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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e] 유가 하락에 경제파탄 직면한 러시아
러시아 경제와 지정학적 리스크
[55호] 2014년 11월 01일 (토)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오른쪽)가 10월17일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을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럽 4개국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러시아의 경제 침체가 심상치 않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이 러시아를 상대로 강경한 제재 조치를 이어가는데다 국제 유가마저 약세가 계속되면서 루블화는 사실상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러시아는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국과의 협력을 통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현 상태에서는 러시아 경제의 몰락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국제통화기금(IMF)이 10월 초 인상적인 보고서를 한편 발표했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글로벌 경제를 분석한 것으로 주요 리스크 3가지를 꼽았다.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유로존 회복의 불투명성, 지정학적 리스크가 바로 그것이다.

앞의 두 리스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이 공감한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 즉 지정학적 리스크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유라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나 중동에서의 혼란이 몇몇 주변국에만 영향을 끼치지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측면에서 그렇다. 예전엔 중동을 비롯한 에너지 부국들의 정정 불안이나 지정학적 갈등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현재는 그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사태의 양상은 비슷하나 그 파급력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에너지 가격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다. 과거의 지정학적 불안은 에너지 가격을 높여 세계경제를 일시에 침체시켰다. 하지만 현재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는데도 에너지 가격은 오히려 내리고 있다. 세계경제에 별다른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지정학적 리스크를 과소평가해도 될까? 분명 그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받는 나라가 존재한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단지 그 충격이 에너지 가격 안정 덕에 전세계로 전이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언제든 세계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임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의 경제적 곤궁을 살펴보는 건 의미가 있다. 지정학적 갈등이 경제적 난관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경제적 난관이 지정학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약 러시아가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유라시아 지역의 갈등을 증폭시킨다면 세계경제는 다시 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러시아는 강대국이기에 그 여파는 생각보다 클 것이다.

붕괴 위기에 직면한 루블화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가 붕괴하고 있다. 루블의 대달러 환율은 2011년 1루블에 3.6달러였지만 10월 초 현재 2.5달러까지 하락했다. 30% 정도 절하된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비상 상태다. 추락하는 루블화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10월에만 루블화 안정을 위해 약 20억달러(약 2조1300억원)를 썼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올해 초 5090억달러에서 10월 초 현재 4540억달러로 약 550억달러 급감했다.

그럼에도 루블화의 낙하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처음 보이는 현상이다. 자본 유출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순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2013년 1분기까지는 러시아로 꾸준히 해외 자본이 유입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위기가 본격화한 올해 3월부터 자본 유출이 시작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nstitute of Interna- tional Finance)에 따르면, 올 2분기에만 80억달러에 달하는 해외 자본이 러시아를 빠져나갔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서구의 반발을 불렀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은 러시아를 상대로 강경한 제재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자본 이탈을 동반한 루블화 약세를 부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서방의 제재 조치에 대응해 러시아가 행한 대서방 보복 조치가 오히려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러시아가 식품 수입을 중단하면서 러시아에 수출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가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러시아도 고통받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식품 가격이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지만 지방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닭고기를 비롯한 육류, 생선류, 치즈 등 유가공 제품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 생산을 독려해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구호에 불과하다. 식료품 금수로 지난 9월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8%에 달했다. 3년 내 최고 수준이며 중앙은행이 목표로 했던 5~6%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천연가스, 전력, 철도 요금을 동결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다. 그러나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인 식료품 수입 중단 조치를 철회하지는 않았다. 필수 식품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공급자들은 가격을 20~36%까지 올렸다.

러시아의 식료품 기근의 역사는 깊다. 소비에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에도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식료품 가격이 폭등했다. 물론 현재 상황을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다. 국가를 파멸로 몰고 갈 정도로 심각하진 않다. 하지만 환율 하락과 금수 조치가 더해지면서 식료품 가격은 하늘로 치솟고 있다. 곳곳에서 사재기가 성행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의 삶이 점차 진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실 러시아의 경제적 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방의 제재가 없었어도 러시아 경제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급락하는 오일 가격이 그 주요 원인이다. 러시아 경제는 오일에 의존한 경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렌트산 크루드 오일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현재 오일 가격은 27개월 내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정점을 찍었을 때와 비교해 20% 이상 하락했다. 이미 기술적으론 약세장에 진입했다.

오일 가격이 하락하는 주요 원인은 러시아를 비롯한 산유국이 생산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 9월 하루 1천만배럴 이상을 생산해냈다. 사상 최대치다. 중동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산 오일을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량도 증가한 상태다. 게다가 주요 수입국이던 미국이 셰일오일 혁명을 등에 업고 에너지 수입을 줄이면서 자립을 향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경제의 둔화로 인한 수요 감소까지 겹치고 있다.

   
▲ 러시아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루블화 가치가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에 설치된 환율 전광판. REUTERS

신용평가회사 피치(Fitch)는 오일 가격이 배럴당 8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2010년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수요의 약세가 이어지고 OPEC의 생산이 증가한다면 하락세는 지속될 수 있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이 예상대로 이뤄진다면 수요는 향후 20~30년 동안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일 가격의 단기적 약세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피치의 예측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현재의 오일 가격 하락세는 세계경제의 완연한 회복이 없는 한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난 타개 위해 분쟁 조장할 수도

그런데도 푸틴은 자신만만해하고 있다. 내년에도 800억달러에 달하는 군비 지출을 포함한 예산 수요를 충당하기에 충분한 돈이 있다고 주장한다. 푸틴의 이런 낙관은 불가능해 보이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내년 성장률이 1.2%에 이르고 원유 가격도 배럴당 100달러에 달할 것이란 낙관론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오일 가격의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세계은행은 내년도 러시아의 성장률이 0.3%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든 지정학적 긴장이 해소된다는 밝은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0.9% 성장에 머물 것으로 추산했다. 푸틴의 주장은 말 그대로 ‘호언’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예산의 절반 정도를 오일과 가스에서 나오는 수익에서 충당하고 있다. 예산 삭감 혹은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군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긴장 상태가 유지되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

러시아 경제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부패는 좀처럼 척결되지 않고 에너지에 의존한 경제체제 역시 변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Sberbank)의 수장은 러시아 정부가 소비에트 시절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소비에트 시대의 강제수용소 방식으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철저히 묻히고 있다. 언론이 정권에 예속돼 있고 푸틴의 극단적 포퓰리즘은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 역시 정치적으로 푸틴에게 오히려 힘을 더해주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과도한 낙관이다. 푸틴은 높은 에너지 가격에 의존한 정책이 지속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게다가 중국·인도·브라질과의 협력을 통해 기존 서구와의 교역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희망 사항일 뿐이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러시아 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러시아 경제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만약 경기 후퇴가 본격화돼 불황이 시작된다면 러시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러시아의 처지에선 가장 손쉬운 타개책으로 지정학적 불안을 고조시키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깊은 경기 침체는 종종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된다. 파시즘을 낳고 전쟁으로 악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러시아 경제의 곤궁을 걱정하는 진짜 이유다. 러시아 경제의 몰락은 자칫 지정학적 위기를 증폭해 세계경제를 다시 암흑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러시아를 매개로 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maporiver@gmail.com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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