포털 검색창에 ‘순하리’를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순하리 파는 곳’이 뜰 정도다.

순하리가 히트하자 경쟁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부산·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무학이 가장 기민하게 대응했다. 무학은 16.5도의 ‘좋은데이’로 부산·경남권에서 70%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 소주업계의 강자다. 무학은 5월12일 과일 향이 나는 저도주 3종 세트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로 맞불을 놓았다. 알코올 도수는 순하리보다 0.5도 낮은 13.5도로 맞췄다. 유자(옐로), 블루베리(블루), 석류(레드) 등 3가지 맛을 낸다. 대구·경북지역을 연고로 둔 금복주도 5월18일 유자 즙과 향을 가미한 14도짜리 ‘상콤달콤 순한참’을 내놨다. 송치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순하리가 소주 칵테일 시장을 창출했지만 후발 주자들도 ‘패스트 폴로’(Fast Follow·빠른 추격) 전략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러 종류의 술이 있는데 왜 단맛을 내는 과일 향 소주가 인기를 끄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소주는 특유의 쓰고 강한 맛으로 흔히 ‘아저씨’로 불리는 남성들이 즐겨 찾는 술이다. 달콤한 유자맛을 내는 소주를 가장 먼저 내놓은 롯데주류 쪽은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독한 술을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저도주 시장이 커지면서 여성들의 유입이 늘어난 것도 신제품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 말하자면 젊은 층과 여성층의 수요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 롯데주류의 ‘순하리 처음처럼’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과일 향의 ‘칵테일 소주’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주류 매장에서 고객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롯데주류 제공

소주인 듯 소주도 아닌 것이…

앞서 롯데주류는 소비자 5천명을 조사해 ‘기존 소주의 향과 맛은 물론 과실주에 대한 가격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결론을 얻어내고 ‘소주 베이스(Base) 칵테일’을 만들기로 했다. 이 회사의 조판기 상품개발팀장은 “유자, 매실, 체리, 레몬을 비롯해 20종류 이상의 과실주를 시음하고 선별했다. 그 결과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인 레몬·오렌지 등 이른바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이 만족도가 높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유자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순하리는 엄밀히 말하면 소주가 아니다. 주세법상 소주가 아닌 ‘리큐어’(Liqueur)로 분류된다. 술에 첨가한 과즙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순하리를 칵테일로 인식하기보다 도수가 약하고 과일 맛이 나는 순한 소주로 여긴다. 순하리 병 뒷면의 라벨에는 ‘유자청장농축액 0.033%’라고 적혀 있다. 30대 회사원인 김주연씨는 “유자 특유의 달콤한 맛과 향으로 부드러운 목넘김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소주 애호가 중에는 ‘소주인 듯 소주가 아닌’ 맛에 실망하는 이도 적지 않다. ‘소주는 소주다워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마실 때는 좋은 것 같지만 취하지 않아 많이 먹게 되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롯데주류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바로 공략하지 않은 것은 이런 기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주당들로부터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롯데주류는 처음에 부산권에서 한정 판매했다. 저도주를 많이 찾는 지역의 반응을 살핀 뒤 수도권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롯데주류의 마케팅 전략은 주효했다.

   
▲ 식품에 단맛을 약간 가미하면 다른 성분을 부드럽게 배가해주는 효과를 낸다. 감자칩 시장에 단맛 열풍을 몰고 온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해태제과 제공

3~5년 주기로 유행 타는 신제품  

롯데주류의 순하리 열풍을 지켜보던 하이트진로도 결국 과일향 소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6월19일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신제품 이름은 ‘자몽에 이슬’이다. 알코올 도수는 순하리보다 1도나 낮은 13도. 감귤류에 속하는 자몽은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과일이다.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의 가세로 칵테일 소주 시장의 격전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주류시장에서 칵테일 소주가 하나의 주종으로 자리잡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술도 은근히 유행을 탄다. 수년 전에도 소주에 다양한 첨가물을 넣어 먹는 게 유행이었다”고 말했다. 건강을 중요시하는 사회 풍조와 부드러운 술을 찾는 경향으로 소주 시장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마케팅에 힘입은 ‘반짝 열풍’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순하리를 히트반열에 올려놓은 롯데 내부에서도 신중한 분위기다.

앞서 단맛 열풍은 스낵시장을 뒤흔들었다. 2014년 늦가을 해태제과 허니버터칩에서 시작된 ‘허니 열풍’은 인기 상품을 모방한 이른바 ‘미투(Me-too) 제품’을 양산시켰다. 농심은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를 내놨고, 오리온은 기존 ‘오!감자’에 꿀과 우유를 넣은 ‘오!감자 허니밀크’를 선보였다. 오뚜기는 ‘허니 뿌셔뿌셔’, 롯데제과는 ‘꿀먹은 감자칩’을 각각 내놓았다.

허니 열풍은 아직 진행형이다. 해태제과는 2015년 6월1일 강원도 원주에 허니버터칩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품귀 현상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해태제과가 공장 증설에 나선 것은 열풍이 이어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감자칩 시장은 기존의 짠맛에서 단맛으로 재편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왜 단맛에 열광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맛과 취향 같은 소비 트렌드의 변화보다 부드러운 맛을 원하는 수요와 욕구에 맞춰 개발한 상품의 희소성을 높인 것이 특정 제품군에서 딱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남경화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연구팀장은 “식품업계에서 꿀이나 설탕은 좋은 조미료로 여겨진다. 단맛을 약간 가미하면 다른 성분을 부스팅(부드럽게 배가하는 것)해주는 효과가 있다. 단맛이 감자칩의 짠맛과 조화를 이루고 소주의 쓰고 독한 느낌을 완화해 부드러움을 원하는 더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확실히 스낵시장에선 어른들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다. 소주시장에선 여성들의 유입이 늘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쪽에선 후발 기업들이 독자 브랜드로 승부하기보다 너무 유행에 올라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선도 업체의 제품을 모방하는 ‘카피캣(Copycat) 마케팅’이 소비가 부진한 시기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시장을 키운다는 점에서 관련 업체들의 시각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김조일 롯데주류 홍보팀장은 “경쟁사들이 따라오면서 전체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사 상품의 범람과 과열 마케팅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해태제과 쪽은 “허니버터칩이 모처럼 국내 제과시장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음에도 오리지널 제품의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경쟁 업체들의 행태는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주류시장에는 3년 또는 5년 주기설이 있다. 당대 유행했던 술이 시대의 상황에 따라 일정 기간을 두고 바뀐다는 것이다. 한때 거세게 불었던 막걸리 열풍은 4~5년 만에 잦아들었고, 복분자와 매실주 등도 그랬다. 1990년대 대학가에선 레몬소주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칵테일주를 비롯한 단맛 열풍도 한때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유행을 타는 제품은 다른 유행 제품에 대체되기 마련이다. 단기간은 희소성으로 인기를 유지하겠지만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고 트렌드가 변하면 시들해진다”고 말했다.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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