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왼쪽)이 2015년 2월 의회에서 마뉘엘 발스 총리(오른쪽)의 옆자리에 앉아 웃고 있다. 37살의 마크롱 장관은 온건하고 현실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 중이다. REUTERS

노동시간 연장, 일요영업 확대 등 개혁 추진하면서
신중하고 점진적인 노선으로 여론 지지 확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전격 기용한 30대 후반의 경제산업부 장관 에마뉘엘 마크롱이 취임한 뒤 프랑스의 경제개혁안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은행가 출신인 마크롱은 주 35시간 근로제 완화, 일요일 영업 확대 등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려 한다. 하지만 한번에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의 개혁안은 조심스럽고 온건한 방식이다.

게오르크 블루메 Georg Blume <차이트> 기자

‘살 드 카트르 콜롱’(4개의 기둥이 있는 공간)은 전통적으로 장관·의원·기자들이 모여 의견을 듣고 질문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 프랑스 의회의 기자회견실은 며칠 동안 텅 비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회에서는 프랑스의 미래가 달린 토론이 한창이었다. 이 토론의 중심에는 파리 정계의 스타, 이제 37살밖에 되지 않은 경제산업부 장관 에마뉘엘 마크롱이 있다.

마크롱 장관은 2015년 1월 200개 항목이 넘는 ‘경제성장과 고용을 위한 법안’을 의회에 들고 왔다. 의원들은 3천개의 수정안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달 가까이 토론이 벌어졌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프랑스가 마비된 경제를 개혁하고 사상 최고치인 실업자 수를 줄일 것인가? 프랑스가 이 일에 성공해야만 유럽은 다시 앞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잘생긴 경제장관은 일반 신문부터 촌평 전문지 <클로저>(Closer)까지 온갖 매체의 1면을 장식했다. 많은 매체들이 들썩이는 이유는 마크롱이 자신의 프랑스어 선생님이던 20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했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마크롱은 부르봉 궁전에 빽빽이 들어선 의원석의 붉은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 30명가량의 의원이 그의 곁에 있다. 그들이 질문할 때마다 마크롱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이의가 제기될 때마다 대답을 해준다. 이곳은 아주 조용하고 집중된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하루는 1816년 이래 거의 200년 동안 공증인들이 누리던 특권을 해체하는 법안을 다뤘다. 그다음에는 운전면허 규정 개정을 두고 의원들이 머리를 맞댔다. 운전면허 시험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는 우체국 공무원도 운전면허 시험관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다음은 시외버스 운행을 새벽 2시까지 자율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2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이러한 개혁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350만개의 일자리가 필요한데 고작 2만개에 관심이 쏠리겠는가?

“한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젊은 경제 장관인 마크롱에게 사람들의 무관심은 상관없는 듯 보였다. 그는 요즘 개혁 법안에만 푹 빠져 있다. 2015년 새해 첫날에도 그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억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크롱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말 때문에 자신의 사회주의 당파 동지들을 잃는 대가를 치르면서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그의 많은 동지들이 벼락부자를 멋지게 보이게 하려는 것을 경멸한다. 마크롱에게는 ‘대통령의 조언자’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언론은 그를 “올랑드의 총애를 받는 자”라고 부른다.

마크롱의 멘토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가장 가까이 두었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였다. 2007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니콜라 사르코지는 위대한 경제학자 아탈리가 이끄는 개혁위원회를 구성했고, 아탈리는 마크롱을 자신과 가까운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경제개혁위원회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마크롱은 은행업계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일했고 백만장자가 되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은행가로 변신한 마크롱을 다시 정계로 불러왔다. 2007년 개혁위원회 보고서는 마크롱이 최근 제시한 새로운 법안의 초안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경제부의 다른 관료들보다 새로운 법안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마크롱이 하는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는 현재 유럽의 자유주의 개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좌파라고 생각한다. 마크롱은 매일 밤 10시30분과 12시에 정확히 의회에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새벽 2시쯤 의회 논의가 끝나면 지친 기색 없이 밝은 얼굴로 살 드 카트르 콜롱을 지나간다.

한번은 그가 늦은 시각에 의회 건물 내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세계에 대해 설명했다. “한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개혁은 없다. 새로운 분야를 열고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은 계속해서 시도하는 개혁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세계는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가 양산되고 있다. 패자는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개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 지금까지 우파 출신 총리 3명이 추진한 프랑스의 개혁 법안은 대대적인 파업으로 실패했다. 실업급여를 줄이는 것에 항의하는 프랑스 예술인들. REUTERS

마크롱은 개혁정책을 외과수술이 아니라 한의학의 침술처럼 생각한다. 그의 법안에는 여러 번의 침 시술을 이용한 3가지 처방이 있다. 마크롱은 자신의 첫번째 처방을 ‘완화’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주택 건축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두번째 처방은 ‘투자’다. 마크롱의 법안은 건축 허가를 빨리 받을 수 있게 한다. 그는 또 기업이 직원에게 자사 주식을 포상으로 지급하는 것을 장려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이에 더해 마크롱은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자금을 지원한다. 세번째 처방은 ‘일’이다. 얼마 뒤부터 프랑스에서는 일요일 영업이 연 5일에서 12일로 늘어날 것이다. 관광지에서는 일요일 영업을 사실상 자유화해 연 52일이 된다.

이 모든 것이 반대파인 크리스티앙 야코브의 말대로 수많은 “바람과 연기처럼 노선 없이 이것저것 모아놓은 커다란 잡동사니 뭉치”일 뿐인가? 경제부 장관인 마크롱은 이를 부인한다. “온건한 방법을 이용해서도 악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뼈를 깎는 개혁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우파 출신 총리 3명이 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개혁 법안을 시도했다. 첫번째로는 1986년 자크 시라크, 두번째는 1995년 알랭 쥐페, 세번째는 2006년 도미니크 갈루조 드빌팽이 그랬다. 개혁 시도는 모두 대대적인 파업으로 실패했다. 이런 일을 목도한 사르코지는 거의 아무런 개혁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제 좌파 출신의 마크롱이 나설 차례다. 그는 자유주의적 개혁안을 과감히 시도한다. 하지만 온건한 방식을 취한다.

그의 방식은 많은 호응을 얻었다. “우체국 공무원이 운전면허 시험관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든 사람이 기억해야 한다”라고 사회당 원내대표인 브뤼노 르 루가 반겼다. “나는 이것을 현대적인 노동 방식이라고 부른다”고 대중운동연합 소속 의원이자 한때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상무장관인 프레데리크 르페브르가 극찬했다. 르페브르의 수정안은 성공적이었고, 원내 교섭단체 대표인 야코브의 반대를 잘 피해갔다.

좌절된 세번의 개혁 시도

기업들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유럽에서 가장 큰 정보기술(IT) 기업인 ‘아토스’(Atos)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시라크 정부에서 경제금융장관으로 일한 티에리 브르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찬성이다. 각 업계의 벽을 허물고 공급에 초점을 맞춘 경제개혁 법안이다. 최근의 재정 관련 법안과는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걸음으로 여러 번 걷는 것이 큰 보폭으로 한걸음 걷는 것만큼 효과가 있을까? “개혁의 방향은 옳다. 하지만 개혁 조처들이 아우르는 범위가 문제의 크기와는 맞지 않다.” 엑스마르세유대학의 경제학 교수 질베르 세트의 지적이다. 세트와 마크롱은 같은 경제학자 모임에 속해 있었다. 2012년 선거를 위해 올랑드가 소집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세트는 이제 반대쪽 리더인 야코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주당 35시간 근무제 완화 등은 노동법 개혁을 가속화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세트는 마크롱의 법안을 ‘고양이 오줌’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한 반박은 다음과 같다. 누가 프랑스를 진실로 개혁한 적이 있었던가? 사르코지 대통령 밑에서 정당을 이끌었던 크리스티앙 야코브도 못했고, 어떤 대통령도 어떤 총리도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일지라도 마크롱은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의 법안은 이번 세기의 개혁이 아니라 다음 세기의 개혁이 될 것이다.” 최근 올랑드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30년 안에 구글 같은 회사가 프랑스에 세워지는 것을 가능케 하는 법안을 만든 경제부 장관으로 마크롱을 평가했다. 주식에 관한 새로운 규정은 과거 미국 실리콘밸리로 가는 길을 선택한 수천명의 프랑스 엔지니어를 다시 돌아오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작은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하는 것인지, 큰 개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현재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마크롱이 의회에서 말했다. “오직 시간만이 이를 판단해줄 것이다.” 마크롱이 과거 개혁을 추진했던 프랑스 정치가들과 다른 점은 그의 조심스럽고 온화한 방식이다. 마크롱의 시도는 약해 보여도 긴 수명을 지녔을지 모른다.

ⓒ Die Zeit 2015년 7호 “Reformer von Links”
번역 이상익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