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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장품 하나로 세계 200위 부자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57호] 2015년 01월 01일 (목) 김보람 economyinsight@hani.co.kr

비주력 사업 과감히 정리… 5천억원 이상 메가 브랜드 육성과 해외시장 확대 전략 적중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세계 200대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아모레퍼시픽이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비주력 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화장품에만 집중해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했다. 또한 거대한 중국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해 자리를 잡으면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한눈팔지 않고 오직 화장품 사업에만 집중해 2014년 세계 200대 부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뉴시스

김보람 <한경비즈니스> 기자

2014년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기업인은 누구일까.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수장 서경배 회장을 꼽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아모레퍼시픽이 국내와 중국 시장에서 보여준 실적 덕이 크다.

분기마다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가 연속되고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2014년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이 3조5255억원에 달했다. 전년 동기 대비 17.7%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38.7% 증가한 5601억원을 기록했다.

탄탄한 성장세는 곧 폭발적인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2014년 초 100만원이던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2014년 8월 200만원을 돌파하며 주식시장의 ‘황금주’로 떠올랐다. 이어 현재(2014년 12월19일 기준) 226만원에 거래되는 등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뿐일까. 덩달아 서경배 회장의 곳간도 쑥쑥 채워졌다. 서 회장이 보유한 아모레퍼시픽 주식 가치는 1년 새 4조원 이상 급증해 7조원에 육박했다. 국내에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다음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앞뒤를 다투는 주식 부자가 됐다. 2014년 11월에는 <블룸버그> ‘세계 200대 억만장자’ 순위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서 회장의 재산은 66억달러(약 7조1천억원)로 자산 규모 세계 200위다. 이러한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은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바로 서 회장의 ‘뚝심경영’이다. 그는 고집스럽게도 기업 인수·합병(M&A)이나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화장품을 외치며 달려왔다. 지금의 성장은 그 뚝심이 이뤄낸 결과다.

외환위기 전 한발 앞서 구조조정

그가 한길만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서 회장은 1987년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마친 뒤 그해 태평양에 입사했다. 이후 1990년 초 태평양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다. 그때만 해도 태평양그룹(현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화장품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이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일찍 경영난이 찾아왔다.

바로 이 위기가 판세를 뒤바꿔놓았다. 1994년 당시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이던 서 회장은 화장품 외 모든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서 회장은 그룹이 보유한 생명보험, 건설, 패션, 야구단, 농구단 등 본업과 무관하다고 판단한 사업을 모두 도려냈다.

경영 위기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임직원 마인드의 문제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이래 업계에서는 줄곧 ‘대한민국 넘버1’을 유지해온 터라 안일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이는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에 덫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국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과 화장품 시장의 완전 개방에 따른 다국적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겹치면서 경영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변화된 세상과 고객의 요구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탓도 크다. 그래서 서 회장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그는 아모레퍼시픽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미(美)와 건강사업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구조조정과 기업 체질 개선, 변화된 유통 환경 대처 등 산적한 과제를 임직원들과 함께 해결해나갔다. 이런 뼈아픈 과정을 거쳐 화장품 사업에만 몰두한 결과 IMF 위기에도 탄탄한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대다수 기업이 IMF 위기가 닥친 뒤에야 황급히 구조조정을 실시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아모레퍼시픽의 한발 앞선 대응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후 경영 상황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럼에도 서 회장은 욕심을 내지 않았다. 화장품 업계 라이벌인 LG생활건강이 M&A로 몸집을 불리며 맹추격해왔지만 아모레퍼시픽은 흔들리지 않고 화장품 사업에 집중했다. 그는 되레 회사의 큰 축을 맡았던 제약 사업마저 축소했다. 그리고 더욱 화장품 사업에 몰두했다. 새로운 사업에 힘을 낭비하지 않는 대신 설화수, 헤라,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같은 주력 브랜드를 단일 매출액 5천억원(설화수는 1조원)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메가 브랜드 전략’을 꺼내든 것이다.

서 회장은 화장품 하나로 사업영역을 좁힌 대신 해외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선보였다. 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 프랑스 등 선진 시장까지 공략하는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해외사업 초기에는 투자비용 대비 실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지만 서 회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뚝심 있게 기다리며 과감한 현지 투자에 나섰다. 그리고 기어코 투자 결실을 맺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진출한 해외시장은 13개국으로 매장 수는 총 4500개에 달한다. 중국 등 아시아의 성장시장에선 양적 성장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프랑스·일본·미국 등 성숙시장에서는 수익성을 기반으로 한 질적 성장을 노렸다. 2014년 상반기 기준 아모레퍼시픽 글로벌 사업은 전년 동기 대비 38% 성장한 382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처음으로 20%대로 확대됐다. 특히 중국과 아시아 시장의 매출은 이 기간 57.7% 성장하며 글로벌 사업의 견고한 성장을 이끌고 있다. 2014년 말 현재 해외 임직원 수는 6618명으로 국내 임직원 수 4700여명을 넘어섰다. 이 중 중국 현지 직원만 5609명이다. 해외 직원 수가 국내를 넘어선 것은 1945년 창립 이래 처음이다. 아모레퍼시픽이 해외사업에 얼마나 힘을 싣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서경배 회장(오른쪽)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로부터 ‘2012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의 최고 영예인 마스터상을 받고 있다.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이 혁신적인 기업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뉴시스

2014년 10월엔 중국 상하이에 대지면적 9만2788m², 건축면적 4만1001m²의 대규모 생산기지도 완공했다. 연간 1억개 제품을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서 회장은 “2020년까지 매출 12조원을 달성하고 해외사업 비중을 50%로 확대해 화장품 업계에서 글로벌 톱5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5대 글로벌 브랜드인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겠다”며 “특히 매스티지(Masstige·대중을 뜻하는 ‘매스’와 명품을 의미하는 ‘프레스티지’의 합성어로 비교적 값이 저렴하면서도 감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을 뜻한다 -편집자) 시장의 빠른 성장에 부응하기 위해 마몽드와 이니스프리 등의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2013년은 아모레퍼시픽에 무척 힘든 한해였다. 방문판매 특약점 대표자들과의 마찰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해외 계열사 구조개편 작업도 순조롭지 못했다. 당시 주가만 봐도 아모레퍼시픽이 처한 위기를 알 수 있다. 2013년 초 100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그해 10월 80만원대까지 추락했다. 2013년 3분기에는 해외사업에서 적자가 났다.

2015년 창립 70주년 맞는 아모레퍼시픽

당시 서 회장은 또 한번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각 브랜드와 국가별로 진행되던 마케팅 전략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 결실이 바로 2013년 말 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설된 통합전략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 조직이다. 서 회장은 유통채널의 다변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매출은 다시 성장세를 탔다. 서 회장의 전략이 들어맞은 것이다.

서 회장은 지난 17년간 가업을 맡아 운영해오고 있다. 1997년 태평양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받았던 당시 1년 매출이 4천억원에 불과했던 회사를 지금은 4조원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와 자웅을 겨루는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처럼 그가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데는 그만의 경영철학에 답이 숨어 있다. 서 회장은 평소 부친의 창업정신과 기업이념을 강조한다. 부친 서성환 창업주는 고객과의 신뢰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개성상인의 정신을 중시했다. 서성환 창업주는 1945년 해방 뒤 국내 첫 화장품 제조회사인 태평양화학공업을 세웠다.

서 회장의 조모인 윤독정은 1930년부터 개성 남문 앞에서 태평양화학공업의 전신 격인 창성상점에서 머릿기름을 팔았다. 윤 여사 역시 고객에게 신뢰를 받으려면 제품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서 회장은 이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신용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무엇보다 소통을 중시해 거래처, 사업 파트너를 끊임없이 찾아가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현장 경영을 실천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2014년 9월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 서 회장은 창립 신념과 기업 소명을 이렇게 되새겼다. “창업 이후 우리의 꿈과 신념, 그리고 사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부여받은 아름다운 소명을 ‘아시안 뷰티’라 이름 붙였고 인류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미래의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꿈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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