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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 시대·현실과 소통해야
[Interview]김형기 한국사회경제학회장
[5호] 2010년 09월 01일 (수) 조계완 국내편집장 kyewan@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은 옳고 그르건 간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 외에 별로 없다. 어떤 지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들도 대개는 오래전에 죽은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인 것이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1936) 경제학자는 어느 학문 분야 못지않게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2회에 걸쳐 우리나라 경제학회의 양대 축인 한국경제학회(회장 안국신)와 한국사회경제학회(회장 김형기)를 대표하는 두 경제학자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첫 회는 한국사회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다. 한국 경제학계에서 진보경제학의 발언권은 어느 정도일까? 진보경제학은 시장경제학의 바닷속에 고립된 섬과 같은 처지인가? 김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진보적 경제학자는 저항만 할 것이 아니라 좀더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기업인·관료 등 이해관계자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연구를 끊임없이 검증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학계 전체가 한국 경제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경제정책이 경제 관료에 의해 입안·실행돼온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8월16일 경북대에서 이뤄졌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10월호에는 안국신(중앙대 교수) 한국경제학회 회장 인터뷰가 실릴 예정이다.)
   
 


한국사회경제학회(이하 한사경)가 1987년에 창립됐으니 20년이 넘었다. 창립 당시 주류 경제학의 자기반성과 쇄신을 촉구하면서 변혁·민중지향적 경제학의 정립을 표방했는데, 그동안의 성과는?
우리 학회 멤버 가운데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센터 소장)를 중심으로 여러 회원들이 재벌 개혁, 기업·금융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집단소송법 등 경제 민주화에 기여했다. 양극화 극복을 위한 대·중소기업 파트너십 형성, 중소 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형성, 납품 단가 인하 등도 연구작업을 통해 꾸준히 이슈로 제기하면서 현실적으로 정책을 어느 정도 끌어내는 성과를 냈다고 본다. 사실 중소기업이 크지 못하면 양극화도 막을 수 없다.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면 내수시장이 커질 수 없고, 그러면 우리 경제가 끊임없이 대외적 충격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이명박 정부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지난 20년간 여러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대학 안으로 진입했다. 진보경제학자들이 경제학 내에서 갖고 있는 시민권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 경제학 교수가 약 1천 명 정도 된다. 이 중 한사경 멤버는 200여 명 정도다. 분포는 20%가량이지만 경제 관련 담론이나 정책 형성 등에서 갖는 발언권은 더 높은 30%는 되지 않을까 싶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진보경제학자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 경제 분석과 대안모델 제시라는 측면에서 한사경이 이론과 실증 모두에서 시장경제학 또는 주류 경제학과 충분히 다툴 수 있는 수준 높고 우월한 연구를 제출하고 있는가?
경제와 관련해 현실에 적합한 제대로 된 발언을 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자들도 경제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실생활에서 기술자·엔지니어·노동자·자본가·경영자·농민·경제관료 등과의 대화와 소통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는 주류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진보경제학을 주창하는 한사경 멤버들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장과 발언이 추상적이고 공허한 ‘긴 역사적 변화’와 관련된 먼 이야기로 흐른 경향도 있었고, 구체적인 현실을 진단하고 현재적인 정책 대안을 생산하는 데 소홀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경제학계 전체가 한국 경제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경제정책이 경제 관료에 의해 입안·실행돼온 측면이 강하다. 주류 경제학은 경제 관료들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합리화하거나 그것에 순응했고, 약간의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뿐이었다. 반면 한사경 멤버들의 경우 문제제기에서는 상당한 역할을 했으나, 대안 제시 측면은 미흡했다. 특히 그동안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는 회원들이 이른바 ‘본질 불변론’에 기초해서 자본주의에서는 19세기든 21세기든 영국이든 한국이든 일본이든 언제 어느 곳이나 노동-자본 간의 모순이 똑같다, 언젠가는 이러저러한 사회가 올 것이다는 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구체적인 시기와 국가, 제도의 변화에 주목하지 않다 보니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무능하거나 미흡했다고 본다. 노동자에게만 초점을 맞춘 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이 단절돼 현실 경제문제를 푸는 대안을 올바로 제시하지 못해온 것이다.

진보경제학의 발언권 30%
21세기에 비주류 진보경제학 쪽이 직면한 도전은?
지식 기반 경제와 세계화가 가장 큰 도전이다. 경제학의 분석 단위는 전통적으로 일국, 즉 국민국가 단위이다. 그런데 경제 현상은 글로벌화되고 있지 않은가. 1970년대 중반부터 지식 기반 경제가 출현했는데, 대량생산 경제를 전제로 한 기존의 진보경제학 분석틀은 한계에 직면하면서 글로벌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큰 변화를 보지 못한 채 단지 ‘노동자가 변했다’느니 하면서 쉽게 말해버리기도 했다. 지식이 곧 가치 창출과 축적의 원천이 돼버린 지식 기반 경제에서는 기존 이론으로는 생산과 성장, 분배의 위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진보적인 대안경제론을 만드는 데 글로벌화와 지식 기반 경제는 거대한 도전임이 분명하다. 일국 수준에서 벗어난 경제 연구 시야를 갖춰야 지속 가능한 글로벌화, 공정한 시장경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등 대안을 만들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진보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 아닌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 경제학계에 큰 반성이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존 정통 경제학에 문제가 있다는 반성인데, 위기가 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위기의 성격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위기에서 탈출할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이다. 올해 연말에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의 주도 아래 조지프 스티글리츠·조지 애컬로프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영국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새로운 경제사상 연구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가 발족한다고 한다. 약 70년 전 케인스가 신고전파 경제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학 사상을 내놨던 킹스칼리지에서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제사상을 선언하겠다는 것이다. 한사경도 내년 4월 경북대에서 ‘세계경제 위기와 경제학의 혁신’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 미국의 새뮤얼 보울스 교수, 영국의 벤 파인 교수, 세계정치경제학회장인 중국의 첸 교수 등 국제적으로 정치경제학계의 거장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현재의 위기는 어떤 것이며, 경제학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주로 다룰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가 신고전파 경제학 일색인 한국의 지형을 변화시킬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경제 교과서의 경우 뉴라이트 쪽에서는 일찌감치 ‘교과서 포럼’을 만들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주류 경제 교육을 벌이고 있다. 진보경제학계에서는 교과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교육 문제는 학문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영역이다. 한국 교육의 병리 현상은 입시과열, 사교육 올인, 계층 간 격차 문제 등이 있고, 창의성 교육이냐 민주시민 교육이냐 등 쟁점도 많다. 특히 교육은 교육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한사경 중심으로 오는 11월 ‘한국 교육의 정치경제학’을 주제로 공동 콘퍼런스를 열기로 했다. 경제학뿐 아니라 정치·제도·문화의 상호작용에 기초해 교육 문제를 분석한다. 교과서의 경우 정치경제학원론은 한사경 멤버들이 공동 집필한 것이 꽤 있으나 체계적으로 진보적인 경제원론 교과서를 집필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사경 안에 경제교육위원회를 구성해뒀다. 물론 주류 신고전파경제학에 대응하는 경제 교과서를 쓰려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한국 경제학계가 미국보다 더욱 미국적으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미국이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 일색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경제학 연구 경향을 보면 자기 나라의 역사와 제도, 문화를 강조하는 흐름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학 교수 3분의 2 정도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이들의 99%는 신고전파 경제이론을 공부했고, 우리나라의 고유한 경제 제도와 역사를 중요한 변수로 보고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국보다 훨씬 더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석학 부아예 교수가 언젠가 한국에 와 서울대·한국개발연구원(KDI)·경북대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그러더라. 어떻게 국립대와 국책연구기관에 있는 경제 연구자들이 전부 신고전파 일색인가, 라고. 이런 풍토에서 어떻게 한국의 경제 제도와 역사를 제대로 분석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하고 한탄한 적이 있다.
   
 

미국보다 더 편협한 한국 경제학계
2006년 미국 경제학자 600여 명이 연방 최저임금을 인상하라고 청원 서명에 나선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경제학자들의 이런 집단적 운동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맞다. 구체적인 경제 문제와 관련해 교수들이 의회에 청원을 내고, 제도적 틀 안에서 정책 브리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4대강 사업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금산분리 완화 반대 성명 등 단순한 성명 발표만 많았다. 하지만 성명만으로는 안 된다. 정책 담론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메모랜덤’(특정 주제에 대한 제안서)을 만들어 어떤 정책을 만들거나 바꾸자고 요구하는 안을 국회나 경제정책 당국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학자들이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진보경제학자들이 저항운동 방식으로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 그쳐왔으나 비판적 발언을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김 교수께서 오래전부터 지방분권운동을 주창해왔는데.
지역균형발전에서 핵심은 ‘분권과 혁신’이다. 중앙과 수도권 집중 체제를 개혁하는 지방분권을 해야 하고, 동시에 지역 내부적으로는 자기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 혁신이다. 즉 지역에서 기존 정치질서 엘리트들이 지배해온 정치적 독점, 그리고 이에 기초한 사회 리더십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 내가 보기에 지방분권 없는 지방자치는 있을 수 없다. 지방분권은 지방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수도권에 집중된 인적·물적 자원을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이런 자원 분산의 한 형태다. 특히 지역 내부에서는 주민 참여가 이뤄져야 하고, 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영역에서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현실적으로 대중은 출세하고 내 자식 공부 잘 시키자는 욕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역의 교육과 문화가 특히 중요하다. 일자리 격차, 교육 격차가 해소되지 못하면 핵심 역량이 다 수도권으로 유출될 것이고, 지방자치를 아무리 해봤자 지역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진보적인 학계와 단체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 내지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지방 불균형 문제를 단순하게 ‘왜곡된 정치적 문제’ 정도로 인식해온 것이다. 여기에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작용한다. 사람의 의식은 공간 의존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점차 영호남 지식인들이 동의하고, 강원·충청까지 확산되면서 지역분권운동이 전국화하고 있다. 이제 ‘지역공동체 경제론’이 제기돼야 한다. 소규모가 아닌, 대구경북경제권·호남경제권 등 큰 규모의 지역 수준에서 분권·자치·혁신에 기초해 참여·연대·생태를 강조하는 민주적이고 대안적인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 경제는 매우 역동적이다. 개발독재 시절의 경제성장 성과는 진보 성향의 학자들도 대부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 개입을 뒷받침하는 실증으로 한국의 사례가 국제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빠른 회복을 보이는 것도 역동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취약성은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첫째, 글로벌 경제가 침체되면 빠르게 회복하기도 하지만 크게 요동치는 것이 한국 경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망가지는 계층에 대한 사회·경제·고용 안전망이 취약하다. 둘째는 사회 양극화이고, 셋째는 고탄소경제다.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빠르다.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산업이 집적돼 있기 때문이다.

‘강한 진보’에만 집착하면 안 돼
한국 경제의 대안적 발전 모델은?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한국에 맞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이 표방했던 제3의 길은 신자유주의에 대응해 기존의 뉴딜이나 사회민주주의를 갱신하자는 내용에 기초했다. 제3의 길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쪽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민주의도 없었고 뉴딜도 없었다. 제3의 길과 관련해 사회적 시장경제,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조정된 시장경제 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식 기반 경제 속에서 저탄소경제로 가는 길에 대한 분석이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진보적 발전 모델은 혁신을 주도하는 동반성장 체제인데, 지식 기반 녹색경제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을 끌어안고 있지만 녹색‘성장’만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녹색을 파괴하고 있다. 녹색성장이 아니라 ‘녹색경제’로 가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나는 ‘3C 경제론’을 주창하고 있다. ‘창조’(Creative) 경제, ‘협력’(Cooperative) 경제, ‘청정’(Clean) 경제가 그것이다.
진보 경제학자로서 한국 사회 진보개혁의 미래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진보적인 정부의 재등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이 정책담당자와 관료로 정권에 참가했으나 시기도 짧고 개별화되면서 관료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러나 국가 운영에 참여해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고 운영해본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바깥에서 저항세력의 논리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 사실 ‘강한 진보’ 세력의 집권은 매우 이상적인 것이다. 진보성이 약한 정부라도 민주정부가 집권해서 그 속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맞춰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 수 있는 정책을 펴면서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한다. 그래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형성된다. 사실 민주정부가 집권해야 진보적인 사회경제학을 연구하는 학문 후속 세대도 양성될 수 있다. 스스로 공부해서 입신하고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가망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사경의 성장을 위해서도 비록 약한 진보라도 ‘중도 진보’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중요하다.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좀더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회사나 국가를 경영하는 기업인·관료 등 이해관계자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연구를 끊임없이 검증해나가야 한다. 사회 변혁과 개혁을 중시하는 사회경제학자일수록 이 부분은 더욱 중요하다. 저항만 할 것이 아니고, 또 ‘노동’만 봐도 안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견해는?
시장에 대해 진보, 보수 모두 편견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시장이란 무엇인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격렬하게 다투는 매우 중요한 주제다. 시장경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향해 창조적 파괴를 수행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시장은 대자본이 지배하지만 그 속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 동시에 표출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어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상품에 대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투표’로 보고 완벽하게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이를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나는 ‘대안사회’라는 비전의 경우, 이 비전이 비록 처음에는 약하고 낮은 수준이라 해도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서 생명을 갖고 있다면 점차 진화할 것으로 본다. 이런 맹아가 좀더 개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면서 강화되는 어떤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더 나은 대안사회는 이런 생각을 하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정치적 지배력을 가져야만 실현될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을 넘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 다수자’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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