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서울 중구 명동에서 중국 관광객이 안내요원에게 길을 묻고 있다. 뉴시스

정부 확충 정책, 수익형 분양 물량 증가로 최대 건립 붐…
이용률 하락으로 오히려 공실률 상승

서울 시내 곳곳에 크고 작은 호텔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서울에는 38개의 호텔이 새로 생겼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건립 중인 호텔은 143개, 이 중 56개 호텔이 올해 준공될 예정이다. 최근의 호텔 건축 러시는 ‘88올림픽’ 이후 최대 규모다. 문제는 호텔 공실률이 높아지는데도 객실의 공급 과잉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호텔 확충 정책과 수익형 호텔 분양 사업 등이 맞물린 결과다.

홍대선 부편집장

지난 1월31일 서울 중구 충무로1가에 있던 복합쇼핑센터 밀리오레 자리에 지상 17층, 지하 7층 규모의 르와지르호텔이 문을 열었다. 수익형 부동산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으는 분양형 상품으로 주목받은 호텔이다. 이 호텔은 한때 명동 상권을 주름잡았던 밀리오레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619개의 객실을 갖춘 명동 르와지르호텔은 일본에 본사를 둔 솔라레그룹의 첫 한국 진출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서 60여개의 호텔을 운영 중인 솔라레그룹은 명동 호텔을 시작으로 추가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명동을 중심으로 서울 시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호텔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르와지르호텔처럼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호텔로 전환한 것뿐 아니라 새로 짓는 신축 공사도 적지 않다.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 교보생명 맞은편에는 오는 5월 개관을 목표로 6성급 포시즌호텔의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투자한 이 호텔은 지상 25층, 지하 7층 규모로 세계 최고급 호텔 브랜드로 알려졌다.

특급호텔에 비해 부대시설은 적지만 숙박비가 싼 비즈니스호텔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명동, 인사동, 동대문 일대에는 2~3년 전부터 짓고 있는 비즈니스호텔 20여개가 잇따라 문을 열었거나 개관을 앞두고 있다. 지하철 명동역 근처에 롯데건설이 짓는 라이프스타일호텔이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며, 건너편에는 이비스 앰배서더 명동 호텔이 곧 개관할 예정이다.

지난해 서울에는 모두 38개의 호텔이 새로 생겼다. 2013년 개관한 31개의 호텔과 합치면 2년 만에 무려 70개에 이르는 신규 호텔이 들어선 것이다. 2010년 1개의 호텔이 개관한 것과 견주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그 절정은 올해와 내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집계를 보면, 2015년 2월 현재 서울 시내에서 건립 중인 호텔(용도전환 포함)은 143개다. 이 가운데 올해만 56개의 호텔을 준공할 예정이다. 최근의 호텔 건축 러시는 ‘88올림픽’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할 만하다. 호텔 업계에서는 객실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해부터 3년 동안 관광호텔 객실 수를 5천개 더 늘릴 계획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호텔 객실을 과연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서울 시내 호텔의 공실률이 계속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의 집계를 보면, 외국 관광객의 호텔 이용률은 하향 추세다. 서울 시내에는 특1급 호텔이 22개 있는데, 이들 호텔만 보더라도 객실 점유율의 하향 추세가 뚜렷하다. 서울의 특1급 호텔 객실 점유율은 2010년 80.5%에서 해마다 낮아져 2013년엔 71.9%까지 떨어졌다. 지난해는 객실 운영 사정이 더 나빠져 60%대로 주저앉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안에 있는 특1급 콘래드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50%대에 머물고 있다. 객실이 절반 가까이 비었다는 얘기다.

88올림픽 이후 최대 건립 붐

그렇다면 그 많은 외국 관광객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관광공사 자료를 보면, 2014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420만명이었다. 전년보다 16.6% 증가한 수치다. 외국인 관광객 1명이 쓴 돈도 1272달러로 전년에 비해 79달러 늘었다. 외형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호텔 객실 가동률이 떨어지는 현상은 아이러니하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613만명으로 일본인 방한객을 훨씬 앞질렀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중국인 관광객 비중은 전년의 35.5%에서 43.1%로 커졌다. 그러나 서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행태는 동대문의 몇몇 대형 쇼핑몰, 명동 일대의 대형 면세점, 화장품·의류 가게 등에 국한된 모습을 보인다. 중국인 관광객은 특급호텔의 마케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그들은 저렴한 숙박시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희동 세계항공여행사 대표는 “중국인 관광객은 쇼핑할 때 다른 사람한테 부탁받은 것까지 사느라 싹쓸이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숙박은 비싼 호텔보다 중저가 시설을 찾는다. 게스트하우스나 모텔에서 묵기도 하고 심지어 찜질방에서 자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객실 공급 과잉으로 겉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는 ‘외화내빈’ 호텔이 늘어나고 있다. 뉴시스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2012년부터 ‘외국인 도시민박업’으로 양성화돼 이용이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에 등록된 게스트하우스는 500여곳으로 최근 2년 사이 3배 넘게 늘었다. 현재 미등록된 게스트하우스까지 합치면 이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도 숙박 패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급호텔의 주요 고객인 일본인 관광객은 엔저로 인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추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이다. 서울의 특급호텔 관계자는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나빠지고 엔저로 인해 일본인 관광객 수가 감소하면서 객실을 채우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국내 전체로 보면, 2009년 838개였던 호텔은 2013년 1088개에 이른다. 4년 새 250개나 늘어난 것이다. 객실 수도 10만8454실에서 13만619실로 2만2천실 넘게 늘었다. 하지만 객실 점유율이 낮아지면서 호텔 1곳당 평균 객실 수입과 부대시설 이용 수입이 모두 줄었다. 정부가 호텔 활성화 정책을 펼치는 것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에 비해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5년간 외국인 관광객은 연평균 12%씩 증가한 반면 관광호텔 객실 수는 4.3%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를 감안해 관련 숙박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관광 패턴 변화와 호텔 수급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지금처럼 고급 호텔을 늘리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호텔 객실의 공급 과잉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정부는 호텔 객실 가동률 80%, 이용률 74%를 적용해 내년에 호텔 객실이 6천여개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화부는 이를 근거로 학교 앞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까지 호텔 건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행 패턴 변화로 공실 오히려 증가

그러나 정부의 예측과 달리 호텔 객실 가동률은 이미 크게 떨어진 상태다. 최근 2~3년 사이 급속도로 생긴 호텔까지 감안하면 2016년에는 1만개가 훨씬 넘는 객실이 남아돌 것이라는 게 정 의원의 분석이다. 정 의원은 “서울에 허가받은 호텔만 완공돼도 정부 예상 수요보다 훨씬 많다. 굳이 학교 앞에 호텔을 짓지 않아도 객실은 남아돌 판인데 잘못된 예측 자료를 바탕으로 규제 풀기를 강행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호텔 확충 정책은 계속됐다. 정부는 지난 1월19일 투자 활성화 대책을 통해 2017년까지 관광호텔 객실 5천개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3년간 호텔 건설자금 1조원을 추가로 공급하고, 리츠(부동산투자신탁)와 기존 건물의 호텔 전환과 관련한 규제를 풀어 관광호텔을 늘리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2012년부터 본격화한 정부의 호텔 활성화 대책은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관광호텔 이용률이 하락세로 돌아선 시점이다. 국토교통부는 그해 7월 ‘관광숙박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호텔 건립 때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저리로 융자를 해주는 것을 뼈대로 한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이었다. 용적률 특례도 만들어 크게 완화했다. 한마디로 호텔을 많이 지으라고 도심의 호텔 설립 요건과 각종 규제를 확 풀어준 것이다. 서울시도 관광호텔 재산세 감면 기간을 연장해주고 시유지 개발 때 호텔 건립을 유도하는 등 도심 내 호텔 확충을 위해 나서고 있다.

정부 당국이 호텔 관련 규제를 풀고 용적률을 완화하는 사이 호텔의 빈방은 쌓여만 간다. 겉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는 ‘외화내빈’ 호텔이 양산되는 셈이다. 서울 시내 한 특급 호텔의 객실 지배인은 “공급 과잉이라는 현장의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호텔 확충 정책이 계속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전형적인 탁상행정 아니냐”고 말했다.

호텔이 완공되기까지 대략 2~3년이 걸린다고 계산했을 때 신규 호텔 물량은 올해와 내년에 최고조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상황까지 맞물려 호텔 공실률이 더 높아질 게 뻔하다. 중국인 관광객은 계속 넘쳐날 것 같지만 세계경제 침체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외국인 관광 패턴의 변화와 호텔 수급 등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토대로 호텔 확대 정책을 신중하게 추진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hongd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